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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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 생과 사, 성과 속은 동전의 양면 영화

※ 본 포스팅은 ‘이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녀 서원을 앞둔 이다(아가타 트루제부초우스카 분)는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아가타 쿠레사 분)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유태인 학살 과정에서 사망한 이다의 부모의 유골을 찾아 나섭니다.

역사 속 어두운 그림자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다’는 2015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폴란드 영화입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폴란드 역사는 물론 세계사의 2개의 어두운 그림자에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입니다. 나치 치하에서 벌어진 학살이지만 유태인의 재산을 노린 폴란드인의 협조를 통해 자행되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유태인들은 어린 소년까지 폴란드인에 의해 살해되어 암매장되었습니다.

둘째, 1960년대 동유럽을 휩쓴 공산주의 체제입니다. 판사인 완다는 ‘인민의 적’ 다수에 사형을 선고했다며 공산화 과정에서 또 다시 많은 이들이 사망했음을 드러냅니다. 공산주의 특유의 계급주의 및 관료주의는 완다가 음주운전 사고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이 확인되자 특권이 발동되어 곧바로 유치장에서 방면되는 장면을 통해 입증됩니다. 완다와 알토 색소폰 연주자(다위드 오그로드니크 분)의 대화에는 담배와 같은 기초적인 기호품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암시됩니다.

과거를 포착하는 방식

‘이다’가 과거를 포착하는 방식은 특별합니다. 이다 역의 아가타 트루제부초우스카가 이다의 어머니 안나로 분한 과거의 사진과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숨겨졌던 과거가 노출됩니다. 가톨릭 수녀 서원을 앞둔 이다는 자신이 유태인 출신임을 완다와 처음 만난 후에야 뒤늦게 알게 됩니다. 하지만 과거 회상 장면은 없습니다. 극중 사건도 시간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다와 완다의 여정에 따라 과거가 속속들이 밝혀지는 ‘이다’는 로드 무비입니다.

고풍스런 4:3 화면비와 흑백 영상은 20세기 어두운 과거사 조명을 뒷받침합니다. 아울러 모든 것이 부족했던 1960년대 공산화된 동유럽의 암울한 분위기를 대변합니다.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고정적이어서 이다의 수녀로서의 단조로우며 절제된 삶을 강조합니다. 중요 소품에 해당하는 유골을 카메라가 잡지 않고 생략해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연출은 절제의 일환입니다. 몇 차례 삽입되는 섹스 장면도 구체적 묘사나 배우의 노출 없이 암시적으로만 제시되는 것도 동일한 맥락입니다.

생과 사, 성과 속

이다와 완다는 죽음을 체감합니다. 완다는 이다의 부모가 학살당하는 와중에 어린 아들 토마스를 함께 잃었음이 드러납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유골 수습 이후입니다.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이다의 성직자로서의 삶은 서원을 계기로 무난하게 이어지고 속됨을 상징하는 완다는 음주, 흡연, 프리섹스 등 쾌락적인 삶이 지속되며 영화가 마무리될 것처럼 보입니다. 순간 반전을 맞이합니다.

완다는 혈육의 유골을 수습한 뒤 충격과 슬픔을 이기지 못해 투신자살합니다. 완다의 빈집을 찾아온 이다는 수녀복을 벗고 사복을 입으며 긴 생머리를 풀어헤치고 잠시 삶의 쾌락을 맛봅니다. 완다와 같이 음주, 흡연은 물론 달콤한 춤과 섹스까지 경험합니다. ‘이다’의 클라이맥스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죽음을 체감한 이다는 쾌락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으며 삶은 공허한 것임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이다는 알토 색소폰 연주자와 동침한 다음날 아침 수녀복을 다시 입습니다. 섹스를 마친 직후 알토 색소폰 연주자가 함께 바다를 보러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자는 제안에 이다가 “결혼과 출산 다음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질문한 것은 삶이 필연적인 죽음으로 귀결되는 허무한 것임을 통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다는 수녀원으로 돌아갑니다. 그녀가 도시를 떠나 시골길을 걷는 마지막 두 장면은 러닝 타임 내내 고정적이었던 카메라 워킹과 달리 끊임없이 이다를 쫓아 역동적입니다. 제 발로 수녀원으로 향하는 이다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속이 아닌 성을 선택한 결말을 강조합니다. 아울러 완다가 이다에게 “(속된 쾌락을) 체험해 보고 (성스러움을 위해) 희생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초반의 권유가 서사 전체에 대한 복선임이 입증됩니다.

결말은 이다가 성(聖)과 속(俗)의 변증법을 통해 진정한 성에 도달했음을 암시합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듯 성과 속 역시 공존한다는 ‘이다’의 주제의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유한한 삶이 빛나며 속됨이 있기에 성스러움이 가치를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돋보이는 소박함

‘이다’는 분절적이고 불친절한 편이라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결코 난해한 영화도 아닙니다. 이다의 수녀원에서의 질박한 일상처럼 최근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소박함이 미덕으로서 돋보입니다.

음악 삽입도 소박합니다. 일반적인 영화들처럼 전지적 시점으로 삽입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공연, 카스테레오 청취, 턴테이블 사용 등을 통해 직접 듣는 현장음으로서 삽입됩니다. 음향이 매끄럽지는 않으나 관객이 등장인물들과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알토 색소폰 연주자의 존 콜트레인 곡 연주는 후반부에 이다가 쾌락을 체험하는 복선이 됩니다. 끊임없이 음악을 듣는 완다의 취미는 성과 속의 균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돋보이는 것은 미장센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얼굴은 화면 하단에 쏠립니다. 클로즈업조차 화면 전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단의 일부만을 차지합니다. 화면 상단은 실외 장면의 경우 하늘, 실내 장면의 경우 벽과 천장을 주로 비춥니다. 천상에서 인간들을 굽어 살피는 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미장센입니다. 하지만 이다가 잠시 속세를 누리는 장면에서는 일반적인 영화와 같은 평범한 클로즈업과 미장센에 가까워집니다. 천상의 신의 존재를 잠시 잊기 때문입니다.

아가타 트루제부초우스카, 신비스런 매력 발산

아가타 트루제부초우스카는 안나와 이다 모녀 1인 2역을 연기합니다. 외양간에 색유리를 설치한 안나의 예술가적 기질은 이다가 예수 상을 복원하는 서두의 장면을 통해 모녀간에 계승되었음이 드러납니다.

이다가 보여주는 양면성까지 감안하면 아가타 트루제부초우스카는 1인 3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녀 복을 입고 있을 때의 이다는 맑은 눈망울과 다문 입술에서 성직자 특유의 고집과 더불어 동양적 이미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녀 복을 벗고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풀어헤치는 장면에서는 압도적인 관능미를 발산합니다. ‘이다’가 데뷔작인 아가타 트루제부초우스카의 신비스러우면서도 보이시한 매력을 통해 캐스팅이 완벽했음이 입증됩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umma55 2015/03/07 09:38 #

    훌륭한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속'을 체험해 보고 '성'으로 돌아가는 선택이 흥미로웠습니다.
    결론은, 말씀하신대로(?) '사는 거 별 거 없다'? ^^'성과 속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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