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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 야마시타 노부히로, 절정에 달하다 영화

※ 본 포스팅은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대학을 졸업한 다마코(마에다 아츠코 분)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칸 스온 분)에 얹혀살며 무위도식합니다. 다마코는 구직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사도 전혀 돕지 않습니다. 아버지조차 포기했는지 다마코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느림의 미학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대학 졸업 후 구직 활동을 포기한 20대 초반 여성의, 가을로 시작해 이듬해 여름으로 이어지는 1년간의 삶을 묘사합니다. ‘린다 린다 린다’, ‘마츠가네 난사 사건’, ‘마이 백 페이지’ 등을 통해 일본 청춘의 고뇌를 섬세하고 사실적이면서도 나른하게 포착했던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장점은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의 등장인물은 매우 적습니다. 다마코와 아버지 단 둘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개성에 충실한 캐릭터 구성입니다. 공간적 배경 또한 야마나시 현의 코후 시로 지방 도시로 좁게 한정되어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대도시가 아니기에 느긋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린다 린다 린다’와 ‘마츠가네 난사 사건’ 또한 지방 소읍을 배경으로 한 바 있습니다. 도쿄를 배경으로 전공투에 청춘을 바친 청년들을 묘사해 야마시타 노부히로에 어울리지 않는 소재였던 ‘마이 백 페이지’와 달리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그에게 다시 어울리는 옷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대사는 일상적이며 절제되어 있습니다. 대사와 대사 사이의 침묵은 깁니다. 침묵 속에는 면전에 있는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일본인 특유의 신중함과 배려가 깃들어 있습니다. 느림의 미학이 돋보입니다. 과묵하면서도 속 깊은 인물을 묘사하는 데 능숙했던 오즈 야스지로가 21세기에 영화를 연출했다면 야마시타 노부히로와 유사했을 듯합니다. 78분으로 러닝 타임은 짧지만 대사가 적고 극적인 사건이 없는 만큼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라 일부 관객들은 지루할 수 있습니다. 코미디의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미소를 짓게 합니다.

제목의 의미

타이틀 롤 다마코(タマ子 ; タマこ)는 ‘계란’을 의미하는 일본어 ‘たまご’와 발음이 유사합니다. 일본에서는 ‘たまご’를 병아리로도 부화하지 않았다 하여 ‘아직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는데 주인공 다마코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채무 이행 유예를 의미하는 제목 ‘모라토리움’과 상통합니다.

다마코는 구직 의사가 없습니다. 홀아버지가 책임지는 빨래, 요리, 청소 등 가사를 도우려 하지도 않습니다. 연애에 의욕을 보이기는커녕 동성 친구조차 없습니다. 고교 동창과의 조우도 피하려 합니다. 늦잠, 게임, 만화책 읽기로 시간을 때웁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스포츠 용품 매장과 집이 일체화된 구조라 아버지와 긴 시간을 보내지만 부녀의 대화는 거의 없습니다. 아버지가 배려가 깊어 과묵하기도 하지만 다마코가 대화에 무성의하기 때문입니다.

다마코가 왜 좌절해 의욕 상실이 되었는지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우울증도, 은둔형 외톨이도 아닙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병적인 증상을 통해 다마코를 정형화된 캐릭터로 몰고 가는 손쉬운 전개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다마코가 뉴스를 시청하며 ‘일본은 안 돼’라고 불평하는 것처럼 일본의 현실로 인해 좌절한 것 아닌가 짐작할 수 있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다마코와 마찬가지로 관객 또한 스스로 정답을 찾아야 합니다. 20대의 취업률이 갈수록 하락하는 한국의 현실이 다마코가 처한 일본의 현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거대담론을 논하려 하거나 사회적 대안을 내놓으려 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합격!’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는 가끔 전화 통화만 하는 사이이며 결혼해 출가한 언니는 명절 때만 고향을 찾습니다. 왜 부모가 이혼했는지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섣달 그믐날 밤에 온 어머니의 것으로 보이는 안부 전화를 누군가가 받았는지, 언니 부부는 어떤 인물들인지 직접 제시하지 않고 생략해 관객 스스로 여백을 메우도록 합니다. 어머니와 언니가 부녀의 곁에 없기에 자연스레 서사는 다마코와 아버지에 집중해 전개됩니다.

다마코가 위기의식을 지니게 되는 계기는 아버지가 액세서리 강사인 중년의 이혼녀 교코(토미타 야스코 분)와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중학생 소년 히로시(이토 세이야 분)가 유일한 말벗이었던 다마코는 교코와의 첫 만남에서 어색함을 메우기 위해서인지 말문이 트여 한참을 떠듭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흥미진진한 장면입니다.

다마코는 교코가 마음에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점하고 있는 아버지를 빼앗길까 두려움을 숨기지 못합니다. 교코는 다마코의 경쟁자인 셈입니다. 다마코는 평소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 어머니에 전화해 두려움을 토로하지만 타인이 된 어머니는 충고조차 하지 않습니다.

클라이맥스는 다마코가 아버지에게 교코와 결혼 여부를 묻는 식사 장면입니다. 하지만 다마코는 아버지로부터 취직 여부와 무관하게 독립하라고 ‘명령’합니다. 드디어 아버지가 확고한 입장을 보이자 다마코는 ‘합격!’을 외칩니다. 평소 아버지의 미온적인 태도에 자신을 투영했기에 다마코는 아버지를 싫어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다마코는 취업 면접관으로부터 ‘합격!’을 듣게 될 것입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다마코처럼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만화적 측면을 갖춘 영화인데 다마코가 ‘합격!’을 외치는 장면은 만화의 명장면 컷처럼 강한 울림을 선사합니다. 이제 다마코는 껍질을 깨고 햇병아리가 되려 합니다.

‘자연 소멸’

하지만 다마코가 분가하거나 취직하는 극적인 장면으로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가 마무리되지는 않습니다. 가사를 도우며 변화를 엿보이기 시작한 다마코가 히로시와 아이스 바를 먹고 히로시가 자신의 여자친구가 ‘자연 소멸’되었다고 언급하며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인간의 삶이란 일반적으로 무엇인가가 부지불식중에 나타났다 자연스레 소멸되기 마련인데 그 과정을 히로시의 ‘자연 소멸’이라는 단어를 통해 압축한 것입니다. ‘계란’에 해당되는 다마코의 방황도 ‘자연 소멸’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기승전결이 불명확하며 불친절한 영화이지만 대부분의 인간의 삶은 기승전결이 불명확해 오락 영화 속 러닝 타임 2시간처럼 극적인 사건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21세기 취업난의 현실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청춘을 묘사한 매우 현실적인 영화로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다마코, 야마시타 노부히로와 마에다 아츠코의 합작품

다마코는 ‘린다 린다 린다’에 등장한 여고생 중 한 명이 성장한 미래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린다 린다 린다’에서 4명의 여고생은 밴드를 결성해 학교 축제를 준비하고 공연하는 작은 성취에 만족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대학을 거치며 성인이 된 뒤 현실에 좌절했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마이 백 페이지’에서 공감하기 어려웠던 두 남자 주인공에 비하면 ‘린다 린다 린다’와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의 여주인공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인물들입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남성이지만 섬세한 시선 덕분에 남성 캐릭터보다는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 보다 재능이 있는 듯합니다. 엔딩 크레딧 후 추가 장면에서 모자를 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직접 등장합니다.

다마코는 야마시타 노부히로와 마에다 아츠코의 합작품입니다. 마에다 아츠코는 일본 최고의 아이돌 그룹 AKB48의 인기 멤버 출신이지만 예쁜 것과는 담을 쌓은 매력 전무의 대졸 백수를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의 또 다른 매력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음식들입니다. 다마코의 아버지가 요리에 능해 만두, 소바, 카레 등의 일본 가정식이 제시되며 아버지는 사케와 맥주를 반주로 곁들입니다. 샐러드, 파스타, 당고 등 다양한 음식도 등장합니다. 소위 ‘먹방’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영상물의 먹는 장면은 주목을 끌고 있는데 가족을 중시하는 동아시아의 영화 및 드라마에서 가족의 식사 장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대사 ‘합격!’도 밥상머리에서 나왔습니다.

린다 린다 린다 - 소녀들의 작지만 아름다운 성취
마츠가네 난사 사건 - 기묘하고 파렴치한 소읍의 사람들
마이 백 페이지 - 시대의 정수를 위해 분투한 청년들

http://twitter.com/tominodij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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