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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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예상 외의 재미를 선사한 블록 버스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습니다. 몇 학년 때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평일 밤에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이 수원의 중앙 극장을 찾았습니다. 4시간에 달하는 영화였지만 거의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내내 졸았던 기억납니다. 액션 영화도 아니고 애니메이션도 아니었기에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아이가 보기에는 버거운 영화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처음 접하게 된 영화는 다음에 볼 때에도 왠지 꺼려질 수 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TV에서 방영할 때에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발매된 리마스터링 dvd를 구입하게 된 것은 저보다는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가족을 이끌고 극장에 가자고 했던 것도 어머니셨고 그때도 이미 과거에 몇 번 개봉된 작품을 다시 보셨던 것이었습니다. 다음 달에 수원의 본가에 부모님을 위해 홈씨어터를 놓아 드리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시스템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시연하려고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플레이어에 dvd를 걸고 졸릴 때까지만 보고 자야겠다 싶었는데, 웬걸요.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인 줄 미쳐 몰랐던 겁니다. 2장짜리 본편 dvd를 쉴 새 없이 돌려보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 정도로 몰입했습니다.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치면서 CG가 추가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화려한 색감과 어마어마한 스케일, 다양한 건축물과 세트의 등장으로 우선 눈이 즐거웠습니다. 영화가 제작된 1939년이면 우리 나라는 일제 치하였는데 이때 이만한 스케일의 블록 버스터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어지간한 스케일과 CG의 블록 버스터에 길들여진 지금 감상해도 그 스케일이 놀라우니 블록 버스터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젊은 시절의 어머니와 같은 세대)이 압도당하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어린 시절에 졸다가 잠깐 깨어나 보았던 장면 중 하나가 마차를 타고 가던 주인공의 뒤쪽으로 건물이 불타서 허물어지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만큼은 강렬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은 또 하나의 장면은 술에 취한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 분)가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 분)을 안고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었습니다.)

스칼렛과 레트의 의상과 헤어 스타일이 세월을 거치며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더군요. 그리고 이 작품의 것인 줄도 모른 채 그 동안 들어와 귀에 익었던 메인 테마와 여러 차례 변주되는 미국의 민요들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걸작으로 만든 것은 캐릭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며 변덕스런 스칼렛과 그녀의 곁을 맴돌며 끊임 없이 어긋나는 매력남 레트의 몇 십년에 걸친 이야기가 빠르게 압축되어 흘러가기 때문에 지루해할 틈이 없었습니다. 특히 무정부적이면서 닳고 닳은 듯한 레트로 분한 클라크 게이블은 남자인 제가 보아도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극중에서 등장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더군요. 왜 크레딧에서 비비안 리보다 먼저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더군요.) 비비안 리는 초반부에 물정 모르던 시절에서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전쟁을 겪으며 자신의 힘으로 집안을 일으키기 시작하면서 성숙해지자 확실히 예뻐보이더군요. 물론 개인적으로 스칼렛과 같은 타입의 여자는 결혼은커녕 사귀는 것도 피할 것 같습니다만 말입니다.

끝으로 다소 의문스러웠던 것은 남북전쟁에 관한 영화(혹은 원작 소설)의 시각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사를 잘 몰라서 그렇지만, 노예 해방을 원했던 북부가 노예 제도 유지를 주장했던 남부보다 정의롭다고 알고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북부(양키)는 야만적이고 문명을 파괴한다는 시각으로 보고 있으며, 흑인 노예 해방에 관해서도 왠지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글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과연 이데올로기적으로 건전한 작품이었는지 궁금하군요.

덧글

  • 레이 2004/11/28 18:20 #

    확실히 재미있지만, 남부 쪽 시선에 치우쳐 있는 건 사실이죠. KKK단(과 유사한 성격의 단체?)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부분도 있고요. 애슐리나 프랭크도 관련되어 있었을 것 같더군요. "질나쁜 흑인에게 당한 스칼렛을 위한 복수"라는 식으로 치장되었지만. 확실히 재미는 있지만 그런 면이 좀 껄끄럽더군요, 읽으면서도. 하지만 워낙 "북부는 선했고, 흑인을 부리던 남부는 악했다"는 글을 많이 접해서, 오히려 신선하기도 했어요. 북부 또한 순수한 생각으로 그들을 해방시키려 했던 건 아니니까요.
  • gaya 2004/11/28 21:25 #

    스칼렛이 북부인이 아닌 남부인이니까 어쩌면 당연할지도. 주인공의 입장에서 북부는 가해자이자 적일 수 밖에 없었을터이니.. 어차피 영화(소설)은 한 여인의 일대기를 자세히 기술한 것이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려 한 작품도 아니기도 하고요.
    특히 스칼렛 성격상, 그녀 스스로부터가 그다지 염두에도 두고있지 않을 선악관을 일부러 공정하게 드러낼 이유도 없기에 그저 스칼렛의 입장에서 스칼렛의 눈으로 보고 겪고 느끼는 모든 상황을 가감없이 묘사한 뿐일겁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는 않지만 애초의 주인공 설정이 남부 지주계급 여성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무시할 수는 없죠. 그리고 사실상 대의명분에서 선일 수는 있어도 그 속의 사람들이 벌인 소소한 행위까지 모두 선인 것은 또 아니기도 했겠고...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 디제 2004/11/28 21:27 #

    레이님/ 레이님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군요.
    gaya님/ 결국에는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부정확한 진술을 하는 화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말씀이시군요.
  • gaya 2004/11/28 21:44 #

    사실 더 큰 이유는 마가렛 미첼 여사가 남부인이었죠. ^^ 노예해방전쟁이 끝난 뒤부터 승리자인 북부인들의 점유를 고까운 눈으로 볼 수밖에 없으면서 패배자란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남부인들의 심경을 그대로 녹인 것으로 보면 될 겁니다. 물론 당연히 편견(이라기보단 오랜 고정관념)이 들어있으니 요즘 눈으로 보면 정치적으로 그다지 올바르지는 않겠죠. 매력적인 스칼렛이 어쩌면 그네들의 대리만족을 해준 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EST_ 2004/11/28 23:03 #

    전 KBS에서 우리말 더빙판을 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중간중간 약간 감정묘사가 지나쳐서 실소를 자아냈던 부분들과 기도하는 부분에서 천주교 고증을 확실히 거친 기도문이 나왔던 기억이 강하게 남았었군요. 그때만 해도 블록버스터라는 개념도 잡혀있지 않았지만, '대작'이라는 기분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있었지요. 남부쪽 시각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렸을 때는 너무 북부 편향적인 책들을 많이 본 지라,(위인전에 링컨은 빠지지 않고 나왔었으니까요) 뭔가 좀 거북한 느낌도 받은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 디제 2004/11/28 23:05 #

    gaya님/ 결국 스칼렛의 작자의 분신에 불과했던 것인가보군요.
    EST_님/ 더빙이 아니라 원어로 보았을 때에는 감정 묘사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배우들의 원아 연기가 괜찮았던 걸까요. 아니면 제가 너무 몰입해서 였을까요.
  • EST_ 2004/11/28 23:09 #

    아마 그당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처음으로 TV에서 방영합니다'라고 꽤 크게 광고를 했었으니까, 성우분들이 지나치게 의식했다거나 한 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만, 그때 생각으로도 부분부분 너무 힘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드는 곳들이 조금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작품까지 우스워 보였던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 TITANESS 2004/11/28 23:20 #

    아아.. 영화보다 책이 먼져였는데... 아마 어린(?) 맘에도 스칼렛이 맘에 안들어 책 던질뻔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레트는 멋졌다.. 정도?)
    영화는.. 비비안 언니밖에 생각이 안나요.--;;
    그리고 이데올로기 생각전에 철없는 아가씨의 로맨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더군요. 요즘 다시 보면 어떨지..^^;;
  • 디제 2004/11/29 02:49 #

    EST_님/ 개인적으로 한국어 더빙은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그래도 아마 일류 성우들을 캐스팅한 것이었겠죠? 언제보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 발매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dvd에는 코드 3번치고는 특이하게도 일본어 더빙이 들어있더군요. 어떤 성우가 참여했는지 궁금합니다.
    TITANESS님/ 역시 TITANESS님과 저는 여자보는 취향이 비슷하군요. (라고 해도 TITANESS님은 여자잖아! --;;;)
  • 태리 2006/02/28 09:57 #

    북부가 남부보다 정의로웠다고 말할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북부는 그당시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화,공업화를 위해 공장에서 마구 쓸 수 있는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이 필요했을 따름이죠. 그래서 남부의 방대한 노예노동력이 필요했던 거구요. 일단 노예를 사기 위해선 돈이 듭니다. 그리고 계속 돌봐줘야되죠. '바람과함께사라지다'에서 남부인들이 흑인노예를 보살피는걸 보면(물론 그들은 꽤 수준높게 대우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들의 평생을 돌봐줍니다. 주인된 의식으로든 뭐든 말이죠.
    하지만 북부 쪽에선 그런 돈도 아깝단 겁니다. 자유민 같은 경우엔,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당시의 흑인들같은 경우엔 그냥 값싼 임금만 적당히 지불해가며 마구 부려먹어도 된단 말이죠.
    북부는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게 필요했던것 뿐이지, 결코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그랬던건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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