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의사인 큰 아들 코이치와 미용실을 하는 큰 딸 시게의 집에서 잘 수 없게 되고, 시끄러운 온천에서 견딜 수 없게 된 노부부가 갈 곳이 없어서 길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는 장면에서, ‘어, 이 영화 좀 특이한 걸.’하는 느낌 덕분에 이후부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도쿄 이야기’는 배경과 등장 인물 이름을 한국으로 고스란히 옮겨 와도 전혀 문제가 없는 작품입니다. 서울로 자식들을 내보낸 시골의 부모가 서울의 자식 집들을 찾아다닐 때에 발생할 수 있는 일들과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가족의 해체는 자식들이 도쿄로 올라오면서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시골에서 노구를 이끌고 올라온 부모를 도쿄의 자식들이 냉대할 때 정신적인, 그리고 진정한 가족 해체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어머니가 아픈데도 의사인 큰 코이치는 전혀 모르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시게는 유품을 탐내지만 이들이 악인처럼 묘사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정지된 카메라처럼 조용하고 담담하게 묘사할 뿐입니다. 흑백으로 정지된 영상은 마치 수묵화나 일본 특유의 전통화처럼 느껴지는군요. 그래서인지 가족 해체에 대한 오즈 야스지로의 시각은 결코 가족 해체는 있어서는 안 된다, 라는 식의 완고함이나 고집스러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가족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에서 죽은 아들 쇼지의 미망인이자 며느리인 노리코는 어렵게 혼자 살면서도 시부모에 대해 극진한 태도를 보이며, 학교 선생님인 막내딸 교코는 도쿄로 올라오겠다는 욕심 없이 홀로 된 아버지를 모시게 됩니다. 양념이 극도로 절제된 담백한 일본 음식처럼 ‘도쿄 이야기’ 역시 절제된 담담한 영상 속에서 잔잔한 파문처럼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 작품을 이제는 노년기에 막 접어드신 부모님과 함께 본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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