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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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을 쓴 소녀 - 봉건에 반기 든 근대 이성 영화

※ 본 포스팅은 ‘베일을 쓴 소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 언니와 달리 어머니의 혼외정사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녀 수잔(폴린 에티엔 분)은 부모에 의해 수녀가 되기를 강요받습니다. 수녀원의 인자한 원장수녀 모니(프랑수아 르브런 분)는 수잔을 다독이지만 수잔은 수녀 서원을 거부합니다.

18세기 말에 출간된 드니 디드로의 소설을 기욤 니클루 감독이 영화화한 ‘베일을 쓴 소녀’는 소설 및 영화의 원제 ‘수녀(La Religieuse)’가 말해주듯 수녀가 되기를 강요받는 소녀가 온몸으로 저항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본인의 의지와 달리 성직자가 되기를 강요받는 당시의 사회 풍토를 묘사하며 액자식 구성을 바탕으로 수잔의 약 2년여의 투쟁을 포착합니다. 극중에서 ‘혁명’이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지만 ‘베일을 쓴 소녀’는 혁명에 관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잔을 둘러싼 환경은 종교를 강요하기에 급급합니다. 조직의 압박과 관습의 불합리는 수잔을 옥죄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부 고발자에게 주어지는 대가는 침 뱉기, 옷 벗기기, 감금에 이르기까지 가혹행위입니다.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 성직자들이 따돌림과 괴롭힘을 자행하기에 더욱 충격적입니다.

수잔은 신과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기도하지만 성직의 길만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사투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10대 중후반의 소녀는 수녀원 바깥세상을 그리워합니다.

중세적이며 맹목적 신앙과 근대적이며 합리적 이성의 대결이 영화의 가장 큰 줄기이기에 ‘베일을 쓴 소녀’는 매우 상징적인 영화입니다. 봉건적 공간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고군분투하는 수잔이 드러내는 주제의식은 자유의지의 소중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두를 비롯해 수잔이 홀로 잠든 장면이 자주 제시되는 것은 최근 국내에 개봉 중인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마찬가지로 소녀의 고독을 상징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잠들어 있을 때야말로 누구도 수잔의 사상을 침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유로움과 안식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선명하게 구분된다는 점입니다. 남성들은 대부분 긍정적이며 이성적으로 묘사되지만 반대로 수잔 주변의 여성들은 부정적이며 비이성적으로 묘사됩니다.

수잔의 호적상의 아버지는 부정적으로 그려지지만 생부는 결코 수잔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극중에 등장하는 세 명의 신부 중 두 번째로 등장하는 신부는 수잔에 대한 가혹행위를 중단시킵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신부는 수잔의 고해를 듣고 조언을 하는 것은 물론 자신도 강요로 성직자가 되었다며 수잔의 용기를 높이 사고 그녀의 수녀원 탈출을 직접적으로 돕습니다. 바깥세상과 수녀원 사이를 연결시켜 수잔의 생부를 찾아주는 변호사(프랑수아 네그레 분)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입니다. 혁명가를 연상시키는 차림의 변호사는 수잔에 여자로서 호감을 지닌 것으로 암시되기도 합니다.

반면 수잔의 어머니는 지참금이 없다는 이유로 수잔에게 수녀가 될 것을 강요합니다. 첫 번째 원장수녀 모니는 다정다감한 어머니와 같지만 수잔을 수녀로 묶어두기 위해 자살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가톨릭은 자살을 엄격하고 금지하고 있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모니의 행동은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모니에 뒤이은 원장수녀 크리스틴(루이즈 보르고앙 분)은 젊지만 가장 중세적이며 봉건적인 인물입니다. 수잔에 가혹행위를 일삼습니다.

원장수녀 유트로프(이자벨 위페르 분)는 수잔에 따뜻하게 대하며 배려하지만 알고 보니 젊은 수녀들을 상대로 동성애를 강요하는 인물임이 밝혀집니다. ‘베일을 쓴 소녀’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부정적으로 묘사됩니다.

수잔에 대한 집착에 시달리는 유트로프는 수잔이 죽었다고 헛소리를 합니다. 역시 유트로프의 동성애적 집착에 시달리던 테레사는 죽은 것은 수잔이 아니라 유트로프가 새장 속에 가두고 키운 새라고 언급합니다. 새장 속에서 죽음을 맞아서야 새장 밖으로 나온 새처럼 수잔도 수녀원에 갇힌 신세에서 수녀로서의 삶에 죽음처럼 종지부를 찍고 속세에서 진정한 인간으로 새 출발한다는 암시입니다.

‘베일을 쓴 소녀’는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점프컷을 활용하며 분절적 전개를 선택합니다. 첫 번째 원장 수녀의 자살과 함께 수잔의 두 번째 수녀 서원에서의 기절을 생략합니다. 이것저것 설명하는 친절한 영화는 아니기에 서사의 일부 공백은 관객이 스스로 메워야 합니다. 황급히 마무리되는 듯한 결말보다는 수잔의 후일담을 조금 삽입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이유는 원작 소설 ‘수녀’가 발간 당시 금서가 된 원인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수녀의 동성애를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수잔이 완전히 알몸이 되는 장면도 제시됩니다. 하지만 고어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서두에서 부스스하고 어벙한 외모로 첫 등장하는 폴린 에티엔은 수도원을 탈출하고 맞이한 첫날 아침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로 등장합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왔으며 인간적인 삶을 살아야 하기에 아름다움을 되찾은 것입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보행자 2014/01/30 13:34 # 삭제

    영화는 안 봤지만 원작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기에 글을 남깁니다. 원작과는 달라진 면이 많네요.
    먼저 원작에서는 남성-긍정적, 여성-부정적의 이분법이 훨씬 덜합니다. 모니 원장은 수잔의 서원 과정과는 거의 상관없이 이미 억지로 서원당한 수잔을 감싸주고 수잔의 초기 수녀시절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는 인물이며 자살하지도 않습니다. 수잔도 모니 원장의 초상화를 성물처럼 간직합니다.
    자연사한 모니 원장의 후임으로 크리스틴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되지요. 그리고 크리스틴 원장 밑에서의 지옥 같은 나날에도 미력하나마 수잔의 친구가 되어주는 동료 수녀가 있습니다.
    변호사의 도움은 원작에서도 나오고 환속하려는 수잔의 소송에서 하는 그의 변론도 중요한 대목이지만, 생부를 찾아주거나 하는 대단한 활약까지는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수잔의 법적, 생물학적 가족들은 모두 수잔에게 무관심했으며 집안의 혹을 치워버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탈출을 도와주는 신부는 처음엔 그렇게 멋있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일단 담장 밖으로 나오자 수잔에 대한 흑심을 드러내 수잔은 간신히 욕을 면하고 혼자 달아나는 신세가 됩니다.(수잔의 편지를 통한 독백 형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소 모호합니다) 간신히 민가에 숨어들어 보통의 삶을 살기 시작하지만 법에 의한 수배망과 그보다 더 두려운 이웃들의 편견('수녀가 도망쳤대. 뭐 그런 화냥년이 다 있대?')이 자신을 조여오는 것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으로 끝나기에 결말의 분위기도 훨씬 우울합니다.

    장편 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상징성을 높이고 이야기 구도를 단순화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 원작의 인물 군상은 좀더 복잡하고 다면적이며 그렇게 선/악, 이성/비이성만으로 단순하게 분류되지 않습니다. 그런 면도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라고 느꼈던 사람으로서 좀 실망스럽군요.

    제가 원작을 읽은지도 오래되어 잘못 기억한 게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 원작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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