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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 - 전차 앞세운 미니멀리즘 전쟁영화 영화

※ 본 포스팅은 ‘퓨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일 전선에서 콜리어(브래드 피트 분)가 이끄는 셔먼 전차에 신병 노먼(로건 레먼 분)이 보충됩니다. 노먼은 전장의 참혹함을 절감하면서도 콜리어의 배려 덕분에 서서히 적응합니다. 콜리어는 단 1대의 전차로 독일군 대부대를 막아내야 하는 임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미니멀리즘 전쟁영화

데이빗 에이어 감독이 연출, 각본, 제작을 맡은 ‘퓨리’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독일 내륙에서 독일군과 사투를 벌이는 미군의 셔먼 전차병을 묘사하는 전쟁영화입니다. 제목 ‘퓨리(Fury)’는 콜리어가 이끄는 전차 포신에 하얀 페인트로 쓰인 전차에 붙인 애칭 ‘Fury’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콜리어를 비롯한 미군 병사들의 나치를 향한 극도의 ‘분노’를 뜻하기도 합니다.

‘퓨리’는 미니멀리즘 전쟁영화입니다. 대규모 전차전을 비롯한 큰 스케일의 전투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단 며칠 동안의 이야기에 불과하며 서사도 단순합니다.

극중에 제시되는 전차는 총 미군 셔먼 5대, 독일군 티거 1대로 총 6대에 불과합니다. 4대의 셔먼을 앞세운 미군이 전차를 보유하지 않은 독일군 부대를 섬멸하는 과정을 통해 셔먼의 위력을 먼저 과시합니다. 미군 보병들이 셔먼을 졸졸 뒤따르며 독일군에 접근하는 방식은 전차를 활용한 고전적인 전법입니다. 여유가 있을 때 보병들이 전차 위에 올라타 이동하는 장면은 너무나 친숙합니다. 낮 장면에서는 총탄 및 포탄의 발사를 마치 레이저 빔처럼 표현해 다소 과장되었습니다. 노먼이 홀로 경계근무에 나선 후반부 장면에서 독일군 대부대의 접근을 암시할 때는 객석을 포함한 극장 전체가 뒤흔들리는 저음이 강렬합니다.

서두의 자막은 물론 대사에서 제시되는 티거의 강력한 성능을 입증하는 셔먼 부대와의 전투는 가장 인상적입니다. 둥글둥글하고 땅딸막한 셔먼과 납작하고 직선적인 티거의 대결은 장갑에서 밀리는 셔먼이 압도적으로 고전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클라이맥스인 이 장면이 전차전의 유일한 장면이라 아쉬움이 남습니다. 후반의 야간 전투 장면은 콜리어의 셔먼이 무한궤도가 파괴되어 더 이상 기동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포대처럼 활용되어 전차 액션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극중에 등장한 6대의 전차는 모두 격파됩니다. 전차를 소재로 한 전쟁영화는 물론이고 전쟁영화 장르 자체가 사장되는 현실에서 ‘퓨리’는 땀내 나는 전차 영화로 상당히 참신한 시도이지만 허전한 것도 사실입니다.

주제의식의 깊이, 아쉽다

미니멀리즘 전쟁영화로 구분할 수 있는 다른 이유는 주제의식에 있습니다. ‘퓨리’는 전쟁의 참상을 현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셔먼 부대의 유일한 장교 파커(재비어 사무엘 분)는 소년병의 기습으로 인해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온몸이 불타자 고통을 이기지 못한 그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쏩니다. 사방 어디에서 언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장의 공포는 러닝 타임 내내 재현됩니다.

소년소녀를 징집하는 나치 친위대는 자국민에 대한 학살도 서슴지 않습니다. 협조를 거부하는 민간인을 교살해 전시하고 미군에 협조하는 노인을 사살합니다. 후퇴하며 자국민 마을을 폭격하기도 합니다. 노먼과 짧은 사랑을 나눈 독일인 소녀 엠마(알리치아 폰 리트베르그 분)도 폭격에 희생됩니다.

하지만 전쟁에 관한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전쟁의 거시적 의미를 조명하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병사들의 고뇌를 집요하게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단지 살기 위해 죽인다는 단순명료한 명제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Ideals are Peaceful, History is Violent)"는 콜리어의 대사 이상의 메시지는 없습니다.

콜리어는 노먼에 살인을 가르치기 위해 독일군 포로가 미군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사살합니다. 반면 노먼은 결말에서 나치 친위대 병사의 묵인 덕분에 살아남게 됩니다. ‘미군은 선, 독일군은 악’의 전형적인 이분법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습니다.

로건 레먼, 귀여운 반항아

등장인물 또한 전형적입니다. 거칠지만 믿음직스러우며 배려 깊은 지휘관 콜리어, 종교에 귀의해 ‘바이블(Bible)’ 즉 ‘성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포수 보이드(샤이어 라보프 분), 멕시코 출신으로 미군이 나치 독일을 응징하기 위한 연합군 그 자체임을 강조하는 운전병 고르도(마이클 페냐 분), 닳고 닳았지만 선한 천성을 잃지 않은 장전병 그레이디(존 번탈 분), 그리고 행정병 출신으로 실전에 처음 투입된 노먼까지 등장인물 5인은 전쟁영화에서 친숙한 구성입니다. ‘백전불굴의 고참병은 죽고 신병은 고참병의 희생 덕분에 살아남는다’는 전쟁영화의 공식을 감안하면 누가 죽고 살아남을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퓨리’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적고 그들의 과거 및 가족 관계가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전쟁영화와는 차별화됩니다. 독일어와 성서에 능통한 콜리어는 전쟁 발발 전 무슨 직업에 종사했는지, 왜 장교가 아니라 하사관이 된 것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서를 끊임없이 인용하는 바이블 역시 전쟁 전 정확한 이력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노먼은 피아노 연주 장면을 통해 음악 교육을 받은 것이 암시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도 마찬가지로 생략됩니다. 관객은 단지 추측을 할 뿐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톰 행크스가 분한 밀러의 입대 전 직업이 무엇인지 관객은 물론 극중 부하들까지 궁금해 한 끝에 교사로 밝혀지는 전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광기 어린 지휘관으로 출연했던 브래드 피트는 ‘퓨리’에서 동일한 시대에 동일한 적들을 상대하는 동일한 직업인으로 등장하지만 180도 달라진 진중한 모습입니다. ‘바스터즈 거친 너석들’에서 어설픈 이탈리아어로 배꼽을 잡게 했지만 ‘퓨리’에서의 독일어 연기는 완벽한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기행 논란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샤이아 라보프는 정반대의 진중한 이미지로 출연해 군종병처럼 성경을 읊어대며 이미지 반전을 꾀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노먼 역의 로건 레먼입니다. 노먼은 풋내기 이등병이지만 결코 순종적이지 않습니다. ‘삼총사’, ‘노아’ 등에서 로건 레먼이 맡았던 물정 모르는 반항아 이미지가 여전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엽기습니다. 1990년대 떠오르는 스타였던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비슷한 이미지이지만 로건 레먼이 선이 보다 가늡니다.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로건 레먼은 어떨지 주목됩니다.

15세 관람가? 관대한 심의

연출의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콜리어가 노먼을 ‘남자’로 만들기 위해 독일인 여성 2명의 집을 방문해 머무는 장면의 호흡이 깁니다. 전장의 짧은 사랑과 더불어 전쟁의 추악함을 강조하고 의외의 긴장을 유발하기 위한 연출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134분의 러닝 타임을 감안하면 압축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화려한 엔딩 크레딧은 뒷북처럼 느껴집니다. 본편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확장시키기 위해 오프닝 크레딧으로 가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에서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것도 의외입니다. 노먼이 치우게 되는 전사한 병사의 신체 일부는 매우 끔찍합니다. 전투 장면에서도 머리가 터지고 다리가 날아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묘사됩니다. 전쟁영화라 심의가 관대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청소년 관람불가가 적절한 수준의 잔혹한 폭력 묘사입니다. 구체적 섹스 묘사는 없지만 섹스에 대한 비속한 대사 또한 15세 관람가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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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띠링띠링 2014/11/25 22:27 #

    분석 감사히 잘 봤습니다. 어쩌다보니 퓨리를 보게 되었는데, 겁쟁이 노먼이 나치를 증오하며 총질을 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걸 보며 '사회는 전쟁이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정말 레이저는 유치했습니다...스타워즈를 보는듯했어요..
  • 지나가던행인 2014/12/10 00:20 # 삭제

    레이저는 무슨 예광탄 모르시나 몰라도 중간에 고르도가 한번 설명해 줬을텐데? 흠잡자면 독일군과 색이 달랐다는 것 정도이지 스타워즈는 무슨..
  • 띠링띠링 2015/02/07 21:06 #

    예광탄 안쏴보신듯;;;
  • nishi 2014/11/25 23:38 #

    '이상은 평화롭지만 전쟁은 폭력적이다' 가 아니라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였죠.
  • 디제 2014/11/26 06:06 #

    지적 고맙습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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