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장애인 소녀 조제(구미코; 이케와키 치즈루 분)와 남자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의 사랑 이야기인데 일본 특유의 만화적이고 판타지적인 분위기가 돋보입니다. 아마도 같은 주제로 한국에서 영화가 만들어졌더라면 그렇게 쿨하게 접근하는 것은 어려웠을 겁니다. 조제와 사귀는 츠네오에게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비난과 독촉이 질척거리며 집중되는 주말 애증 드라마가 되었기 십상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오사카 사투리에 할머니 말투를 쓰는 조제가 삶에 대해 보여주는 쿨한 태도 덕분에 영화는 전반적으로 그녀의 분위기를 따라갑니다. 미인은 아니지만 개성이 돋보이는 이케와키 치즈루의 흡인력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더군요. (아마 여자분들은 이케와키 치즈루보다는 ‘워터 보이즈’에도 등장했던 잘생긴 츠마부키 사토시를 보시느라 정신 없으셨을 듯.) 게다가 멜러 영화의 전매 특허인 ‘순결한 사랑’, 즉 섹스를 배제한 비현실적인 사랑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섹스에 대해 담백하고 따뜻하게 묘사함으로서 요즘 세대들의 공감을 자아내도록 한 것도 장점입니다. 하지만 장애인 여성과의 사랑을, 그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회피한 채 아름답게만 묘사한다는 점에서 판타지에 가까우며 구미코의 할머니, 그녀의 유일한 고아원 동기인 정비소 청년, 변태 아저씨, SM을 고등학교 때부터 즐긴 카나이 하루키 등은 다분히 전형적인 만화의 캐릭터라는 점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판타지와 만화에 근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 영화는 근본적으로 판타지이며 만화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현실의 사랑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환상적이고 만화적으로 겹쳐져야만 하니까요. 단순히 말해 사랑은 ‘마법’아닙니까. 그래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면서는 주인공들과 함께 미소 짓고 슬퍼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저도 사랑이 그리운 것이겠죠. 사족을 덧붙이자면 '나도 언젠가 나이를 먹는다구.'라는 츠네오의 대사가 가장 찡하더군요.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