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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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이야기 1부 ② - 다마카즈라가 일으킨 파문

※ 본 포스팅은 ‘겐지 이야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이제이 제, 출생의 비밀 인지하다

‘겐지 이야기’ 1부 후반부는 당시로는 장년에 해당하는 30대의 겐지를 묘사합니다. 레이제이 제가 즉위하고 겐지가 수도로 귀환한 지 3년 뒤 겐지의 나이 32세에 후지쓰보가 사망합니다. 출생의 비밀을 알아차린 레이제이 제는 겐지가 자신의 친 아버지임을 알고 있음을 겐지에 넌지시 암시하며 양위를 제안합니다. 하지만 겐지는 거절합니다.

‘겐지 이야기’에는 레이제이 제 외에도 3부의 주인공 가오루를 비롯한 몇몇 등장인물들의 출생의 비밀이 제시됩니다. 결국 출생의 비밀은 본인 또한 어떻게든 알게 되어 깊은 번뇌에 사로잡히는 원인이 됩니다. 진정한 비밀이란 없는 셈입니다. 출생의 비밀은 현대의 문학 및 영상물 등에서도 여전히 애용되는 소재입니다.

귀양이라는 정치적 위기를 돌파한 겐지는 승승장구합니다. 할렘인 육조원을 짓고 인연을 맺었던 여인들을 모두 한 지붕 아래 살게 합니다. 1부 초반에서 여자에 대한 꼴사나운 집착과 바람기를 주위에서 그를 우러러보게 하는 덕망으로 바꾼 것입니다.

다마카즈라

겐지는 새로운 여자를 넘봅니다. 두중장과 유가오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다마카즈라입니다. 30대에 접어들어 바람기가 줄어든 듯한 겐지이지만 유가오를 연상시키는 다마카즈라의 매력에 욕정을 불태웁니다.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어렵게 살던 다마카즈라를 데려와 자신의 집에 살게 하고 주위를 의식해 딸이라 소문내지만 강제로 범하려다 실패하는 촌극을 빚습니다.

다마카즈라에 연서를 보내는 남자들에 답장을 하라며 겐지는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며 너스레를 떱니다. 하지만 여자를 강제로 범하려는 악습은 여전합니다. 작자 무라사키 시키부도 이 장면만큼은 겐지에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다마카즈라의 행방은 1부 후반부를 장식하는 가장 큰 갈등입니다. 긴장과 더불어 간질거리는 전개로 독자를 궁금하게 만드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필력이 드러납니다. 다마카즈라는 겐지의 동생이자 미혼인 반딧불 병부경의 품에 안기나 싶지만 뜻하지 않게 검은 턱수염 우대장의 아내가 됩니다. 검은 턱수염 우대장이 다마카즈라의 시녀를 꼬드겨 육조원에 침입, 다마카즈라를 겁탈했기 때문입니다. 강제 결혼을 위해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하는 전개의 반복은 ‘겐지 이야기’에 대한 현대인의 거부감을 피할 수 없게 합니다.

죽 쒀서 개 준 꼴이 된 겐지는 다마카즈라를 검은 턱수염 우대장에 시집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혼인에 앞서 겐지는 다마카즈라가 두중장에서 승진한 내대신의 딸임을 공표합니다. 겐지는 다마카즈라를 시집보낸 후에 불륜을 저지르려는 추악한 흑심을 품습니다. 다마카즈라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했으니 불륜을 저질러도 근친상간은 아니라는 계산이 있었던 것입니다.

겐지는 다마카즈라와의 불륜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어머니(유가오)와 딸(다마카즈라)을 모두 범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지킨 셈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만큼은 불순함으로 가득했습니다.

검은 턱수염 우대장 가문의 풍비박산

검은 턱수염 우대장은 다마카즈라를 손에 넣은 대가를 톡톡히 치릅니다. 늙은 본처가 자식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가 집안이 풍비박산 납니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본처는 검은 턱수염 우대장과 애당초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다마카즈라가 집안에 들어오자 가정은 파탄에 이릅니다. 사랑하던 아버지의 곁과 정든 집을 떠나 외가로 가게 된 본처의 어린 딸 마키바시라는 슬픔을 감추지 못합니다. 마키바시라는 성장해 차후 상당한 비중으로 재등장합니다.

상류 계급 남성이 나이가 든 본처를 두고 젊고 예쁜 후처를 들여 파문에 휘말리는 전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것입니다. 검은 턱수염 우대장이 첫 번째 사례가 된 이래 겐지와 그의 아들 유기리 또한 훗날 비극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유기리의 성장

겐지와 아오이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 유기리는 ‘저녁안개(夕霧)’라는 운치 있는 이름과 달리 매우 고지식한 사내로 자라납니다. 겐지가 별달리 학문에 힘쓰지 않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거울삼아 유기리만큼은 학문에 힘쓰며 하급 관리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과는 다르게 키우려는 아버지 특유의 고집이 드러납니다. 부자의 인생길과 성격을 대조적으로 묘사해 캐릭터 설정의 세련미가 돋보입니다.

바람기가 넘쳐 주체할 수 없었던 겐지와 달리 유기리는 사촌에 해당하는 내대신의 딸 구모이노카리와 함께 자란 어린 시절부터 일편단심을 유지합니다. 4권에서 사망한 겐지의 장인 태정대신의 아내이자 내대신의 어머니는 두 명의 손주가 가깝게 지내는 것을 흐뭇하게 여기지만 내대신은 어린 시절부터 정분이 난 딸을 우려해 둘 사이를 떼어놓습니다. 내대신의 겐지에 대한 라이벌 의식도 반영되었음은 물론입니다.

유기리는 하급 관리로 출발해야 했던 처지와 구모이노카리와의 강제 이별에 상심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없었던 성실성과 인내심을 갖추고 학문을 연마해 차근차근 승진합니다. 시녀와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소문을 내지 않고 구모이노카리에 대한 연심을 유지해 주위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은 유기리는 드디어 결혼에 이릅니다. 유기리나 겐지가 애원한 것이 아니라 내대신이 간청해 귀결된 혼사였기에 유기리의 자존심의 승리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오랜 인내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금욕적인 유기리는 우연히 보게 된 무라사키의 미모에 매료됩니다. 겐지와 후지쓰보의 패륜을 연상시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현입니다. 겐지 또한 유기리가 무라사키를 본 것은 아닌지 의심합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여자를 탐했기에 아들이 자신의 여자를 넘보지 않는지 의심한 것입니다. 핏줄은 속일 수 없으며 부자는 역시나 비슷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대물림입니다.

따돌림 당하는 오미 아씨

다마카즈라에 대조되는 인물은 오미 아씨입니다. 내대신이 젊은 시절 집밖에서 낳은 딸임을 알게 되어 뒤늦게 집으로 데려온다는 점에서 다마카즈라와 비슷한 출생 및 성장 과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아하고 매력적인 다마카즈라와 달리 오미 아씨는 말이 빠르고 수다스럽습니다. 자신의 신분과 외모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신분 상승 욕구만 강합니다. 경박한 오미 아씨는 현대적인 감초 캐릭터로서 독자의 웃음을 유발합니다.

하지만 희화화의 대상으로써 지나친 감이 있어 동정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이지메로 대표되는 일본 특유의 왕따 문화가 고전부터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미 아씨의 솔직함이 손가락질당하는 이유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했던 시대상과 더불어 ‘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치레)’를 구분하는 일본인 특유의 민족성이 혼합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겐지 이야기’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만큼은 매우 자주 제시됩니다. 아카시 부인이 겐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과 이별하는 장면과 같이 혈육 간의 이별에서 비롯되는 눈물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별것도 아닌 것에 너무나 쉽게 눈물을 흘립니다. 겐지, 무라사키, 다마카즈라와 같은 등장인물들의 미모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아름답다’는 표현이 남발되기도 합니다. 천 년 전의 작품인 만큼 신파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중에서 세련되고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대상에 대해 ‘현대적’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번역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풍류의 극치

당시의 노년에 해당하는 중년에 이른 겐지는 아들 레이제이 제를 등에 업고 상황에 올라 부귀영화의 극치를 누립니다. 정치적 책임과는 무관한 위치에서 권력만을 향유하게 됩니다. 연못에 화려한 배를 띄워 밤새도록 뱃놀이를 즐기고 부인들과 함께 향(香) 대결을 펼칩니다. 풍류의 극치입니다. 당대의 독자들은 겐지의 여유와 사치를 선망했을 것입니다. 뱃놀이 장면을 그린 옛 그림도 매우 호화롭습니다. 하지만 겐지는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출가하고픈 욕구를 드러냅니다. 출가는 향락에 빠진 그의 정신적 도피처가 됩니다.

겐지가 옛이야기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무라사키 시키부가 지닌 문학관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겐지는 허구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단지 허황된 수준을 넘어 읽는 이의 마음을 절절하게 움직일 수 있다며 긍정합니다. 처음에는 비판적 시각으로 출발하지만 긍정으로 귀결됩니다. 문학이 지닌 힘을 겐지의 입을 빌려 무라사키 시키부가 역설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4권 191페이지의 ‘옥의 티’는 ‘옥에 티’가 되어야 옳습니다. 313페이지 ‘미시마에’ 항목의 ‘도요 강’은 ‘요도(淀) 강’의 오타입니다. 5권 338페이지 ‘발해 사람’ 항목의 ‘조선 반도의 북쪽에 있던 나라’는 ‘한반도 북쪽에 있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북한과 일본에서 ‘조선 반도’라 부르지만 한국인이 번역했고 한국인이 읽는 한글로 된 책이라면 ‘한반도’가 옳습니다. 352페이지 ‘누키 강 앝은 내에’는 ‘누키 강 얕은 내에’의 오타입니다.

겐지 이야기 1부 ① - 섹스광 겐지의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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