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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 인류는 눈을 들어 우주를 보라 영화

※ 본 포스팅은 ‘인터스텔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황사로 인한 식량난으로 전 지구적 위기에 처하자 나사((미항공우주국)는 인류가 거주 가능한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섭니다. 딸 머피(매켄지 포이 분)의 방에서 나사의 비밀기지 좌표를 발견한 전직 우주비행사 쿠퍼(매튜 매커너히 분)는 머피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사에 합류해 아멜리아(앤 해서웨이 분) 등과 함께 우주로 떠납니다.

종말론적 세계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각본, 제작, 연출을 맡은 ‘인터스텔라’는 항성 간(interstellar) 여행을 묘사하는 SF 우주 모험 영화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타트렉’, ‘우주대모험 1999’ 등의 영화와 드라마를 연상시킵니다. 시간적 배경은 근 미래로 인류의 문명은 더욱 발달한 것이 아니라 외려 퇴보했습니다. 끊임없는 황사로 농사는 해마다 어려워져 식량난이 심화됩니다. 휴대 전화와 MRI는 사라졌습니다. 메이저리그를 상징하는 뉴욕 양키스는 동네야구장 같은 곳에서 전력 부족 탓인지 낮 경기를 치르며 야구 관람객을 위해서는 핫도그조차 없어 팝콘만 판매합니다.

군대도 해체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의 달 착륙은 부정되었으며 나사는 외형적으로는 사라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지구의 종말이 다가옴에 따라 인류는 어떻게든 새로운 주거환경을 찾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나사가 성서에서 예수가 살려낸 나자로의 이름에 착안해 ‘나자로 계획(Lazarus Mission)’에 나선 이유입니다. 지구의 모든 인류를 새로운 별로 이주시키는 것이 플랜A이며 지구의 인류가 이주할 수 없다면 그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류를 번성시키는 것이 플랜B입니다. 암암리에 활동하는 나사는 미미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우주비행사의 생명을 담보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우주선을 쏘아 올립니다.

두 가족 이야기

주인공 쿠퍼는 전직 우주비행사로 농업에 종사하지만 우주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우려에도 불구하고 3개의 별이 포함된 행성계를 탐사하는 우주선 ‘인듀어런스’의 승무원이 됩니다. 매튜 매커너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배역을 소화해왔지만 최근에는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몸으로 저항하는 소수자의 역할을 주로 맡아왔습니다.

‘인터스텔라’의 쿠퍼는 풍부한 우주과학 지식을 지닌 브랜드(마이클 케인 분)와 아멜리아 부녀 등과 달리 과학적 지식은 풍부하지 않지만 끈기와 직감을 갖춘 아날로그 노동자의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극중에서 반복 인용되는 딜런 토마스의 시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의 현신입니다. 풀어내면 ‘인류는 시련에도 우주를 포기하지 말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쿠퍼가 풍부한 지식을 갖추지 않은 대신 조연들이 그러한 것은 상대성 이론 등 과학적 설정에 낯선 관객의 눈높이를 주인공 수준으로 맞추기 위한 제작 의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매튜 매커너히가 또 다른 SF 우주 모험 영화였던 1997년 작 ‘콘택트’에서 맡았던 배역과는 다소 다릅니다.

쿠퍼의 딸 머피는 아버지의 끈기와 직감을 물려받았지만 동시에 과학에도 천재적 지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쿠퍼의 아들 톰까지 포함해 쿠퍼 일가는 집안 내력인 듯 하나같이 황소고집입니다. 머피는 자신을 두고 우주로 떠난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함께 인류를 구원하는 데 성공합니다. 머피는 소녀와 성인, 노인으로 3명의 배우가 나눠 맡아 등장하는데 제시카 차스테인이 맡은 성인 머피만이 아버지 쿠퍼와 직접 만나는 장면이 없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의 단골 조연 마이클 케인과 더불어 앤 해서웨이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이어 또 다시 함께 출연했습니다. 과학자 부녀로 등장한 이들까지 포함해 ‘인터스텔라’는 두 가족 이야기가 주축을 이뤄 할리우드 오락 영화에 필수적인 가족 영화의 요소를 지니게 됩니다. 머피와 아멜리아가 떠난 이후 브랜드와 머피는 유사 부녀 관계를 형성합니다. ‘인터스텔라’의 각본을 크리스토퍼 놀란과 조나단 놀란 형제가 함께 집필한 것과도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

충직한 로봇, 배신의 인간

우주 개척을 다룬 심오한 SF 대작이라는 점에서 ‘인터스텔라’는 여러모로 스탠리 큐브릭의 1968년 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비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는 주제의식에서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이 있습니다. 로봇에 대한 관점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스스로 사고하는 로봇 ‘할(HAL)’이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전개를 통해 기술 문명에 대한 과신을 경계했습니다. 할은 핏기와 억양이 없는 음성부터 불길했습니다.

하지만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다릅니다. 타스, 케이스 등 극중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우주비행사의 고독한 원정길에 동반하는 파트너로 유머 감각과 배려까지 갖췄습니다. 목소리 또한 할과 달리 친근합니다. 외형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를 연상시켜 몰개성적인 비석처럼 보이지만 변형 능력을 지녀 결정적인 순간 민첩하게 행동합니다. 우주비행사의 안전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충직한 로봇들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처럼 이기적이기 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연상시킬 정도로 인간에 충직합니다. ‘인터스텔라’의 로봇에 대한 우호적 시선은 영화 전반을 채우고 있는 기술 문명에 대한 낙관론과 상통합니다.

배신은 인간의 몫입니다. 인듀어런스가 도달한 두 번째 별은 최고의 과학자 만(맷 데이먼 분)이 먼저 탐사한 곳으로 얼음으로 가득합니다. 만은 긴 동면에서 깨어나 쿠퍼 일행을 반기며 인류가 살 수 있는 별이라며 정착지로 추천합니다. 하지만 외로움에 못 이겨 우울과 광기에 휘말린 만이 꾸민 자작극임이 드러납니다. 쿠퍼는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입니다. 결과적으로 쿠퍼는 구조되고 만은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지만 역시 인간이 경계해야 할 대상은 인간임을 강조합니다.

맷 데이먼은 사실상 유일한 악역으로 깜짝 출연해 반전을 이끌어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포스터 등에도 그의 이름은 제시되지 않았는데 마치 ‘세븐’에서 연쇄살인마 존 도우 역으로 캐스팅된 케빈 스페이스가 개봉 전까지 숨겨졌던 것과 비슷합니다. 맷 데이먼이 최고의 과학자 배역을 맡은 것은 그가 실제 하버드대 출신이며 ‘굿 윌 헌팅’에서 영재로 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지만 배신자 악역을 맡은 것은 ‘디파티드’의 이미지를 합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부정적 측면을 일깨우기에 SF 영화의 단골인 외계인과 대사를 통해 언급되는 유령은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개척정신과 사랑

철학 텍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보다 이해하기 쉬우며 대중적인 ‘인터스텔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웜홀, 블랙홀, 특이점 등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영화입니다. 영화화하지 않고 SF 소설로 출간해도 호평을 받았을 만한 오리지널 각본입니다. 평소 우주과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모처럼 등장한 정통 SF 대작에 반색하겠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난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과학적 지식은 소재에 불과합니다. 주제의식과는 별개입니다.

첫 번째 주제는 개척정신입니다. 미국인이 중시 여기는 개척정신의 실체는 아메리칸 원주민 학살과 토지 약탈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지만 어찌됐든 지상에 국한된 눈을 높이 들어 올려 우주로 향하자는 것이 ‘인터스텔라’의 주제의식입니다.

현재 미국의 우주 개발은 답보 상태입니다. 한때 우주 개발에 광분했던 라이벌 소련의 몰락과 미국의 경제난으로 인해 나사에 대한 예산 투입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된 우주를 포기하는 것은 인류의 우물 안 개구리 전락을 의미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성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쿠퍼 일행이 탑승한 우주선의 이름이 인듀어런스(Endurance), 즉 ‘인내’인 것은 의도적인 작명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사랑입니다. 쿠퍼가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딸과 재회하겠다는 일념입니다. 머피는 100년의 인고의 세월을 넘어 임종 직전에 쿠퍼와 재회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건버스터’를 연상시키는 결말입니다. 머피의 평생에 걸친 ‘인내’는 곧 우주선 인듀어런스의 이름과도 상통합니다. 아멜리아는 사랑하는 에드먼드와의 재회를 위해 여정에 나섰습니다. 결말에서는 두 주인공의 새로운 사랑을 암시합니다. ‘인터스텔라’의 주제의식은 좁게는 가족애와 로맨스, 넓게는 인류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쿠퍼가 죽음을 각오하고 블랙홀로 뛰어드는 이유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향한 직감과도 연관 지을 수 있는데 쿠퍼와 머피의 직감은 인류를 구원합니다.

관객이 동참하는 우주여행

영상은 압도적입니다. 쿠퍼가 집을 떠나는 장면을 위주로 인듀어런스가 발사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는데 인듀어런스의 외부가 아니라 우주비행사들이 탑승한 내부 위주로 제시되어 우주선 발사는 사실상 생략됩니다. 중요 볼거리가 될 수 있는 우주선 발사가 생략되는 이유는 우주를 소재로 한 기존의 영화들과는 차별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로 보입니다. 그 이후부터 압도적인 볼거리로 가득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우주정거장으로 시작해 토성, 웜홀은 물론 대사로 언급될 때부터 클라이맥스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될 블랙홀까지 제시됩니다. 거대한 토성의 고리 주변을 하나의 점과 같은 인듀어런스가 항행하는 장면은 숨죽일 만큼 엄숙하며 아름답습니다. 마치 관객이 실제 우주여행에 동참한 듯한 착각마저 유발합니다. 공간적 배경이 지구 근방에 머물렀던 ‘그래비티’를 능가하는 스케일입니다. 진공이라 소리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의 장면은 ‘그래비티’와 마찬가지로 무음을 재현해 엄숙합니다. 효과음 무음으로 인한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스 짐머의 웅장하면서도 비장한 음악이 나섭니다. 이별과 죽음 등 슬픔을 상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망과 구원을 말하는 오르간과 피아노의 선율이 강렬합니다.

먼저 찾아가는 2개의 행성은 각각 물과 얼음으로 가득한데 아이슬란드에서 촬영된 얼음 행성은 스크린을 가득 채워 한기마저 느끼게 합니다. 첫 번째 행성에서 몰아닥치는 엄청난 해일은 지구에서 틈나는 대로 불어오는 거대 황사를 연상시킵니다. 블랙홀 내부에서 미지의 물질이 쿠퍼를 엄습하는 장면 또한 비슷한 맥락입니다. 황사, 해일, 그리고 미지의 물질은 인류가 생존과 번성을 넘어서야 할 거대한 자연과 우주의 장벽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부 장면 호흡 길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선호하는 IMAX는 쿠퍼가 옥수수 밭을 뚫고 인도의 무인비행기를 포획하려는 장면부터 활용됩니다. 옥수수 밭은 미국적이면서도 외계인의 미스터리 서클을 연상시키는 SF적 공간입니다.

서두에서는 노인들의 증언을 삽입해 다큐멘터리와 같은 사실성을 강조합니다. 노인들의 증언은 결말 직전에 다시 한 번 삽입되어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후반에 제시되는 거주구 내부의 야구 장면은 전반부 뉴욕 양키스의 경기 장면과 대조됩니다. 인류가 위기를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했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쿠퍼와 머피가 각각 결정적 위기에 처하는 장면에서는 교차 편집으로 위기감을 극대화합니다. 하지만 머피가 톰의 옥수수 밭에 불을 지르고 가족들을 대피시키는 장면과 블랙홀 내부의 5차원 장면은 호흡이 깁니다. 169분의 긴 러닝 타임을 감안하면 압축 편집하는 편이 나았을 듯합니다. 국내 수입사의 책임이지만 IMAX의 한글 자막이 지나치게 큰 것은 몰입을 방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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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rcturus 2014/11/08 17:21 #

    엄청 기대하던 영화였고, 오늘 연속으로 2번 봤는데 제 느낌이 전반적으로 디제님의 평과 비슷하네요:) 특히 타스에 대한 평에 100%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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