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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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 - 죽음을 치유하는 여정 영화

※ 본 포스팅은 ‘인사이드 르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첫 번째 포스팅 ‘인사이드 르윈 - 고양이로 본 르윈의 삶’에 이어

꼭 닮은 서두와 결말, 무엇이 다른가?

2002년에 사망한 포크 가수 데이브 반 롱크에 착안해 코엔 형제가 영화화한 ‘인사이드 르윈’의 최대 매력은 수미상관에 가까운 서두와 결말입니다. 비슷한 사건이 서두와 결말에 반복 제시되며 두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르윈(오스카 아이작 분)이 전날 밤 말썽을 부렸다고 가스등 카페의 주인 파피(맥스 카셀라 분)에 의해 언급됩니다.

서두에서는 주인공 르윈(오스카 아이작 분)이 가스등 카페에서 공연을 마친 뒤 카페 뒷골목에서 의문의 사내에게 구타당합니다. 이후 오버랩을 통해 르윈이 다음날 아침 골파인 교수(에단 필립스 분)의 집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연결됩니다.

결말은 비슷한 장면이 이어지지만 순서가 다릅니다. 르윈은 교수의 집에서 아침에 깨어난 뒤 가스등 카페에서 공연을 마칩니다. 이어 카페 뒷골목에서 사내에게 구타당합니다.

서두와 결말은 장면 순서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르윈이 듀엣 시절의 곡 ‘Fare Thee Well’을 부르는지 여부입니다. 서두에서는 르윈이 ‘Hang Me, Oh Hang Me’만을 부르며 영화 중반까지 ‘Fare Thee Well’를 부르려 하지 않습니다. 듀엣 파트너 마이크의 자살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말에서는 르윈이 ‘Hang Me, Oh Hang Me’에 이어 ‘Fare Thee Well’을 부릅니다.

서두에서 파피는 진(캐리 멀리건 분)과 섹스하고 싶다고 르윈에게 언급하는데 결말에서는 파피가 진과 동침했다며 ‘가스등 카페 주인의 특권’이라고 르윈에게 자랑합니다. 서두에서 진과 동침한 적이 없던 파피가 결말 이전에 동침한 것입니다. 서두와 결말에서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었지만 동일한 사건은 아님이 드러납니다.

르윈이 결말에서 가스등 카페에서 공연을 하게 된 이유도 진 때문이 아닌지 추측하게 합니다. 진이 임신한 아이는 정확히 누가 아버지인지 알 수 없으며 책임 소재를 놓고 르윈과 진은 티격태격합니다. 진은 짐(저스틴 팀버레이크 분)과 사귀는 동안에도 르윈과 관계하는 등 사생활이 문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윈은 낙태 시술을 주선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낙태는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책임을 진다는 측면에서 르윈의 인간성이 결코 나쁘지는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이 파피에게 배겟잇 송사를 통해 르윈에게 공연 기회로 보답했을 수도 있습니다. 르윈에게 공연이 결정된 것을 알리며 진이 내보이는 희미한 미소는 의미심장합니다.

첫 번째 포스팅 ‘인사이드 르윈 - 고양이로 본 르윈의 삶’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의문의 사내는 구타의 이유를 서두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결말에서는 사내의 아내를 르윈이 모욕했기 때문이라며 구체적으로 밝힌다는 차이도 있습니다.

또 다른 차이도 있습니다. 서두에서 르윈이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 깨어나자 집 안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LP로 울려 퍼집니다. 르윈도 레퀴엠을 따라 기타를 만지작거립니다. 반면 결말에서는 르윈이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 깨어났을 때 아무런 음악도 연주되지 않습니다.

쳇바퀴 같은 반복

서두와 결말에서 비슷한 장면이 제시되는 이유는 르윈의 삶이 쳇바퀴 돌 듯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포크송 가수 르윈은 무명과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1961년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 며칠 동안 르윈은 잠자리는커녕 변변한 코트 한 벌조차 없습니다. 시카고에 내리자마자 눈에 신발과 양말이 젖어 고생합니다. 시카고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는 르윈이 잘 풀리지 않을 것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르윈의 가난에서 비롯되는 고달픔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영화 내내 한기로 가득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진을 비롯한 동종 업계의 종사자들이나 누나(지닌 세랄레스 분)와 같이 동일 계층의 인물들은 신세를 지려는 르윈에게 매정한 반면 사회적 지위가 확고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골파인 교수 부부는 르윈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점입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말에서 젊은 밥 딜런(벤자민 파이크 분)의 작별을 의미하는 ‘Farewell’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르윈은 의문의 사나이에게 구타당합니다. 사나이를 향한 르윈의 인사는 프랑스어 ‘Au revoir’입니다. ‘Au revoir’는 직역하면 ‘또 만나자’입니다. 헤어짐을 의미하는 ‘Goodbye’가 아닌 재회를 의미하는 ‘Au revoir’가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된 것은 르윈의 삶이 반복될 것이라는 강한 복선입니다. 제 발로 골파인 교수의 집으로 돌아온 수고양이 율리시스와 마찬가지로 르윈은 짧은 여정을 마쳤지만 한편으로 르윈의 고된 삶의 여정은 시시포스처럼 반복될 것입니다.

죽음을 치유하는 여정

포크송 가수 르윈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가난과 끝이 보이지 않는 무명 생활이지만 그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파트너 마이크의 자살입니다. 골파인 교수의 아내 릴리안(로빈 바렛 분)이 ‘Fare Thee Well’의 마이크의 파트를 불렀을 때 르윈이 버럭 화를 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르윈이 죽음에 사로잡혀 있음은 서두와 결말을 장식하는 곡이 교수형을 당하는 사내가 읊조리는 가사의 ‘Hang Me, Oh Hang Me’인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르윈은 모차르트의 레퀴엠, 즉 장송곡을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 듣습니다. 뉴욕의 조지 워싱턴 다리에서 자살한 파트너 마이크로 인해 르윈 또한 극도의 우울과 죽음에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는 암시입니다. 치매로 인해 르윈의 아버지 휴(스탠 카프 분) 또한 죽음에 근접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뉴욕과 시카고를 왕복하는 악전고투 여행 끝에 르윈은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납니다. 뉴욕에 돌아온 르윈이 극장 앞에서 월트 디즈니의 1963년 작 영화 ‘기적 같은 여정(The Incredible Journey)’의 포스터를 바라보는 장면은 단지 골파인 교수의 가출 고양이 율리시스가 제 발로 집에 돌아온 것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르윈이 여정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벗어났음을 상징하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르윈이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 깨어났을 때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울려 퍼지지만 결말에서 르윈이 같은 장소에서 깨어났을 때는 아무런 음악도 울려 퍼지지 않은 것도 르윈이 죽음의 과거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이를 몰래 낳은 여자가 살고 있는 애크론에 미련을 두면서도 결코 르윈이 찾아가지 않는 이유도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위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말에서 르윈이 ‘Fare Thee Well’를 부르는 것은 마이크의 죽음을 딛고 희망을 찾았음을 상징합니다. 고통스런 삶이 쳇바퀴처럼 반복되어도 한 줄기 빛은 있습니다.

르윈의 미래, 두 가지 노년상

‘인사이드 르윈’에는 두 명의 노인이 등장합니다. 어쩌면 르윈의 미래상이 될 수도 있는 노인들입니다.

하나는 재즈 뮤지션 롤랜드(존 굿맨 분)입니다. 르윈이 시카고로 향하며 승용차에 동승하는 롤랜드는 유명 뮤지션과는 거리가 있으며 떠돌이 신세이고 입이 험하다는 르윈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르윈은 자신도 세월이 흘러 롤랜드와 같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더욱 그를 혐오했는지도 모릅니다.

마약 중독자 롤랜드에 비해 르윈은 술과 담배는 즐기지만 마약에 손을 대지는 않습니다. 존 굿맨은 ‘플라이트’에서 각성제까지 팔아먹는 마약상으로 등장했는데 ‘인사이드 르윈’에서는 마약 중독자로 등장해 이채롭습니다. 그가 분한 롤랜드가 화장실에서 졸도하는 장면에서 팔에 마약을 주사하기 위해 고무줄을 두르고 있습니다.

르윈은 약점이 많은 남자입니다. 인기가 없으며 장기적인 계획이 부재합니다. ‘John Glenn Singers’의 저작권을 포기하고 당장의 돈에 집착하는 것처럼 영리함이 부족합니다. 입이 험하고 성마릅니다. 하지만 진의 낙태를 책임지는 등 나름의 책임감은 지니고 있습니다. 남을 속이거나 본질이 나쁜 사내는 아니라는 점에서 르윈은 롤랜드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르윈의 또 다른 미래상은 아버지 휴입니다. 평생 선원으로 힘겹게 일한 휴는 여전히 가난하며 치매에 걸려 양로원에서 홀로 생활합니다.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해 르윈도 안타까워합니다. 르윈은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가수를 선택했지만 가수로서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다시 선원이 될까 하는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르윈의 삶이 롤랜드나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인기를 얻고 윤택한 생활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임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훗날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은 르윈이 아니라 결말에 등장하는 젊은 밥 딜런입니다.

하지만 르윈은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르윈은 자존심을 지키려는 가난한 예술가의 초상이자 작은 희망에 의지해 살아가는 소시민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코엔 형제의 장난기?

극중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중 유독 J로 시작하는 짧은 이름으로 불리는 이가 많은 것이 눈에 띕니다. 진(Jin)과 짐(Jim)은 동료 가수이며 조이(Joy)는 르윈의 누나입니다. 르윈, 롤랜드와 함께 뉴욕에서 시카고로 여행하는 과묵한 사내의 이름은 조니(Johnny)입니다. 엇비슷한 이름의 등장인물이 다수 등장하는 것도 코엔 형제의 장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사이드 르윈’은 음악을 소재로 한 단순한 흑백 영화와 같은 첫인상입니다. 그러나 코엔 형제가 곳곳에 숨겨둔 디테일을 따져 보면 사소한 요소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매우 치밀한 영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밀러스 크로싱 - 코엔 형제의 갱스터 느와르 재해석
바톤 핑크 - 마감에 내몰린 글쟁이의 고통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잔혹한 세상을 향한 코엔 형제의 개탄
더 브레이브 - 코엔 형제, 원숙의 경지
인사이드 르윈 - 고양이로 본 르윈의 삶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다쯔카게 2014/02/08 19:16 #

    아침일찍 가서 조조로 보고는 심야로 볼껄 하고 후회하다 결국 심야로 한번 더 봤습니다.
    그저 보고 난 뒤에 난 어떡하나 라는 심정 하나였지만 ㅠㅠ
  • 신애아범 2014/05/29 11:13 # 삭제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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