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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 - 어른스런 사랑, 아름다운 판타지 애니메이션

※ 본 포스팅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자 만드는 일을 하는 소녀 소피는 마법사 하울을 우연히 만나 하늘을 날게 됩니다. 하지만 황야의 마녀의 저주로 인해 소피는 90세 할머니가 됩니다. 허수아비의 안내에 힘입어 소피는 움직이는 성으로 하울을 찾아갑니다.

어른스런 판타지

다이아나 윈 존스의 1986년 작 원작 소설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004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재개봉되었습니다. 10년 전 최초 개봉 당시 한국에서 300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작이었습니다. 하울의 성우로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배우 기무라 타구야가 맡은 것도 흥행에 일조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부분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그러하듯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판타지이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요소가 분명합니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연령이 높은 편입니다. 주인공 소피는 18세 소녀이며 하울은 청년 마법사입니다. 소피의 외모는 저주로 인해 90세까지 치솟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의 주인공의 연령이 10대 초중반 안팎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상당히 어른스러운 작품입니다. 소피와 하울의 사랑은 결코 노골적이지 않으며 은근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주된 관객인 어린이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두 주인공의 감정입니다. 소피는 원래 미모를 자랑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노파가 된 뒤 추한 외모를 지니게 됩니다. 하울은 빼어난 미모와 엄청난 능력을 지녔지만 내면적으로는 나약합니다. 콤플렉스를 지닌 두 주인공이 서로를 의지하며 가까워지는 과정은 성인용 로맨스의 전형적 서사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것을 강조하는 주제의식 또한 어른스럽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인용 판타지라는 1992년 작 ‘붉은 돼지’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붉은 돼지’가 경제공황 시기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것과 달리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은 허구입니다. ‘붉은 돼지’가 타이틀 롤 붉은 돼지 포르코 루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남성적인 작품이었다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하울이 아닌 소피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여성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일생의 사랑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랜 세월에 걸친 산물임이 결말에서 드러납니다. 어린 하울이 악마와 계약을 맺는 순간 소피는 하울에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합니다. 서두에서 하울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소피에 접근해 2명의 병사로부터 구해준 뒤 하늘을 함께 날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하울의 소피에 대한 사랑은 황야의 마녀의 소피에 대한 저주로 연결됩니다.

하울은 추한 외모의 늙은 소피가 움직이는 성으로 찾아와도 내쫓지 않습니다. 일생의 사랑임을 이미 어린 시절에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소피가 갑자기 노인이 되는 전개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개봉 당시 63세로 노년기에 접어든 미야자키 하야오가 늙는다는 것의 의미를 고찰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울은 소피와 재회하기 전까지 황야의 마녀를 비롯한 다양한 여자들을 거친 바람둥이였지만 18세가 된 소피와 재회한 뒤 한 사람에 정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피와 만나기 전 ‘하울이 예쁜 여자들의 심장을 파 먹는다’는 소문이 난 것은 잘 생긴 하울이 미모의 여성들과 사귀며 마음을 사로잡아온 것이 상징적으로 과장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매력적인 바람둥이와 사귄 뒤 채인 여성들이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소피와 하울의 긴 세월의 인연을 감안하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사랑의 서사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주인공의 사랑은 히사이시 조의 우아하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뒷받침됩니다. 아름다운 메인 테마는 두 주인공이 자아와 자신들의 감정에 자신감을 가지거나 활극의 요소가 가미될 때 행진곡처럼 변주되기도 합니다. 소피는 잠을 자거나 자신감을 가질 때 소녀의 본모습으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소녀부터 노파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목소리는 물론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주제가 ‘세계의 약속’까지 부른 바이쇼 치에코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서사의 측면에서는 친절함과 거리가 있습니다. 판타지의 장르적 특성을 넘어 서사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움직이는 성 현관문에서 화살표만 돌리면 공간적 배경이 손쉽게 전환되는 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갑작스런 장면 전환은 뜬금없기도 합니다. 공간적 배경이 근대 유럽의 가상 국가이며 전쟁이 어떤 국가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지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아 설정의 측면에서도 친절한 편은 아닙니다.

작품마다 기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향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여전해 스팀 펑크에 기초한 다양한 머신이 등장합니다. 타이틀 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두꺼비 같은 얼굴에 박쥐의 날개, 새 다리를 합친 듯 기괴하면서도 귀여운 모양새입니다. 하울과 캘시퍼가 위기에 처하는 와중에 산산조각 난 움직이는 성은 하울이 부활한 뒤 결말에서는 비행이 가능하도록 업그레이드됩니다. 새와 같은 날개가 여럿 달린 전투기와 더불어 날치를 연상시키는 2인용 비행기 플라잉카약도 등장합니다. 일본인들이 매우 선호하는 증기기관차도 등장합니다. 기계와 무기에 대한 애정과는 상반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환경 보호 및 반전의식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유효합니다.

주인공이 잔뜩 어지럽혀진 공간을 말끔하게 청소한 뒤 요리해 등장인물들이 한데 모여 아귀아귀 식사를 하는 장면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전형적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하울과 소피를 부부, 하울의 제자 마르클을 아들, 캘시퍼와 힌을 반려동물로 대입하면 대사에서 언급되듯 움직이는 성에 사는 이들은 가족처럼 보입니다.

번역가 강민하가 맡은 한글 자막은 지나치게 의역에 의존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연출 의도와는 거리가 먼 ‘대박’, ‘꼴통’ 등의 비속한 한글 자막은 작품에 대한 몰입을 저해합니다. ‘Jenkins’를 ‘젠킹스’로 번역한 것도 어색합니다. ‘젠킨스’가 옳습니다. 소피가 전차에 탑승해 도시 번화가로 이동하는 전반부 장면에서 호전적인 군중들의 “해치워라(やっつけろ)!”라는 반복된 외침은 자막으로 번역되지 않고 누락되었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 - 기계 문명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순적 사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 - 가족 영화의 꼬리표를 뗀 지브리의 사랑 영화
벼랑 위의 포뇨 - 동심의 눈높이로 본 ‘인어공주’
바람이 분다 - 이것이 바로 ‘美化’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역사관심 2014/12/06 08:16 #

    대박같은 현 비속어를 자막에 넣는 짓은 예술작품들 번역을 잡치는 주범이죠.
  • 잠본이 2014/12/06 14:18 #

    불친절이 좀 과해서 영감님이 드디어 노망났구나 싶었었는데 제작과정에 좀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얘길 듣고 뭔가 틀어진게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늙은소피는 뭐 안어울리는건 아닌데 워낙 차분히 현명한 노파스러움을 보여주는지라 몸이 늙었다고 갑자기 정신도 성숙해지나 싶어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 안드는것도 아니고(...)

    붉은 돼지는 어릴때 보았을때 재미는 좀 덜해도 최소한 스토리는 이해가 가는데 이 작품은 ??? 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다고 느꼈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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