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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색, 블루 - 일상적 미니멀리즘 서사시 영화

※ 본 포스팅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거리에서 지나친 엠마(레아 세이두 분)에 강렬하게 끌린 여고생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 분)은 남자친구와의 연애가 공허하게 느껴져 이별합니다. 레즈비언 술집에서 방황하던 아델은 엠마와 재회해 열정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줄리 마로의 그래픽 노블을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이 영화화해 2013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레즈비언 커플의 청춘을 바친 사랑을 묘사합니다. 영화의 원제가 ‘아델의 인생(La Vie d'Adèle)’인 만큼 아델과 엠마의 젊음을 관통한 사랑은 179분에 걸쳐 서사시처럼 그려집니다. 아델은 고등학교 2학년부터 유치원 교사를 거쳐 초등학교 교사로 성장하며 엠마는 미대생으로부터 상당수 팬을 거느린 유명 화가로 발돋움합니다.

서두에서 고교생은 아델은 문학 시간에 피에르 드 마리보의 ‘마리안의 일생’을 배우며 작품에 푹 빠집니다. 그녀가 후반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면은 서두의 문학 시간의 촬영 및 편집 구성과 거의 흡사합니다. 아델의 어린 제자 중에는 시간이 흘러 아델과 같이 운명적인 사랑에 청춘을 바치는 이도 나타날 것입니다. 수미상관과 같은 두 개의 장면을 통해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삶의 대물림, 혹은 윤회까지 떠올릴 수 있는 서사시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미니멀리즘과 일상성에 충실합니다. 일반적인 영화는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공간적 배경을 제시하기 위해 거리나 건물 장면 등을 삽입하지만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공간적 배경 제시를 생략한 채 곧바로 인물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시작되는 장면이 많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실 때 그들이 속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음악 외에 관객의 시점으로만 삽입되는 배경 음악은 거의 없습니다.

대사 또한 일상적입니다. 철학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화제도 거론되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그들이 즐기는 파스타, 굴, 와인과 같은 음식 및 술, 섹스를 화제로 올리며 인사와 같이 일상적입니다. 내레이션도 활용되지 않아 주인공 아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합니다. 아델의 외도가 들통 나 크게 다투고 이별하는 장면이나 아델이 엠마와의 재결합을 시도하려다 실패하는 식당 장면 등에서는 프랑스 영화답지 않게 울부짖고 소리 지르는 솔직한 감정 표현이 묘사됩니다.

시간적 흐름 또한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날짜를 알려주는 자막의 삽입도 없습니다. 등장인물의 대사나 외모의 변화를 통해 세월의 흐름이 암시됩니다. 이를테면 대학 시절 파란 머리였던 엠마가 첫 번째 전시회를 개최하며 금발 머리로 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최근의 일반적인 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친절합니다. 친절한 문법의 영화에 길들여져 있다면 개별 장면의 호흡까지 다소 긴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179분은 지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잘한 일상의 합이 기나긴 세월이 된다는 점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아델이 홀로 잠든 장면이 자주 제시되는 것은 그녀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생이란 일장춘몽이며 매일같이 청하는 잠이 모여 긴 세월이 된다고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결코 난해한 영화는 아니지만 일상성 및 미니멀리즘과 서사시의 독특한 조합이 매끄럽다는 점에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두 주인공 아델과 엠마 모두 여성적 매력을 강조하기보다 보이시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극중에서 아델이 스스로 고민이라고 언급하는 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의 볼살과 토끼처럼 두드러진 앞니, 그리고 약간 통통한 체형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여주인공 마리아 슈나이더를 연상시킵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모두 격정적인 섹스 장면이 돋보이는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레아 세이두는 시종일관 짧은 머리로 등장해 장난기 가득한 소년과 같은 동그란 얼굴과 냉소적인 눈매 및 입가를 도드라지게 합니다. 엠마는 아델보다 더욱 대상화되어 섹스 장면 외에는 전신을 카메라로 잡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예술가의 이미지를 강조합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파란색은 영화 전반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서두의 첫 번째 장면에서 아델이 자신의 집에서 나올 때 대문에 붙은 간유리창과 우편함이 파란색입니다. 엠마는 상당 기간 동안 파란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유지하며 아델과 술집에서 운명적으로 만날 때도 블루진 재킷과 바지 차림입니다. 아델은 파란색 스카프를 착용하고 엠마와 만나며 뒷모습을 보이며 홀로 걸어가는 쓸쓸한 결말에서도 파란색 원피스 차림으로 등장합니다.

극중에서 ‘엠마의 과거의 색은 파란색이지만 현재의 색은 붉은색이다’는 대사가 제시됩니다. 붉은색은 아델이 부모와 즐겨 먹었으며 파티에서도 거대한 접시로 내오는 볼로네즈 스파게티의 색상입니다. 엠마는 아델과 만난 이후 그림에서 선혈과 같은 붉은색을 활용합니다. 엠마의 파란색이 아델에 영향을 주고 아델의 붉은색이 엠마에 영향을 미쳐 사랑하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닮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섹스 장면입니다. 아델은 남자친구 토마(제레미 라오 분)와의 섹스에 허전함을 느끼지만 엠마와의 섹스에서는 압도적인 충족감을 느낍니다. 섹스야말로 아델이 엠마와 열애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두 여주인공의 섹스 장면은 매우 길지만 결코 속되지 않으며 아름답습니다.

소수자에 대해 가장 관대하다 할 수 있는 프랑스조차 레즈비언에 대한 비하가 존재한다는 점도 드러납니다.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이 알제리 출신이어서인지 아랍인 남성은 테러리스트 역할을 할리우드 영화에서 맡기 마련이라고 언급하는 사미르(살림 케치우체 분)의 대사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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