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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툼스톤 - 리암 니슨, 이번엔 무면허 사립탐정 영화

※ 본 포스팅은 '툼스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장 강도와의 격렬한 총격전 이후 경찰에서 사직한 스커더(리암 니슨 분)는 무면허 사립탐정으로 고독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는 중독자 모임에서 만난 피터(보이드 홀브룩 분)로부터 동생 케니(댄 스티븐스 분)를 만나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케니는 아내가 납치되어 거액의 몸값을 건넸지만 살해되었다며 납치범들을 색출해달라고 스커더에 의뢰합니다.

1999년의 의미

'툼스톤'은 1992년 출간된 로렌스 블록의 추리 소설 '무덤으로 향하다(A Walk Among the Tombstones)'를 원작으로 스콧 프랭크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1999년 뉴욕을 배경으로 마약밀매상의 가족 중 여성을 골라 납치해 거액의 몸값을 받아낸 뒤 토막 살해하는 잔혹한 납치범 일당을 찾아나서는 해결사를 묘사합니다. 마약밀매상은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내나 연인이 납치되어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서사의 출발점으로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원작 소설과 달리 새롭게 설정된 시간적 배경 1999년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스커더는 아날로그적 인간입니다. 특유의 예리한 감과 몸을 사리지 않는 조사를 통해 사건의 핵심에 접근합니다. 하지만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한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활용할 줄 몰라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스런 인물입니다. 반면 소년 TJ(브라이언 아스트로 브래들리 분)는 스커더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도록 만들며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를 활용해 정보를 제공합니다. 스커더와 TJ는 각각 아날로그와 디지털, 구세대와 신세대를 대변합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를 모은 Y2K도 소재로 활용됩니다. 택시의 광고판과 거리의 낙서에 Y2K가 눈에 띄지만 TJ와 인질범들은 각각의 대사를 통해 'Y2K를 우려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피터는 1991년 발발한 걸프전 참전 퇴역군인이고 케니는 벤처에 투자할 의향이 있었다며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마지막 장면에 제시되는 뉴욕의 풍경 속에는 멀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포함되어 향수를 자극합니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2001년 9.11 테러에 의해 파괴된 바 있습니다.

뉴욕은 묘지다

원작 소설의 제목을 승계한 영화의 원제 '무덤으로 향하다(A Walk Among the Tombstones)'에서 드러나듯 묘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공간적 배경입니다. 단순히 죽은 자들이 묻히는 공간이라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납치범들이 피해자의 사체를 유기해 묘지관리인인 공범 제임스(올라푸 다리 올라프슨 분)를 협박하는 공간이자 납치범과 스커더의 일행 간에 총격전이 발생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범죄의 도시 뉴욕을 묘지에 비유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서두의 거리 총격전과 후반부 묘지에서의 총격전 장면의 음향은 매우 강렬해 인상적입니다. 하드보일드가 지배하는 건조한 영화이지만 기괴한 외모를 지닌 거구의 제임스가 매우 작은 묘지관리용 차량에 탑승해 첫 등장하는 장면은 기묘한 불일치로 인해 웃음을 자아냅니다.

오마주들

걸작 추리소설 및 영화를 연상시키는 요소들도 많습니다. 피터와 케니의 크리스토(Kristo) 형제의 이름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1844년 작 '몽테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risto)'을 연상시킵니다.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은 유사합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추리소설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 고전입니다.

러시아 마약업자의 딸로 마지막에 납치되는 14세 소녀 루시아(다니엘 로즈 러셀 분)의 애완견의 이름은 '왓슨'으로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홈즈의 파트너 왓슨을 연상시킵니다. 스커더와 TJ의 관계가 홈즈와 왓슨에 비유된다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TJ는 스커더와 사립탐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더쉴 해미트 원작의 걸작 추리 소설이자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한 '말타의 매'의 샘 스페이드를 입에 올립니다.

스커더가 TJ에게 사립탐정의 필수 요건으로 '튼튼한 방광'을 거론하며 잠복 수사를 강조하는 것은 1971년 작 걸작 스릴러 '프렌치 커넥션'을 연상시킵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차디찬 한겨울에 잠복 수사를 통해 범죄자를 색출하는 과정을 묘사했으며 마약이 소재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툼스톤'은 '프렌치 커넥션'의 오마주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스커더가 애완견 이름을 확인하며 루시아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통화는 '터미네이터 2'에서 애완견 이름을 통해 존 코너의 양부모의 생존 여부를 확인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스커더가 묘지에서 범인들과 만나기 전에 8년 전 총상을 입어 구멍 난 낡은 코트를 꺼내 입는 장면은 '영웅본색 2'에서 주윤발이 분한 자건이 '영웅본색'에서 무수한 총격을 받고 사망한 쌍둥이 형 소마의 구멍 난 코트를 챙겨 입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무엇보다 루시아의 아버지 유리(세바스찬 로셰 분)과 인질범이 통화할 때 스커더가 전화를 빼앗아 능수능란하게 협상하며 통화하는 장면은 '테이큰'의 가장 유명한 전화통화 장면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직 수사관으로 고독한 삶을 살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스커더의 캐릭터는 근본적으로 '테이큰' 시리즈와 '논스톱'에서 리암 니슨이 연기했던 주인공의 재활용입니다. 현직이 아닌 전직 수사관이어야만 행동반경이 넓어져 불법적 조사가 가능하며 잔혹한 폭력을 통한 복수 혹은 응징이 가능한 무법자로 화해 관객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다는 공식을 리암 니슨 주연의 스릴러들은 철저히 활용합니다.

소년소녀 등장, 긴장감 떨어진다

호러의 요소가 강한 스릴러이지만 스케일은 크지 않습니다. 총격전 장면은 결말을 제외하면 두 번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테이큰' 시리즈와 '논스톱'도 규모가 큰 액션 영화는 아니었지만 '툼스톤'은 그보다 더욱 액션의 빈도와 영화의 규모가 작습니다.

계획된 범죄에 의해 소년 혹은 소녀가 피살되거나 혹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살인이 이루어지는 것을 금기시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감안하면 TJ와 루시아가 등장하는 장면은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특히 납치범들이 루시아를 타깃으로 정한 이후 더 이상 여성은 살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개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TJ의 휴대 전화 벨소리를 납치범들이 듣고도 무시하는 장면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차라리 TJ가 인질이 되는 편이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스커더가 납치범들의 집을 들락날락하는 전개도 긴장감이 떨어지는 원인입니다. 스커더가 알버트(아담 데이빗 톰슨 분)를 살해하는 귀결은 지나치게 전형적입니다. 그에 앞서 스커더가 케니에게 알버트를 살려둔 채 경찰에 신고하라고 권했음을 감안하면 알버트가 케니마저 살해한 것이 응징의 이유로 보이지만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악을 확고히 응징한다는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 결말에 지나치게 충실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수의 12제자를 연상시키는 12조의 중독자 치유 과정을 삽입했으니 알버트를 경찰에 넘겨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결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과 구원의 요소를 활용하는 납치를 소재로 한 범죄 스릴러라는 점에서는 2013년 작 '프리즈너스'와 공통점이 있지만 깊이와 트릭의 측면에서는 '프리즈너스'에 미치지 못합니다. '프리즈너스'는 클라이맥스에 가서야 범인의 실체가 드러나지만 '툼스톤'은 중반에 범인의 정체가 노출되며 이후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TJ가 소파에 잠든 자신의 집으로 스커더가 귀가하는 장면은 유사 부자 관계의 성립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스커더의 집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뉴욕의 풍경은 CG의 티가 완연해 어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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