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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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원티드 맨 - 캐스팅 잘못, 감정 이입 어렵다 영화

※ 본 포스팅은 ‘모스트 원티드 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일 정보부 비밀 부서의 팀장 군터(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분)는 체첸에서 함부르크로 밀입국한 청년 이사(그레고리 도브리기 분)에 주목합니다. 이사는 인권 변호사 애나벨(레이첼 맥아담스 분)을 통해 은행가 토마스(윌렘 데포 분)와 접촉해 러시아 군벌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거액의 유산을 기부하려 합니다. 군터는 기부 과정에 암암리에 개입해 알카에다의 자금줄 파이잘 박사(호마윤 엘사드 분)를 엮어내려 합니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유작

‘모스트 원티드 맨’은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2008년 작 동명의 원작 소설을 안톤 코르빈 감독이 영화화했습니다. 존 르 카레는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서두의 자막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9.11 이후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독일 정보부 비밀 요원들의 활동을 묘사하는 스릴러입니다.

주인공 군터의 행동 양식은 독특합니다. 위험인물의 발견 시 재빨리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해 보다 윗선을 확보하려 합니다. 대사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피라미를 미끼로 한 단계 씩 밟아 올라가 상어를 낚는 방식입니다. 군터는 이사가 행동하도록 내버려둬 파이잘을 낚으려 합니다. 하지만 군터의 궁극적 목표는 파이잘이 아니라 보다 윗선입니다.

따라서 군터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편이 되도록 포섭해나갑니다. 애나벨과 토마스, 파이잘의 아들 자말(메디 데비 분)을 포섭하며 궁극적으로는 파이잘도 포섭하려 합니다. 포섭한 자말이 내적 갈등을 일으키자 계속해서 파이잘을 감시하도록 군터가 설득하는 장면은 ‘모스트 원티드 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아들이 정보기관의 끄나풀이 되어 아버지를 배신하는 첩보전의 추악한 본질이 부각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협박과 회유를 적절히 배합해 비협조적이거나 위험한 인물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군터의 능력은 탁월합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의 최대 매력입니다.

군터는 지난 2월 46세의 이른 나이로 사망한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에 의해 현실적 인물로 형상화됩니다. 연인조차 없이 일에 함몰된 독신으로 단조로운 생활을 영위합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골초로 임무 중에도 위스키를 즐깁니다. 서민적인 술집에서의 술 한 잔과 피아노 연주가 취미입니다. 그가 미국 대사관의 첩보 담당 마사(로빈 라이트 분)와 접촉하던 술집에서 술에 취해 여성을 구타한 남성을 응징하는 행동은 그의 인간적인 측면을 상징합니다. 파이잘을 포섭하는 작전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보다 안전한 세상을 위해’라며 영화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모습은 진한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엔딩 크레딧에서도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막이 삽입됩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의 또 다른 주인공은 도시 함부르크입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밀려들고 불법 체류하는 이국적 항구 도시로서 차가운 매력이 강조됩니다. 컨테이너 박스가 쌓인 항구, 밤중의 지하철, 고풍스런 건물이 내려다보이는 옥상 등 다양한 공간이 조명됩니다.

왜 ‘청소년 관람불가’?

감시와 피감시, CCTV와 도청, 휴대전화와 USB 등 최근 스릴러의 전형적 요소들을 사용하면서도 액션, 총격전, 살해, 고어 등의 요소는 거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사와 애나벨이 도주할 때 잠시 추격전 장면이 삽입되나 길지는 않습니다. 애나벨이 마련한 이사의 은신처에는 목재용 전기톱이 준비되어 있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고어 장면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목재용 전기톱은 맥거핀일 수도 있지만 이사와 애나벨이 맞이할 이별과 비극을 감안하면 상징적 소품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액션이나 자극적 재미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모스트 원티드 맨’은 지루한 영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섹스 장면이나 노출과 같은 볼거리 또한 배제되어 있는데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것은 의외입니다. 영상만 놓고 보면 12세 관람가여도 큰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아마도 이사의 체첸인 어머니가 아버지인 러시아 군벌에 15세 때 성폭행당해 이사를 출산했다는 설정이 청소년 관람불가의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모스트 원티드 맨’도 아무도 희생되지 않고 주인공이 원하는 결말에 도달하지는 않습니다. 애나벨이 원하는 대로 군터는 이사에게 독일 여권을 발급받아주고 파이잘의 신병을 확보해 구슬리려 하지만 라이벌인 모르(라이너 보크 분)가 마사와 손잡고 군터의 공을 가로챕니다. 군터의 경력을 베이루트에서 망친 미국이 영향력을 과시하며 다시 한 번 개입한 것입니다. 이사와 파이잘은 체포되고 군터는 빈손이 됩니다. 피라미로 상어를 낚으려다 자신이 상어를 낚는 미끼가 되었음을 군터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의 비교

‘모스트 원티드 맨’은 존 르 카레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2011년 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작자가 동일하며 고독한 주인공을 묘사하는 하드보일드 스파이 영화라는 점에서 우선 두 작품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스트 원티드 맨’에서 가장 인상적인 실내 공간으로 군터와 마사가 회의를 하는 노란색 사무실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방음 처리된 갈색 벽으로 점철된 컨트롤의 사무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현실적인 SF의 이미지마저 제공하는 비밀스러우면서 기묘한 이미지의 회의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각지를 배경으로 다양한 등장인물들 속에서 내부의 적을 찾아나서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비해 배경이 함부르크에 국한되며 등장인물의 숫자도 적은 ‘모스트 원티드 맨’은 영화적 재미가 부족합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갖춘 중층적이며 암시적인 매력이 ‘모스트 원티브 맨’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캐스팅부터 어긋났다

‘모스트 원티드 맨’의 가장 큰 약점은 캐스팅, 즉 기획 단계부터 지적할 수 있습니다. 중요 배역을 맡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윌렘 데포는 미국인 배우이며 레이첼 맥아담스는 캐나다 출신입니다. 이들은 영어 대사를 사용하면서도 모두 함부르크에 적을 둔 독일인으로 등장해 상당히 어색합니다. 세 명의 중요 배우들이 전혀 독일인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극중에서 평소 영어로 말하던 군터가 미국인 마사를 만나서도 계속 영어를 사용하는 장면이 수차례 제시되는 것은 더더욱 군터를 미국인처럼 보이게 합니다. 할리우드의 전형적 금발 미녀 이미지의 레이첼 맥아담스가 자전거와 필드 재킷을 애용하는 독일인 좌파 인권 변호사를 연기한 것은 미스 캐스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의 레이첼 맥아담스는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가 적합하지 하드보일드 스릴러에는 어울리지 않은 배우입니다. 독일인 배우 다니엘 브륄을 조연으로 끼워 넣었지만 비중은 미미합니다.

할리우드 배우들로 기용해 영어 대사로 영화를 제작할 바에는 영어권 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선택하든가, 공간적 배경을 함부르크로 고집하고 싶었다면 독일계 배우들을 기용해 독일어로 영화를 제작하는 편이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함부르크의 이국적 매력을 강조하면서도 할리우드 배우들을 캐스팅해 영어 대사를 사용하게 하니 극중 인물들이 모두 외국인으로 보여 이질감이 두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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