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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가족 - 평범한 일상 속 반짝이는 감동적 순간 영화

※ 본 포스팅은 ‘동경 가족’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향인 작은 섬에서 도쿄로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한 히라야마 슈키치(하시즈메 이사오 분)와 토미코(요시유키 카즈코 분) 부부는 장남 코이치(니시무라 마사히코 분), 장녀 시게코(나카지마 토모코 분), 그리고 막내아들 쇼지(츠마부키 사토시 분)와 만납니다. 하지만 생업에 쫓기는 코이치와 시게코는 노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는 어렵습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 ‘동경 이야기’의 리메이크

야마다 요지 감독의 2013년 작 ‘동경 가족’은 1953년에 공개된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의 리메이크 작으로 엔딩 크레딧에서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 바친다’는 문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의 세로쓰기 또한 당시 영화에 대한 충실한 오마주입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음악으로 한국에도 친숙한 히사이시 죠가 ‘동경 가족’의 음악을 맡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 전까지 개성 발휘를 최대한 자제하며 ‘동경 이야기’의 차분함을 좇기 위해 노력합니다.

동경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뒤로 하고 급속도로 산업화되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일본의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한 걸작입니다. 그로부터 60년 뒤에 제작된 ‘동경 가족’은 ‘동경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일본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동경 가족’에 등장하는 신칸센, 내비게이션, 휴대 전화, RC 헬기 등의 소품과 현재 도쿄의 명소 오다이바와 애니메이션 성지 아키하바라, 그리고 전망대 스카이트리는 ‘동경 이야기’의 개봉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수첩에 그린 지도를 내밀어 목적지인 코이치의 집을 알리려는 토미코에게 택시 기사가 내비게이션을 가리키는 초반의 장면은 시대상의 변화를 압축합니다. 참고로 코이치의 집 2층에 걸린 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의 붉은색 원정 유니폼은 코이치를 비롯한 히라야마 집안의 고향 오사키카미지마가 히로시마 현에 속해 있음을 암시합니다.

‘동경 가족’은 복고적인 아날로그의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동경 이야기’의 흑백 영상을 답습하지는 않은 컬러 영상이지만 뿌연 느낌의 영상은 컬러 영화 초창기를 연상시킵니다. 21세기인의 필수품 인터넷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의 얼굴을 정면에서 잡는 바스트 숏과 정적인 카메라 워킹은 ‘동경 이야기’의 충실한 오마주입니다.

일본의 현실을 개탄하다

노부부가 도착한 도쿄 시나가와 역에 중국어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고 부부가 묵은 고급 호텔 복도에서 오밤중에 중국인이 언성을 높여 단잠을 방해하는 장면은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한 일본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동경 가족’은 일본의 현실에 드리운 그림자를 피하지 않습니다. 슈키치는 막내 쇼지가 연극 무대 등을 설치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자 ‘편하게 먹고 살려 한다’며 못마땅해 하지만 근본적으로 비정규직이 횡행하는 일본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일본 최고의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극단계의 말단 스태프로 등장하는 설정은 아이러니컬합니다. 슈키치는 친구와의 모처럼의 술자리에서 젊은이들이 모두 고향을 등지고 도쿄로 몰려드는 이촌향도 현상을 ‘되돌릴 수 없을까’라며 개탄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나 이촌향도 현상은 한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쇼지와 결혼을 약속한 연인 노리코(아오이 유우 분)가 처음 만난 곳이 원전 사고가 발생해 자원봉사에 참여한 후쿠시마이며 슈키치가 조문을 위해 방문한 지인의 장모가 쓰나미에 휩쓸려 사망했다는 설정을 통해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인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겼음을 강조합니다. 쓰나미에 휩쓸려 사망한 장모의 남편, 즉 장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해 부부 모두 시체도 찾지 못했다고 언급은 ‘동경 이야기’에서 노부부의 차남 쇼지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설정을 연상시킵니다.

평범한 일상 속 감동적 순간

평범한 대화와 사건으로 가득하지만 ‘동경 가족’은 가족, 부모와 자식,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묵을 곳이 없어 남편 슈키치와 떨어져 하룻밤만 막내 쇼지의 비좁은 원룸에 머물게 된 토미코는 쇼지와 결혼을 약속한 노리코와 조우하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철없다고만 여긴 쇼지가 마음씨 착하고 반듯한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노리코가 돌아간 뒤 쇼지로부터 두 사람이 장래를 약속하게 된 과정을 토미코가 듣는 장면은 아름답습니다.

토미코는 코이치의 집에 돌아와 슈키치에게 ‘도쿄에 오길 잘했다’며 행복해하지만 갑작스레 의식을 잃고 이내 사망합니다. 평균 수명 80세의 일본의 현실을 감안하면 67세를 일기로 한 이른 죽음이지만 행복의 정점에서 긴 와병이나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는 극중에 언급되듯 불행한 죽음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에 앞서 요코하마로의 외출이 취소된 뒤 막내 손자의 재롱을 쨍한 햇살 아래서 즐기는 장면 또한 토미코에게는 도쿄에 방문한 의미가 있는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바닷가를 바라보던 노부부가 돌아서다 토미코가 넘어지는 장면은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는데 잠시 후 그들의 옆으로 조깅을 하는 젊은 커플이 지나갑니다. 노부부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으며 조깅을 하는 젊은이들도 언젠가 나이를 먹고 늙어 죽음에 직면하는 때가 온다는 의미의 의도적 연출입니다.

토미코의 장례식을 전후한 시기 내내 슈키치의 곁을 지키는 것은 코이치나 시게코가 아니라 쇼지와 노리코 커플입니다. 시게코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토미코가 입었던 기모노를 탐내지만 빈축을 사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반면 노리코는 슈키치로부터 토미코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선사받습니다. 슈키치는 토미코가 사망 직전 행복해했던 이유를 알게 되며 인간됨이 솔직담백한 노리코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노리코는 무뚝뚝한 슈키치의 진심을 받아들이며 흐느낍니다. ‘동경 가족’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인간의 삶이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뜻밖의 감동적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임을 강조합니다.

토미코는 급사하기 전 노리코에게 쇼지를 위한 비상금을 전하는데 노부부 모두 노리코에게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극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인간상으로 묘사되는 노리코 역으로 아오이 유우가 캐스팅되어 중요 등장인물 중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극적 효과를 도모한 것으로 보입니다. 노리코를 통해 슈키치와 쇼지가 묵은 갈등을 간접적으로 해소하며 부자지간에 화해하게 된 것이 ‘동경 가족’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카페 뤼미에르’와의 비교

‘동경 가족’은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 기념 영화인 2004년 작 ‘카페 뤼미에르’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 모두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에 대한 오마주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사 구조의 측면에서는 ‘카페 뤼미에르’보다 ‘동경 가족’이 ‘동경 이야기’에 충실합니다. ‘동경 가족’은 기본적인 줄거리는 물론 중요 등장인물까지 ‘동경 이야기’를 답습했기 때문입니다. 노부부가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 장례식을 마치고 슈키치가 노리코에게 토미코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선물하는 장면, 결말에서 슈키치가 홀로 남겨진 장면 등은 미장센까지 비슷합니다. 단지 노리코가 남편과 사별한 것이나 삼남 케이조와 막내딸 교코가 등장하는 ‘동경 이야기’의 세세한 설정은 ‘동경 가족’과 다릅니다. 반면 ‘카페 뤼미에르’는 가족 이야기도 일정 정도 묘사되지만 그보다는 남녀 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서사 구조도 ‘동경 이야기’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기본적 정서는 ‘동경 가족’보다는 ‘카페 뤼미에르’가 ‘동경 이야기’에 보다 가깝습니다. ‘동경 가족’은 60년 전 고도성장기보다 오히려 암울한 일본의 현실 탓인지 애써 희망을 밝은 톤으로 말하지만 ‘동경 이야기’의 과묵함 뒤에 숨겨진 일본인 특유의 속 깊은 배려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카페 뤼미에르’는 일본인이 아니며 일본어를 모르는 대만 출신의 감독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연출을 맡았지만 일본인 특유의 과묵함과 배려를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한 바 있습니다. 창의적 재해석의 측면에서도 ‘카페 뤼미에르’가 ‘동경 가족’보다는 한 수 위입니다.

동경 이야기 - 담담하게 그려지는 가족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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