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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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 죽음 속에서 섹스를 욕망하다 영화

※ 본 포스팅은 ‘경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중국 북경대학 교수 현(박해일 분)은 친구의 죽음을 문상하기 위해 귀국합니다. 친구와의 7년 전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경주를 방문한 현은 인상 깊은 춘화를 보았던 찻집을 찾아갑니다. 찻집 여주인 윤희(신민아 분)는 춘화의 행방을 묻는 현을 변태로 여깁니다.

홍상수 영화와 닮았다

장률 감독의 ‘경주’는 경주에 1박 2일 여행을 통해 지난 추억을 돌이키며 우연히 만난 여자에 들이대는 남자 주인공을 묘사하는 로드 무비입니다. 경주를 배경으로 지적인 직업을 가진 남성이 우연히 만난 여자와의 섹스를 위해 껄떡댄다는 점에서는 ‘생활의 발견’을 비롯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현과 윤희가 자전거를 함께 타는 로맨틱한 장면이나 윤희가 남편을 죽음으로 잃은 젊은 여성이라는 점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나 ‘호우시절’과 같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괴함과 유머감각을 갖춘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의 중간 지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 현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실제로는 기괴합니다. 현은 중국인 아내를 두고 내한했지만 대학 시절 후배 여진(윤진서 분)을 경주로 불러내 유혹합니다. 여진을 상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윤희에게 집적댑니다. 감시자를 자처하는 영민(김태훈 분)의 따가운 눈길에도 불구하고 현은 저녁 식사를 겸한 술자리와 시끄러운 노래방의 한국인의 전형적 유흥 과정을 거치며 윤희의 집까지 악착같이 쫓아가 어떻게든 동침하려 합니다. 관광 안내소의 젊은 여직원에게도 중국인 행세를 하며 접근합니다. 7년 전 본 춘화에 집착하듯 현은 섹스에 집착합니다.

현은 의뭉스러운 인물입니다. 윤희의 찻집에 찾아온 일본인 관광객들 앞에서는 일본어를 모르는 척하지만 오밤중의 휴대 전화 통화 장면을 일본어에 능숙하며 일본인과도 친분이 있음이 드러납니다. 일본의 전통 음식 낫토를 좋아하는 그는 초면인 인물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낫토를 꺼내 먹습니다.

하지만 낫토는 냉장 보관하지 않으면 쉽게 변질되는 음식입니다. 현이 더운 날씨 속에서 배낭 안에 종일 넣어둔 낫토를 저녁 때 꺼내 먹는 장면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윤희의 찻집에서 만난 일본인들이 뜬금없이 일본의 과거 만행을 사과하는 장면과 더불어 일본에 관련된 설정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두드러집니다.

우스꽝스러운 주변 인물들

술에 취해 자신의 전공 학문을 ‘똥’이라 규정하는 현도 우스꽝스러운 ‘먹물’이지만 현으로 하여금 ‘똥’이라 규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먹물 꼰대’ 박 교수의 청탁과 술주정의 결합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우스운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 교수 역으로는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이 맡았는데 능청스러우면서도 사실적으로 연기했습니다.

윤희를 짝사랑하는 형사 영민은 윤희와의 동침이라는 지상과제를 아직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민은 현을 극도로 경계해 윤희와 현이 함께 있는 윤희의 집까지 새벽 4시에 찾아오지만 현의 여권을 보여 달라더니 확인한 후 사과하며 떠나는 찌질함과 순진함을 동시에 갖춘 인물입니다. 윤희의 친구 다연(신소율 분)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영민은 모른 척합니다. 현 - 윤희 - 영민 - 다연까지 사각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 영민 등과 함께 등장하는 계모임의 박 선생으로는 감독 겸 배우 류승완이 출연합니다. 대사는 많지 않으나 노래방에서 술에 취해 종이로 꽃을 접어 윤희에게 바치는 바보스런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현도 술에 취해 윤희 앞에서 홀로 ‘부르스’를 추며 윤희를 향한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윤희는 찻집 주인답게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도 김창완의 ‘찻잔’입니다.

경주, 죽음의 공간

배우들의 분장과 의상, 그리고 조명 등은 사실성을 추구했으며 세트가 아닌 로케이션 촬영 위주로 이루어진 ‘경주’는 매우 현실적인 분위기의 영화입니다. ‘경주의 여신’이라 불리는 윤희는 역시 경주를 배경으로 한 ‘신라의 달밤’에서 김혜수가 맡은 여주인공 주란에서 오락 영화에 부합되는 과장된 요소들을 배제한 현실적 인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현실적이고 평범한 듯하나 내면은 일그러져 있으며 기괴합니다.

등장인물들의 기괴함을 부추기는 것은 영화 전반을 잠식하는 죽음입니다. 현이 경주를 찾게 되는 이유는 친구의 죽음 때문입니다. 아내와의 불화로 불행해진 친구는 불명확한 이유로 자연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잠 장면을 통해 현은 친구의 아내에 성적 욕망을 느끼고 있음이 암시됩니다. 죽음 속에서 섹스를 욕망합니다.

현과 영민의 유일한 공통 화제는 자살한 모녀입니다. 현이 반복해서 만나는 모녀가 자살한 사건을 영민이 맡게 된 것으로 암시됩니다. 경주로 찾아와 현을 만나는 여진은 과거 현의 아이를 낙태를 했으며 점집 노인으로부터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점괘를 받았음을 현에게 털어놓습니다. 낙태는 죽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점집 노인도 종반에는 이미 죽은 인물임이 밝혀집니다. 3명이 스쿠터에 2대에 나눠 탑승한 ‘경주의 폭주족’은 교통사고로 어이없이 사망합니다. 노인의 죽음이 밝혀지고 교통사고 장면이 제시되면서 ‘경주’는 사실적인 코미디로부터 판타지의 영역에 수렴합니다.

왕릉과 달의 의미는?

죽음과 직접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은 왕릉 장면입니다. 술에 취해 왕릉 꼭대기에 올라간 윤희는 왕릉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며 죽음에 대한 충동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남편이 우울증으로 자살했음을 현에게 고백합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홀로 남은 젊은 여성은 친구의 아내에 이어 윤희가 두 번째입니다. 홀로 남은 친구의 아내에게 성적 욕망을 느꼈던 현이지만 남편의 죽음을 고백한 윤희에게는 성적 욕망을 상실합니다. 윤희가 침실 문을 열어두며 여지를 남기지만 현은 윤희와 동침하지 않습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대부분 우연히 만난 여자와의 섹스에 어떻게든 성공하지만 ‘경주’의 현은 막판에 섹스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경주’는 제목이자 주된 공간적 배경인 경주를 묘사하지만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등 경주의 유명 문화재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대신 왕릉이 사실상 유일한 문화재로 제시됩니다. 왕릉이 거대한 무덤, 즉 죽음의 공간임을 감안하면 ‘경주’의 죽음에 대한 집착이 드러납니다. ‘경주에서는 어딜 가나 왕릉이 보인다’는 윤희의 대사처럼 죽음은 항상 삶의 곁에 있습니다.

달 또한 죽음의 이미지와 통합니다. 현이 찻집에서 주문하는 황차는 윤희가 망월사(望月寺)에서 입수한 것입니다. 윤희의 남편이 죽기 직전 남긴 중국의 문인화의 시구에서도 달은 언급됩니다. 달은 윤희와 같은 매력적인 여성이나 현이 갈구하는 섹스의 이미지와도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느림의 미학, 중층적 매력

현재를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에 해당하는 현의 도주는 더욱 기괴합니다. 여진의 의처증 남편이 경주로 자신을 찾아 나섰다는 여진의 전화 연락에 현은 아침 식사도 중단한 채 황급히 도망칩니다. 경주 곳곳을 전전하던 현은 추억의 공간인 돌다리를 찾아낸 뒤 뜬금없이 강변으로 뛰어갑니다. 카메라는 핸드 헬드를 통해 현의 뒤를 엄습합니다. 여진의 남편이 현을 찾아내 위해를 가하지 않았나 싶은 기괴한 마무리입니다.

결말에서는 7년 전의 회상 장면을 통해 145분의 긴 러닝 타임 동안 아껴둔 춘화를 등장시킵니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찻집의 주인은 윤희와 꼭 닮은 여성으로 신민아가 연기합니다. 현이 춘화에 매혹된 순간 찻집의 주인에게도 매혹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윤희가 3년 전에 찻집을 인수했기에 7년 전 장면에 등장하는 찻집 주인을 윤희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7년 뒤 춘화를 핑계로 현이 윤희를 욕망하는 이유가 드러난 셈입니다.

조선족 출신의 장률 감독이 자신을 투영하듯 주인공 현은 중국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현은 중국 담배를 선호하며 중국의 그림에도 조예가 있습니다. 북경대학 교수로서 전공은 동북아 정치이며 북경에서 중국인 여성과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윤희의 집에서 현이 새벽을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현의 아내가 부르는 중국의 유명한 민요 ‘모리화’가 삽입됩니다. 경주의 상징인 왕릉과 현대식 건물인 학교, 그리고 맨 앞에 보이는 전신주와 전선에 녹아든 회색빛 새벽 풍경은 기묘한 정취를 이룹니다.

‘경주’는 긴 러닝 타임과 느린 장면의 호흡으로 인해 대중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박해일과 신민아의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느림의 미학 속에서 곳곳에 숨겨둔 등장인물들의 비밀이 차근차근 밝혀진다는 점에서는 중층적 매력과 흡인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두만강 - 분단 현실의 비극 압축하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애쉬 2014/06/15 10:44 #

    [충격]

    이게 홍상수 영화가 아니였다니;;;;
  • 2014/06/16 09:51 # 삭제

    어제 이 영화보고 멘붕이요. 남친이랑 같이 봤는데. 보자고 한 내가 다 민망스러웠어요. 쓰잘때기없이 환경음만 키워서 귀가 아프고. 대학후배 불러낸게 유혹이였나요?ㅋㅋ 메인 배우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다 연극투 스러운 연기하며. 비가 와서 말리던 꽃차 치우는데.연극하듯이 천천히 치우고.ㅋㅋㅋ 신민아가 왜 주연인지도 이해가 안가고. ㅠㅠ남친하고 본게 아니면 당장이라고 일어나서 나가고 싶었네요.
  • 꿈따 2014/06/18 06:49 # 삭제

    아... 이 해석도 정말 괜찮네요. 이 영화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함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님이 쓰신 글을 보니 조금은 더 이해가 될듯 합니다. 좋은 분석에 감사드리고요.

    참고로 제가 본 분석글 중에 또 좋았던 글은 아래 링크였습니다.
    http://blog.naver.com/mitigutne/220030971987
  • 카르페이 2014/07/10 10:33 # 삭제

    잘 읽었습니다. 놓친 부분 많이 알게 돼서 기쁩니다. 영화 마니아신 거 같네요.
  • 이상해요 2014/07/19 00:18 # 삭제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하신거 아닌가요;;
    최현의 태도가 그렇게 보이지는않앗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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