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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계급 뛰어넘은 로맨스 애니메이션

※ 본 포스팅은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쥐 셀레스틴은 어린 시절부터 쥐를 잡아먹는 곰에 대해 교육받습니다. 하지만 지하의 쥐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상의 곰 세계로부터 이빨을 수집해야 합니다. 사탕가게를 운영하는 조르주의 집에 숨어들어 이빨을 훔치려다 쓰레기통에 갇힌 셀레스틴은 배고픈 곰 어네스트와 만납니다.

계급적이자 정치적인 애니메이션

벨기에 작가 가브리엘르 뱅상의 동화책을 바탕으로 프랑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곰과 쥐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묘사합니다. 기본적으로 슬랩스틱 코미디와 뮤지컬의 요소를 갖춘 가족용 작품이지만 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이해와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드러나듯 매우 계급적이자 정치적인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쥐, 위에는 곰’이라는 계급적인 극중 표어가 상징하듯 곰과 쥐는 서로의 생활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언론을 통해서도 곰과 쥐는 이질적임을 강조합니다. 쥐 노파 라 그리스는 곰이 쥐들을 대량으로 잡아먹는다며 어린 쥐들에게 공포심을 주입 교육합니다. 곰들은 쥐가 곰의 생활 영역을 침범하고 식량을 축낸다며 혐오합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 말썽을 일으키자 곰과 쥐의 언론은 두 주인공을 흉악 범죄자로 규정합니다. 어린이에게는 교육, 성인에게는 언론을 통해 다른 종에 대한 증오와 편견을 끊임없이 주입하며 통제합니다. 곰과 쥐의 세계 모두 인간 세상의 은유이지만 쥐를 혐오한다는 점에서 곰의 세계가 인간 세상에 보다 가깝습니다.

권력과 부에 함몰된 캐릭터들도 계급적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 극형을 선고하려는 쥐와 곰 판사는 뚱뚱해 탐욕스러운 외양입니다. 권력자로서 지배 계급에 젖어있는 캐릭터들입니다.

조르주 부부는 남편이 과자 가게, 아내가 이빨 가게를 운영합니다. 사람들이 과자를 사먹고 이가 썩으면 이빨을 파는 것입니다. 병 주고 약 주는 사업가로서의 약삭빠름이 두드러집니다. 조르주는 아들의 친구들에게는 과자, 사탕, 머시멜로를 잔뜩 팔면서도 아들이 사 먹으려하자 이가 썩는다며 혼을 냅니다. 조르주 부부는 배타적이며 돈에 혈안이 된 프티 부르주아의 전형적인 상징입니다.

곰과 쥐의 로맨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각자의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는 예술가 계급에 속합니다. 어네스트는 음악가이지만 알아주는 이가 없으며 경찰은 그의 악기를 압수합니다. 어네스트의 친척들은 상류 계급에 속하지만 에네스트만큼은 이단아입니다.

셀레스틴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화가가 아니라 치과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어릴 때부터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곰 이빨을 훔쳐 와야 합니다.

두 캐릭터가 결정적으로 가까워지는 과정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맞나 싶을 정도로 범죄 영화와 활극의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조르주의 가게를 털고 경찰차에서 탈출하며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 과정은 물론, 훔친 차량을 애니메이션의 장르적 특성을 활용해 숨기는 장면은 모두 유쾌하게 묘사됩니다. 셀레스틴은 절도에 의문을 표하기도 하지만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합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 지닌 정치적 성향을 어린이 관객이 파악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절도와 도주가 즐겁고 유쾌한 일이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관계는 처음에는 부녀 관계로 보이며 셀레스틴이 어설픈 곰 가면으로 위장하고 곰 경찰들 앞에 나서 주장하듯 삼촌과 조카의 관계처럼 보입니다. 성과 종을 초월한 우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책 없이 게으르며 생활 능력 없는 수곰 어네스트는 ‘남자’이며 깔끔하고 꼼꼼하며 세심한 암쥐 셀레스틴은 ‘여자’입니다. 붉은색 후드를 두른 셀레스틴의 모습은 소녀가 늑대와 만나는 동화 ‘빨간 망토’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아무리 봐도 남녀의 전형적 특성을 각각 분명히 보유한 두 캐릭터의 관계는 결말에서 ‘영원히 함께 살고 싶다’는 욕망을 공식적으로 표출하고 두 사람의 행복한 포옹과 동거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로맨스입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사랑은 계급적 금기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작게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견될 수 있으며 넓게는 인종이나 국적, 혹은 성이나 종을 초월한 사랑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주위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하층 계급의 예술가들의 사랑이 계급적이며 폭압적인 사회에서 역경을 뚫고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 제작한 작품답습니다.

작화 또한 선이 일률적으로 뚜렷하며 원색인 일본이나 미국의 상업용 애니메이션과 달리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선이 군데군데 생략되어 있으며 색상 또한 파스텔 톤 위주입니다. 동화책 속 그림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며 화사합니다. 곰의 이빨을 훔쳐 지탱되는 쥐들의 지하 사회에 대한 설정과 작화도 독특하며 매력적입니다.

결말에서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만남과 재회에 관해 새로운 윤색으로 마무리합니다. 허구란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다는 문학적 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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