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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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 담담하게 그려지는 가족 해체 영화

오즈 야스지로의 ‘도쿄 이야기’의 전반부를 보면서, 왜 이런 영화가 걸작이라고 불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흑백 영화인데다가, 카메라 워킹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만 카메라가 움직인 것이 두 번인가, 세 번 밖에 없었습니다. 그 흔한 클로즈업도 아예 없더군요.), 일본인 특유의 같은 말을 반복하는 예의 차리는 수사법 - 이를 테면 상대방의 말에 동감을 표시할 때에도, “그래, 그런가, 그럴 지도 모르겠군.”하는 식의 특유의 동어반복의 수사법; 무라카미 하루키는 베를린에서 독일어로 더빙된 ‘도쿄 이야기’를 보면서 저런 식의 대사가 막상 독일어로 더빙되니까 매우 이상하게 들렸다고 수필집에서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 때문에 매우 지루했습니다. 도대체 시골에서 도쿄로 올라온 부모들이 자식의 집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무슨 영화의 내러티브가 된단 말인가, 하며 고깝게 여겼던 것이죠.

하지만 의사인 큰 아들 코이치와 미용실을 하는 큰 딸 시게의 집에서 잘 수 없게 되고, 시끄러운 온천에서 견딜 수 없게 된 노부부가 갈 곳이 없어서 길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는 장면에서, ‘어, 이 영화 좀 특이한 걸.’하는 느낌 덕분에 이후부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도쿄 이야기’는 배경과 등장 인물 이름을 한국으로 고스란히 옮겨 와도 전혀 문제가 없는 작품입니다. 서울로 자식들을 내보낸 시골의 부모가 서울의 자식 집들을 찾아다닐 때에 발생할 수 있는 일들과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가족의 해체는 자식들이 도쿄로 올라오면서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시골에서 노구를 이끌고 올라온 부모를 도쿄의 자식들이 냉대할 때 정신적인, 그리고 진정한 가족 해체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어머니가 아픈데도 의사인 큰 코이치는 전혀 모르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시게는 유품을 탐내지만 이들이 악인처럼 묘사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정지된 카메라처럼 조용하고 담담하게 묘사할 뿐입니다. 흑백으로 정지된 영상은 마치 수묵화나 일본 특유의 전통화처럼 느껴지는군요. 그래서인지 가족 해체에 대한 오즈 야스지로의 시각은 결코 가족 해체는 있어서는 안 된다, 라는 식의 완고함이나 고집스러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가족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에서 죽은 아들 쇼지의 미망인이자 며느리인 노리코는 어렵게 혼자 살면서도 시부모에 대해 극진한 태도를 보이며, 학교 선생님인 막내딸 교코는 도쿄로 올라오겠다는 욕심 없이 홀로 된 아버지를 모시게 됩니다. 양념이 극도로 절제된 담백한 일본 음식처럼 ‘도쿄 이야기’ 역시 절제된 담담한 영상 속에서 잔잔한 파문처럼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 작품을 이제는 노년기에 막 접어드신 부모님과 함께 본다면 좋겠습니다.

덧글

  • 노마드 2004/11/03 15:10 #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있는 뒷모습에 흐르던 적막감이 잊혀지지 않지요.
    저는 얼마 전에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이야기 <가을햇살>을 저희 어머니와 다시 보다가 괜히 더 센티멘탈해져서 결국 끝까지 다 못 보고 말았답니다.
    아~역시 나이가 드는 걸까요..
    음...그런가..그럴지도 모르죠...
  • 디제 2004/11/03 17:15 #

    노마드님/ 노마드님께서도 이 영화를 보셨군요. 아마 조금 어려서 '도쿄 이야기'를 봤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지내고 그럭저럭 저도 나이를 먹는 것 같아서 중반 이후부터는 찡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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