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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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이야기 3부 ① - 가오루의 감질 나는 연애

※ 본 포스팅은 ‘겐지 이야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겐지 이야기’ 3부는 42첩 ‘향내 나는 분’으로부터 최종 54첩 ‘헛된 꿈의 배다리’에 해당됩니다. 국내 번역본 기준으로 7권 후반부부터 최종권인 10권까지입니다. 겐지가 사망한 뒤 후손들의 연애가 묘사됩니다.

가오루와 니오노미야

3부의 주인공 가오루는 명목상으로는 겐지와 온나산노미야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가시와기가 온나산노미야를 범해 태어났습니다. ‘겐지 이야기’에서 출생의 비밀을 지닌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가오루는 이를 알게 되고 집착합니다. 가오루가 염세적이며 금욕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는 이유입니다.

가오루의 친구이자 라이벌은 니오노미야입니다. 그는 겐지와 아카시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카시 중궁이 스자쿠 상황의 동궁에 시집가 낳은 아들입니다. 가오루(薫)와 니오노미야(匂宮)는 모두 겐지처럼 몸에서 향기를 풍긴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이름에도 ‘향기’라는 의미가 반영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오루의 향기는 겐지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체취인 반면 니오노미야는 화장에 가까운 인위적인 향기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촌수를 엄밀히 따지면 가오루와 니오노미야는 숙부와 조카지간입니다.

향기를 풍기는 방식의 차이처럼 두 사람은 성격 차이가 큽니다. 가오루는 소극적이며 금욕적인 반면 니오노미야는 즉물적이며 쾌락적입니다. 두 사람의 성격 차이는 연애 방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비극을 야기하는 근본적 이유가 됩니다. 겐지의 성격의 양면은 가오루와 니오노미야에 각각 나눠져 대물림됩니다. 힘겨운 연애에 집착하는 성격은 가오루에, 뻔뻔스러운 쾌락주의자로서의 성격은 니오노미야에 계승됩니다. 가오루가 실은 겐지의 핏줄이 아니라 가시와기의 핏줄임을 감안하면 죄의식을 못 이겨 병사한 가시와기의 소극적 성격이 가오루에 대물림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치노미야의 두 딸

가오루와 니오노미야와 사각관계를 이루는 여성은 하치노미야의 두 딸입니다. 하치노미야는 기리쓰보 선황의 아들로 겐지의 배다른 형제이지만 겐지와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오지인 우지에서 홀로 두 딸을 키웠습니다. 하치노미야는 두 딸을 매우 폐쇄적으로 양육해 나이가 찼음에도 시집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두 딸은 연애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채 하치노미야의 사망 후 가오루와 니오노미야가 접근하자 당황해합니다. 하치노미야의 잘못된 양육 방식이 두 딸을 곤경과 비극으로 내몰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오루가 접근하는 것은 두 자매 중 큰아씨입니다. 하지만 가오루 못지않게 고지식하며 소극적인 큰 아씨는 가오루의 접근을 거부하며 그가 동생 작은아씨와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작은아씨만큼은 평범한 여자의 삶을 살며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가오루는 큰아씨에 일편단심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은아씨에게도 이끌립니다.

니오노미야 또한 우지의 두 아씨에 관심을 보이자 가오루는 그를 작은아씨와 맺어줍니다. 즉물적인 니오노미야는 가오루와 달리 쉽게 자신의 뜻을 이룹니다. 가오루는 자신의 여자가 될 것이라 믿었던 큰아씨와의 관계를 밀어붙이지 못합니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지만 섹스에 이르지 못합니다. 겐지와 니오노미야를 비롯한 당대 귀족 남성들이 지녔던 뻔뻔스러운 추진력이 가오루에게 있었다면 큰아씨를 쉽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오루에 호감을 지녔음에도 남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큰아씨는 지병으로 요절합니다.

3부의 작가는 다른 사람?

가오루와 큰아씨의 사랑은 현대의 독자에게는 답답하게 수용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가오루의 일편단심이 비극적 귀결을 야기한 전개에 대해 ‘겐지 이야기’를 현대 일본어로 번역한 세토우치 자쿠초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 비견합니다. ‘겐지 이야기’가 ‘좁은 문’보다 약 900년 앞서 세상에 공개된 작품임을 감안하면 매우 세련된 서사를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이 지닌 성격적 결함이 연애의 파탄을 불러온다는 전개는 오늘날의 연애 소설 및 영상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소입니다. 큰아씨의 비극적 죽음은 자신의 배우자와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당대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를 반영합니다.

‘겐지 이야기’의 3부는 1, 2부와 마찬가지로 무라사키 시키부가 집필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겐지의 생애를 다룬 1부와 2부는 수도를 중심으로 무수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해 산만한 측면이 있는 대하 연애 소설입니다. 하지만 겐지의 후손이 주인공인 3부는 수도는 양념처럼 등장할 뿐 주 무대는 우지입니다. 등장인물의 숫자도 상대적으로 매우 적어 통일성이 돋보이며 1부와 2부에 비해 세세한 심리 묘사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미니멀리즘이 돋보입니다. 세토우치 자쿠초는 3부 또한 무라사키 시키부에 의해 집필된 것이라 결론짓지만 위화감은 상당합니다. 하지만 독자의 마음을 간질이며 이후 전개를 궁금하게 만드는 필력은 3부도 변함없습니다.

겐지 이야기 1부 ① - 섹스광 겐지의 젊은 시절
겐지 이야기 1부 ② - 다마카즈라가 일으킨 파문
겐지 이야기 2부 ① - 불륜남 겐지, 불륜에 당하다
겐지 이야기 2부 ② - 겐지의 피할 수 없는 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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