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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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 담담함과 절제의 미학 영화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진사 정원(한석규 분)과 주차 단속원 다림(심은하 분)의 사랑을 그린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석규의 푸근함이 돋보입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극중의 그의 모습은 매력적입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호들갑스럽게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기에 (물론 그가 경찰서에서 ‘깽판’을 치는 장면과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혼자 우는 장면이 있지만 사람이 예정된 죽음을 앞두고 이 정도의 반응도 없다면 성인(聖人)이나 다를 바 없기에 극중의 반응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의 절제된 감정은 오히려 절절한 슬픔으로 관객의 가슴을 후벼팝니다. ‘텔 미 썸딩’이나 ‘주홍글씨’의 형사 역할보다는 이런 푸근한 이미지가 한석규에게 잘 어울립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절실했던 것은 이제는 연예계를 은퇴한 심은하의 여배우로서의 가치입니다. (고현정이 컴백하긴 했지만 고현정은 영화 배우가 아닙니다. 탤런트일 뿐이죠.) 브라운관과 스크린에는 정형화된 미녀 탤런트들이 판을 치고 있지만 심은하 만큼의 아우라를 가진 여배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 CF에 기생할 뿐이죠. 한때 심은하와 함께 신(新)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누렸던 고소영은 추문과 함께 연예계를 은퇴하다시피 했고 전도연은 ‘인어 공주’의 실패로 최근에는 흥행 배우로서의 위치를 상실했습니다. 따라서 심은하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의 심은하의 연기도 청순함과 자연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굳이 예뻐보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수수함이 더욱 그녀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듭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호평을 받았던 이유는 한국 멜러 영화의 전형적 틀인 신파에서 벗어났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와의 사랑이라면 대사와 감정, 그리고 눈물의 과잉이 한국 영화에서는 기본이었는데 (이건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개봉 당시였던 1990년대 후반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편지’와 ‘약속’을 생각해보십시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역으로 담담함과 절제로 승부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인 이 작품의 뒤를 이었던 ‘봄날은 간다’ 역시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이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허진호 감독의 스타일은 한국의 전형적인 멜러에서 한참을 비켜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적인 카메라 워킹과 차분한 분위기, 그리고 일상적인 대사들은 ‘도쿄 이야기’와 같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1998년 초에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본 것은 지금은 폐관한 이화예술극장에서였습니다. (이상하게 이화예술극장에는 딱 두 번 갔을 뿐인데 모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렸군요. 어느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짝사랑하던 여자아이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스니커즈’를 본 극장도 그곳이었으니까요. 그날이 태어나서 여자와 데이트해 본 첫날이었다죠. 지금 생각하면 까마득한 옛날 같습니다.) 겨울 방학이었고 1회 입장객 선착순으로 오리지널 포스터를 준다기에 (멀티플렉스와 금요일 개봉이 생기기 이전까지는 오리지널 포스터를 토요일 개봉 첫날 1회에 주는 경우가 많았죠. 포스터 받는 재미에 대학 때 토요일 1회를 매주 쫓아다니다시피했습니다.) 갔습니다만 극장안은 정말 좁고 추웠습니다. 비좁은 극장의 복도에서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CD를 팔고 있었고요. 그때는 같이 보러갔던 여자친구에 신경쓰느라 영화는 심상했습니다만 지금 다시 보니 정말 훌륭한 영화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정판 dvd를 두 번이나 샀었지만 모두 지금은 없으며 얼마 전 할인으로 풀린 일반판으로 다시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연을 갖게 되는 영화도 있군요. 시간이 되면 아직껏 들어보지 않은 코멘터리와 함께 영화를 다시 감상하고 싶습니다.

덧글

  • EST_ 2004/12/04 12:07 #

    저는 혼자 남을 아버지에게 비디오 조작법을 가르쳐주다 잘 이해를 못하자 못내 화를 내곤 혼자 나가서 울던 장면이 마음아팠습니다.
    실은 지금도 가끔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면 코끝이 시큰해져 오는 장면이지요.
  • FromBeyonD 2004/12/04 12:56 #

    비오는 밤에 아버지 담배를 한 대 가져나와 피는 한석규를 보며 마음이 찡했죠.
    그 때 흐르는 기타곡 '라그리마(눈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수백번 이상은 기타로 쳤었을거에요.

    '접속 - 8월의크리스마스 - 미술관옆동물원'으로 이어졌던 신파가 아닌 멜로영화의 러쉬가 때때로 그립네요.
  • shuai 2004/12/04 13:11 #

    정말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들이 많은 영화입니다. 뭐 여러번 봐서 그렇기도 하지만요.
    여동생과 수박씨를 내뱉는 장면, 비디오 조작법,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다니기, 우산쓰고 군대 귀신얘기, 유리창에 돌던지는 다림이, 찻집에서 창가에 손을 기대 안타까워하는 정원 등등.
  • 닥터지킬 2004/12/04 14:03 #

    전 비디오로 봤는데... 극장에서 봤으면 정말 큰일날뻔 했던 영화였습니다. 어찌나 울었던지. 신파에서 벗어난 건 분명하지만 감정선을 건드리는 건 그 어떤 영화보다 강력하더군요.
  • 디제 2004/12/04 14:51 #

    EST_님/ 아버지에게 비디오 조작법을 가르쳐주다 화가 난 다음에 나가서 울지는 않았습니다. 조작법을 종이에 썼을 뿐이죠.
    FromeBeyonD님/ 요즘에는 신파가 아닌 멜로 영화가 드문 것 같습니다. 억지 웃음을 유발하는 기획 영화만 판을 치고요.
    shuai님/ 언급하신 장면들은 어찌보면 클리셰인데도 담담하게 표현되어 클리셰인지도 모를 정도였죠.
    닥터지킬님/ 영화에 깊이 몰입하셨군요. ^^
  • flowith 2004/12/04 15:36 #

    디제님 요즘 겨울 타시나봐요^^
  • EST_ 2004/12/04 23:59 #

    그런가요...(당황) 저야 극장에서 한번 본 것이 전부이니 아무래도 디제님 말씀이 정확할 겁니다.
    방에서 화를 내고 나간 장면까진 기억이 확실히 나는데...
    아무래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던 장면이랑 머릿속에서 연결시켜버린 모양입니다.
    (예전에 <싸이코>를 보고 샤워 장면에서 새빨간 선혈이 너무나 인상깊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흑백영화였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제가 딱 그 경우로군요;
    오랫동안 저 장면을 떠올리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하곤 했었는데 기억의 착오였다니 이것 참)
  • 디제 2004/12/05 00:05 #

    flowith님/ 제가 요즘에 좀 센티멘탈해졌나요? 아마 할인으로 풀인 영화들이 멜러 영화가 많아서 그럴 겁니다. 이제 다시 사무라이나 갱스터 무비로 돌아가겠죠. 매트릭스도 화요일이면 나오고요.
    EST_님/ 정원(한석규)이 울지는 않았어도 비디오 조작법을 쓰는 장면도 찡하더군요.
  • helen 2004/12/06 09:47 #

    디제님께서 걸어주신 링크를 보구 찾아왔습니다. 푸근한 이미지의 배우 한석규가 더 잘어울린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주인공이 같은 심은하씨라 그럴까요 오늘은 미술관 옆 동물원도 무지 땡기는 날이네요, 항상 따뜻하세요!
  • Yum2 2004/12/06 10:14 #

    전 심은하가 배우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드네요. 왜 그럴까요.-_-;;
  • 디제 2004/12/06 10:26 #

    helen님/ 미술관 옆 동물원을 아직 못봤는데 보고 싶군요. helen님도 항상 따뜻하세요. ^^
    Yum2님/ 저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심은하를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은퇴 직전의 심은하는 탤런트보다 정말 배우에 가깝도록 영화만 하지 않았었나요?
  • paper 2004/12/09 10:55 #

    죽음에 관한 영화 중 최고죠.
    감정선을 절제하면서도 무쟈게 가슴이 아팠던 영화였어요.
    21그램을 보면서 이 영화 생각했었다죠.
  • 바람이지나는길 2005/01/03 05:15 #

    뒤늦게 찾아왔습니다. 저의 No.1 한국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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