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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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 스타일 과잉, 감정이입 불가 영화

※ 본 포스팅은 '갈증'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직 경찰 쇼와(야쿠쇼 코지 분)는 이혼해 별거한 아내 키리코(쿠로사와 아스카 분)로부터 외동딸 카나코(코마츠 나나 분)의 실종 소식을 듣습니다. 쇼와는 카나코의 행적을 파헤치던 중 딸에게 과거 죽은 남자친구가 있었으며 그녀가 약물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됩니다. 쇼와는 야쿠자 간의 패싸움에 휘말립니다.

아주 쎈 영화

'갈증'은 후카마치 아키오의 2005년 작 추리소설 '끝없는 갈증'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영화화했습니다. 딸의 실종을 조사하던 아버지가 딸의 충격적인 과거와 더불어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무수한 짧은 컷을 활용한 현란한 편집, 끊임없는 음악 삽입, 광기에서 비롯된 고함과 괴성, 미성년자 살해, 여교사의 복수, 따돌림과 범죄를 반복하는 10대의 암울한 현실, 숨겨진 비밀과 진실 찾기 등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2010년 작 '고백'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하지만 '갈증'은 '고백'보다 폭력의 수위가 몇 단계는 강화되었으며 마약과 섹스의 요소를 포함해 '아주 쎈 영화'가 되었습니다.

제목 '갈증'은 마약, 피, 살해에 대한 욕망을 상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동성애, 롤리타 콤플렉스, 성폭행 등 섹스에 대한 욕망을 상징합니다. 클럽에서 혓바닥 위에 알약을 얹는 장면은 천주교 미사의 영성체를 연상시킵니다. 궁극적인 갈증은 상대를 속여 파멸로 몰아가는 쾌감을 향한 것입니다. 카나코가 아름다운 미모를 앞세워 내레이터인 '나(시미즈 히로야 분)'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팜므 파탈이었음이 드러납니다. 매력적인 딸과 과격한 아버지의 근친상간 암시는 '올드보이'를 연상시킵니다.

일본 특유 '과잉의 미학'

'고백'에서 과잉의 미학에 집착했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갈증'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과잉의 미학에 집착하면서 오히려 관객으로서는 무감각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핸드헬드 얼굴 클로즈업과 음악, 고함과 유혈의 범람, 애니메이션 삽입 등으로 질리든가 혹은 무뎌지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과잉의 미학'을 멋들어진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 영상 작품에서 쓸데없이 대사가 길어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일일이 설명하거나, 장면의 호흡이 지나치게 길거나, 고어 장면이 반복되어 매우 산만해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일이 흔합니다. 최근 한국에 개봉된 '지옥이 뭐가 나빠'도 유사한 약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완급 및 강약 조절 실패는 '갈증'에서도 되풀이됩니다. 감정의 노출을 억누르고 살아야하는 일본 사회의 특유의 분위기가 영상 작품에서는 대리만족을 위해 정반대의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갈증'이 한국에서는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그보다 느슨한 15세 관람가로 개봉되었으며 개봉 초기 고교생에게 특별 할인 이벤트를 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잔혹한 폭력 묘사에 비해 의외로 섹스 묘사가 직접적이지 않은 것도 일본에서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이유인 듯합니다. 하지만 미성년자의 마약 흡입이 노골적으로 묘사되었음에도 15세 관람가라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갈증'은 후카사쿠 긴지, 기타노 다케시와 같은 유명한 일본 거장들의 야쿠자 영화와 유사한 요소가 있습니다. 복고적이며 경쾌한 오프닝과 뿌연 톤의 영상은 그들이 활동했던 20세기 필름 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보입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아키히로(秋弘)'였던 주인공의 이름이 20세기 쇼와(昭和) 일왕 시대를 의미하는 '쇼와(昭和)'로 바뀐 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쇼와의 승용차가 무려 40년 가까이 된 1970년대식 닛산의 글로리아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카사쿠 긴지와 기타노 다케시는 쿠엔틴 타란티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 '갈증'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복고 및 고어의 요소가 강합니다.

감정 이입 불가 등장인물, 서사의 약점

감독이 외형적인 스타일에만 집중하니 등장인물의 감정과 행동에는 이입이 어렵습니다. 돌발적이며 폭력적인 쇼와와 카나코 부녀의 행동은 유전적 이유를 탓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걸핏하면 화내고 죽이는 광기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합니다. 카나코의 행동이 남자친구의 죽음과 아버지의 폭력에서 기인했다 해도 왜 그와는 무관한 '나'를 파멸시키는지 설명이 부족합니다. 단지 무고한 이의 파멸을 즐긴다는 이유로는 동조를 얻을 수 없습니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력을 광기나 이상 심리로만 전가하면 관객이 이입할 여지는 사라집니다. 딸 카나코의 목을 조르고 아내 키리코를 성폭행하는 등 폭력적인 쇼와의 행동 양식의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전무합니다.

서사도 의문투성이입니다. 쇼와가 경찰을 가장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섹스하려 했지만 야쿠자에 살해당한 여고생의 시체는 어찌 처리된 것인지 다음날 아침 장면에서 전혀 제시하지 않습니다. 극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잔혹할 살인을 아이카와(오다기리 죠 분)가 혼자 저질렀으며 내친 김에 보스 쵸(코우 요시오 분)까지 살해했다는 전개는 각본가만 속편한 결론입니다.

쇼와와 난투극을 벌여 중태에 빠진 아이카와를 형사 아사이(츠마부키 사토시 분)가 경찰 간부의 부정을 숨기기 위해 살해한 뒤 자살 처리하는 장면은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 이상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쇼와가 활개를 치도록 경찰이 방치한 전개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결말에서 쇼와는 카나코를 살해한 진범인 여교사 리에(나카타니 미키 분)를 찾아가는데 왜 쇼와가 리에를 색출하는데 3개월이나 소요된 것인지도 설명이 없습니다. 아마도 한여름 8월에 시작된 서사를 서두와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에 어떻게든 끝내고 싶었던 듯한데 그 사이 쇼와는 무엇을 한 것인지 궁금증을 유발할 뿐입니다.

연약한 여성인 리에가 도시 한복판 자신의 차내에서 카나코를 살해한 뒤 어떻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까지 홀로 시체를 끌고 와 매장했는지도 결말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체 유기가 결코 쉽게 자행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리에가 카나코를 살해할 때 사용한 것은 물론 쇼와의 살해 시도에도 사용한 송곳이 최초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설명이 없습니다. 리에는 카나코를 분에 못 이겨 우발적으로 살해하는데 리에가 승용차나 핸드백에 항상 송곳을 가지고 다닌 것인지도 사전 암시가 없어 궁금합니다.

화려한 배우들 열연 아깝다

1996년 작 '쉘 위 댄스'를 통해 한국에는 반듯한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는 야쿠쇼 코지는 정반대로 쾌락적이며 다혈질의 사나이로 등장합니다. 음식, 술, 약물을 거침없이 먹는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여주인공 코마츠 나나는 수지와 이시하라 사토미를 합친 듯한 미모를 과시합니다. 하지만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사뭇 달라져 보입니다. 츠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한 뻔뻔스러운 형사 아사이는 사탕을 비롯해 단것을 입에서 떼지 않는데 '오션스' 시리즈의 브래드 피트를 연상시킵니다.

오다기리 죠, 나카타니 미키, 쿠니무라 준은 첫 등장은 가볍지만 두 번째 등장부터는 사건에 열쇠를 쥔 인물을 맡아 연기했음이 드러납니다. 배우들의 이름값으로 인해 이들이 중요한 비중을 맡으리라는 것은 첫 등장부터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나카타니 미키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2006년 작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압도적인 연기력을 과시하며 감동을 배가시켰습니다. 그러나 '갈증'은 그녀를 비롯한 화려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불량공주 모모코 - 오타쿠여, 세상 속으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불행한 삶을 뛰어넘는 형식의 화려함
고백 - 과잉의 함정에 빠지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정수君 2014/11/28 12:20 #

    저는 원작 소설을 엄청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페이지가 기억에 오래 남더군요.
    영화판 스토리를 알아보니 원작과 달라진 부분이 꽤 있어서 영화도 한 번 볼까 싶긴 한데,
    저는 아무래도 소설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꿈도 희망도 없다는 점은 둘다 마찬가지입니다만. ;ㅅ;
  • funnybunny 2014/11/30 05:48 #

    보는 이의 이해는 구하지 않겠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 사실 정식 개봉이 된다고 해서 놀랐는데 또 안 될 것 까지는 없겠다고 생각했다가 15세라는데에는 깜짝 놀라고 마네요. 아, 일본 이야기네요. 당연히 19금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원작을 읽지는 못했지만 원작의 소녀의 행동에는 이유가 제시된다고 들었어요. 영화 속에서 그 속내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것은 감독이 굳이 이유 같은 것은 괜찮지 않아? 하고 그리고 싶었던건가 하는 생각을 했고요. 확실히 센 영화라 편하게 보기 힘들었습니다.
  • yupi 2014/12/07 14:46 # 삭제

    개인적으로 영화를 감명깊게봤습니다.그 누구보다도 다수의 일본 소설 영화 등을 접해본 바 있다 자신할만큼 접해보고 했지만 굉장히 잘만들었다고는 생각합니다,지적해주신바와 같이 서사가 다소 구멍이 있고 매끄럽지않고 진부한것도 사실입니다.다만 대중에게 친절히 설명하지는않았을지언정 결코 질 낮은 영화로는 생각되지않습니다.물론 미장센에 집착하는 감독성향도 있지만 영화에서 때론 서사를다루는데 과감한 생략도 좋은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소설과는 또다른 상상과 추리의 묘미가 있죠.그리고 이 작품에선 미장센이,그리고 인물의 사소한 표정과 행동,대사에서 극의 주제가 잘드러난편이라고생각합니다.엄연히 영화는 소설과또 매체가 다르니까요.오히려 매체 자체에 충실한 느낌이죠.저는 개인적으로 생략에서 오는 그리고 미장센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공허감이 좋았습니다.영상은 과하지만 오히려 그 안의 공허감이 광기와 어우러져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기도했다고생각해요
  • 승굴 2014/12/12 01:34 # 삭제

    저랑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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