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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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이야기 3부 ② [完] - 우키후네, 인생은 뜬 배처럼 부유한다

※ 본 포스팅은 ‘겐지 이야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키후네의 등장

큰아씨가 사망하자 가오루는 후회하며 뒤늦게 작은아씨에 접근합니다. 하지만 작은아씨는 이미 니오노미야의 아이를 임신한 채입니다. 작은아씨의 불러온 배를 확인한 가오루는 섹스 시도를 멈춥니다. 만일 작은아씨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감행했을 것입니다. 가오루 또한 바람둥이 귀족 남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위선자입니다.

니오노미야가 유기리의 여섯째딸과 결혼하자 좌절한 작은아씨는 가오루에게 우지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데려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작은아씨가 섹스를 시도했던 가오루에 부화뇌동하거나 혹은 가오루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오루는 작은아씨와의 대화에서 죽은 큰아씨를 빼닮은 인형을 제작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냅니다. 작은아씨는 아버지 하치노미야가 시녀 중장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는데 큰아씨의 외모를 빼닮았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죽은 큰아씨의 역할을 물려받을 우키후네의 존재가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큰아씨의 생전과 사망 직후까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우키후네가 갑작스레 등장한 것은 명백한 개연성 부족입니다.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연기해 결말에서 사망했던 캐릭터 소마의 쌍둥이로 ‘영웅본색 2’에 갑자기 아건이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키후네가 인형을 통해 처음 언급된 것은 향후 전개에 대한 강력한 복선입니다. 가오루가 우키후네를 독립된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큰아씨의 인형, 즉 대체물로 간주한다는 암시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물에 띄워 보내는 용도의 인형이라는 점에서 우키후네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비극적 전개를 암시합니다. 애당초 우키후네(浮舟)라는 이름부터 ‘떠다니는 배’를 의미하며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물에서 스러질 운명을 예고합니다. 우키후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과 사랑은 근본적으로 부유할 뿐입니다.

작은아씨는 우키후네를 자신의 집에 숨겨두지만 바람둥이 니오노미야가 우키후네를 훔쳐보고 욕망합니다. 한편 가오루는 삼조에서 우키후네와 첫 관계를 맺은 뒤 그녀를 우지로 옮깁니다. 가오루와 니오노미야, 우키후네와 작은아씨의 사각관계의 시작입니다.

우키후네의 자살

우키후네를 훔쳐본 니오노미야는 바람둥이답게 그녀를 잊지 못합니다. 결국 우키후네의 우지의 은신처를 알아내 찾아가 가오루로 가장하고 그녀와 동침합니다. 성폭행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는 밤에 불을 켜지 않고 어두운 채로 남녀가 섹스를 했기에 관계가 끝날 때까지 상대가 누구였는지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겐지 이야기’를 통틀어 자주 제시되는 전개인 만큼 귀족 남성들이 이를 악용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관계가 끝난 뒤에야 상대가 가오루가 아닌 니오노미야임을 알게 된 우키후네는 죄의식 속에서도 쾌락에 눈을 뜹니다. 가오루보다 니오노미야의 잠자리 기술이 뛰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쾌감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오루가 관계를 맺은 이후 자신의 체면만을 중시한 채 우키후네를 등한시해 우지를 자주 찾지 않은 것도 원인입니다. 우키후네의 여성으로서 당연한 욕망을 가오루는 충족시키지 못한 반면 니오노미야는 충족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오루는 자신의 이기심으로 인해 부메랑을 맞은 셈입니다. 따라서 우키후네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작은아씨에 이어 우키후네를 둘러싼 관계의 향방은 냉정하면서도 우유부단한 가오루와 충동적이면서도 행동적인 니오노미야의 성격 차이를 뚜렷하게 대조시킵니다.

우키후네의 부정을 눈치 챈 가오루는 홀로 참지 못하고 우키후네에 암시를 던집니다. ‘겐지 이야기’의 세계에는 늘 그렇듯 비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밀은 어떻게든 알려져 또 다른 불행과 비극을 유발합니다. 예외적으로 기리쓰보 제는 자신이 총애하는 후지쓰보와 아들 겐지의 동침 사실을 죽을 때까지 몰랐습니다. 기리쓰보는 후궁과 아들에 바보 취급을 당한 셈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패륜을 모르는 편이 나았다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수치심을 못 이긴 우키후네는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습니다. 시체조차 찾지 못한 가운데 장례식이 치러집니다. 가오루와 니오노미야는 우키후네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삼각관계를 형성합니다. 둘의 성격은 다르지만 내면의 본질은 뻔뻔스러운 귀족 남성이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허우대만 매끈했던 당대 귀족 남성에 대한 작자 무라사키 시키부의 혐오가 다시 한 번 드러납니다.

우키후네의 부활

죽은 것으로 단정된 우키후네는 실은 요카와의 큰스님의 여동생이 빈사 상태에서 발견해 간병합니다. 소생한 우키후네는 잃었던 기억을 서서히 되살리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교에 귀의합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인물이 되살아나 기억상실증인 채로 재등장해 신분이 바뀌는 전개는 현대의 로맨스나 막장 드라마는 물론 스릴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개입니다. ‘겐지 이야기’가 1000년 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상실증이라는 요소를 활용한 전개가 얼마나 세련된 것인지 입증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은 기억의 집합이기에 기억을 잃을 경우 상징적 의미의 죽음을 거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고 풀이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인간의 사랑이란 시공간을 초월해 본질적으로 애증으로 가득하며 그 방향성도 엇비슷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겐지 이야기’의 총 54첩의 결말 또한 너무나 현대적입니다. 장례식 이듬해 우키후네의 생존을 뒤늦게 알고 놀란 가오루는 편지를 보내 만남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우키후네는 거부합니다. 가오루는 자신이 그랬듯이 어떤 남자가 우키후네를 숨겨둔 것 아닌지 의심합니다. 끝까지 가오루는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속 좁은 남자입니다.

가오루와 우키후네가 훗날 어떻게 되었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겐지의 노년과 죽음이 다뤄진 것과는 다릅니다. 불교의 귀의한 우키후네는 가오루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겠지만 가오루의 집요함에 여전히 갈등과 번뇌에 시달릴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가시와기와의 불륜 이후 불교에 귀의한 온나산노미야를 겐지가 끊임없이 유혹했던 2부의 종반과 유사하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상상은 독자 개개인의 몫입니다. 완전히 열린 결말은 너무나 현대적입니다.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애증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라사키 시키부가 강조하는 듯합니다.

‘귀엽다’에 집착하는 일본인

등장인물의 외모에 찬사를 아끼지 않을 때 ‘겐지 이야기’에서는 ‘아름답다’나 ‘예쁘다’가 아니라 ‘귀엽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현대 일본인들이 ‘귀엽다(可愛い)’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며 ‘모에[萌え]’라는 특유의 문화가 존재하는 것과 맥락을 함께 합니다.

한길사에서 출간된 ‘겐지 이야기’의 전10권 한글 번역본은 전반적으로 읽기 쉬우며 무난합니다. 하지만 겐지 가문 3대에 걸친 대하소설인 만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권말에 인명사전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은데다 동일한 인물이 시대에 따라 관직명으로 다르게 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겐지 이야기 1부 ① - 섹스광 겐지의 젊은 시절
겐지 이야기 1부 ② - 다마카즈라가 일으킨 파문
겐지 이야기 2부 ① - 불륜남 겐지, 불륜에 당하다
겐지 이야기 2부 ② - 겐지의 피할 수 없는 낙일
겐지 이야기 3부 ① - 가오루의 감질 나는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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