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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 전작 요소의 지루한 재탕 영화

※ 본 포스팅은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용 스마우그로부터 아르켄스톤을 탈환해 드워프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 소린(리차드 아미티지 분)과 빌보(마틴 프리먼 분) 일행은 에레보르 산으로 향합니다. 강령술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간달프(이안 맥켈렌 분)가 돌 굴두르로 떠난 가운데 소린은 레골라스(올랜도 블룸 분)와 타우리엘(에반젤리 릴리 분)이 이끄는 엘프들에게 생포되어 머크우드의 왕 스란두일(리 페이스 분)과 조우합니다.

최종장 예약하는 허무한 결말

‘호빗’ 삼부작의 첫 번째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 이후 1년 만에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가 개봉되었습니다. 소린과 빌보는 머크우드와 인간의 호수 마을을 거쳐 드디어 에레보르 산에 도착해 스마우그와 일전을 벌입니다. 하지만 스마우그와의 결착은 시리즈 삼부작 최종장이자 후속편 ‘호빗 다섯 군개 전투’으로 넘깁니다.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의 허무함은 ‘호빗 뜻밖의 여정’의 동일한 순간에 직면했던 허무함에 비해 훨씬 큽니다. 한참 진행된 스마우그와의 대결을 제대로 끝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제시되는 것은 간달프 역의 이안 맥켈렌이지만 그의 비중은 ‘호빗 뜻밖의 여정’에 비해 감소했습니다. 간달프가 소린의 원정대에 동행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린과 빌보의 모험의 난이도가 낮아지고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입니다.

대신 간달프는 홀로 나서 강령술사의 정체가 사우론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사우론은 ‘반지의 제왕’ 삼부작처럼 거대하며 위압적인 눈동자의 형태로 다시 등장하지만 눈동자의 한복판에 강령술사의 인간의 체형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전작 요소들의 재탕

‘반지의 제왕’ 삼부작 이래 어느덧 중간계를 소재로 한 5번째 영화에 해당하는 만큼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는 4편의 전작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소린의 원정대가 인간의 호수 마을에서 발이 묶이는 전개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서 프로도, 샘, 그리고 골룸이 파라미르에 의해 발이 묶인 전개를 떠올리게 합니다. 에레보르 산 입구에서 빌보가 수수께끼를 해결해 문을 여는 장면은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에서 모리아 광산의 문을 여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빌보가 스마우그와 긴 대화를 나눠 아르켄스톤을 손에 넣은 뒤 도망치려 하는 과정은 ‘호빗 뜻밖의 여정’에서 빌보가 절대반지를 둘러싸고 골룸과 수수께끼 대결을 펼치다 도망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간달프가 원정대에서 이탈해 단독 행동에 나서 원정대의 고난의 난이도를 상승시키는 전개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을, 강령술사/사우론과의 갑작스런 대결에서 패배해 감금되는 전개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에서 사루만과의 대결에서 패배해 아이센가드의 꼭대기에 감금되었던 전개를 떠올리게 합니다.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 또한 4편의 전작들과 닮았습니다. 여성 캐릭터의 공백으로 로맨스가 부재했던 ‘호빗 뜻밖의 여정’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J. R. R 톨킨의 원작 소설에 존재하지 않았던 영화만의 오리지널 여성 캐릭터 타우리엘이 등장합니다. 타우리엘은 엘프답게 활쏘기는 물론 격투에도 능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부상을 입어 위중했던 킬리(아이단 터너 분)를 ‘왕의 풀’이라 불리는 약초로 살리는 장면은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에서 아르웬이 프로도를 왕의 풀로 살리는 장면의 재탕입니다. 종족의 경계와 주위의 반대를 뛰어넘는 타우리엘과 킬리의 사랑은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아르웬과 아라곤의 사랑을 재연하는 듯합니다. 타우리엘과 킬리의 사이에 레골라스가 끼어들어 삼각관계가 되는 것은 아르웬과 아라곤의 사이에 에오윈이 끼어들어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을 연상시킵니다.

타우리엘의 적극적인 성격 또한 아르웬을 빼닮았습니다. 단지 아르웬이 입었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쩌면 ‘호빗 다섯 군개 전투’의 결말에서 타우리엘이 아르웬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을 선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타우리엘은 오리지널 캐릭터이며 그녀를 둘러싼 캐릭터들 간의 관계 또한 원작 소설에는 부재하지만 기시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호수 마을의 무능한 영주(스티븐 프라이 분)와 오리지널 캐릭터인 심복 알프리드(라이언 게이지 분)는 각각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무능한 군주 데네소르와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의 아첨꾼 웜통을 연상시킵니다. 호수 마을의 저항자로 신산스러운 삶을 살아온 바르드(루크 에반스 분)의 거친 이미지는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아라곤을 떠올리게 합니다.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부터 등장했던 거대한 거미 실롭과 유사하지만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은 거미들이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는 떼로 등장합니다. 거미들 중 한 마리는 빌보와 프로도가 대를 이어 모험에 동반했던 검 ‘스팅(Sting)’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빌보가 거미를 스팅으로 찔러 쓰러뜨리는 장면은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샘이 프로도를 구하기 위해 스팅으로 실롭을 격퇴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빌보가 절대 반지에, 소린이 아르켄스톤에 집착해 언뜻 이성을 잃는 것도 ‘반지의 제왕’ 삼부작에서 늙은 빌보와 프로도가 반지에 집착했던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빌보는 반지를 프로도보다 훨씬 자주 사용하면서도 아직 사우론의 존재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드디어 등장한 레골라스

전작의 캐릭터 중에는 레골라스의 비중이 가장 큽니다. 진정한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나무통 액션 장면을 비롯해 레골라스는 타우리엘과 함께 종횡무진합니다. 그에게는 불가능한 액션이라고는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삼부작으로부터 60년 전의 시대적 배경을 다루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오히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이 아쉽습니다. 레골라스가 맹활약하는 장면의 CG도 다소 부자연스럽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명콤비 김리와의 실질적인 인연이 시작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소린 일행을 생포하는 과정에서 레골라스는 글로인(피터 햄블턴 분)의 소지품을 검색하는데, 글로인의 목걸이에서 그의 아내와 함께 어린 아들 김리의 초상화를 보게 됩니다.

갈라드리엘(케이트 블란쳇 분)이 회상 장면에 잠시 등장하지만 골룸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골룸 역의 앤디 서키스는 제2촬영팀을 지휘하는 스태프로 참여했습니다. 나즈굴은 대사 속에는 언급되지만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호빗 뜻밖의 여정’에서 회상 장면에 잠시 등장했던 스란두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반면 갈색의 마법사 라다가스트(실베스터 맥코이 분)는 재등장하지만 비중이 미미합니다.

BBC 드라마 ‘셜록’에서 셜록 홈즈와 존 왓슨 콤비로 출연했던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마틴 프리먼이 드디어 극중에서 만났습니다. 스마우그와 빌보로 각각 분한 둘은 아르켄스톤을 놓고 신경전을 벌입니다. 하지만 둘의 대결 장면의 호흡이 매우 길고 스마우그의 대사가 너무 많습니다. 빌보의 재치를 드러내기 위함이지만 설명적이며 유치한 감마저 있습니다. 당초 용의 등장으로 인해 전반적인 작품 분위기가 유치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인지 용에게 대사를 잔뜩 짊어지게 해 인간과 같은 캐릭터 성을 부여하려 하지만 결과는 외려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스마우그와 빌보의 대결 도중 난입한 소린이 스마우그(Smaug)를 운율을 맞춰 광재(鑛滓 ; slag)라 부르는 유머러스한 대사는 한글 자막 ‘지렁이’로 번역되었습니다. 금을 녹인 물을 뒤집어쓰는 스마우그는 일본 특촬물 ‘고지라’ 시리즈의 고지라의 라이벌인 황금색 용 킹기도라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애당초 킹기도라가 서양 용의 영향을 받은 산물이니 오리지널은 스마우그에 가깝지만 실사화는 킹기도라가 선배입니다.

자신의 벽에 부딪친 피터 잭슨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브리를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첫 번째 등장인물로 피터 잭슨 감독이 카메오 출연해 당근과 같은 과일을 우적 베어 물지만 중간계를 배경으로 한 자신의 전작 4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전작의 요소들을 재탕하고 그 스케일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전술한 나무통 액션 장면을 제외하면 딱히 눈에 띄는 액션 장면도 없습니다. 악의 군대가 출진하지만 그 스케일은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커녕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 비해서도 규모가 초라합니다.

유머 감각도 부족합니다. 빈틈없이 완벽할 것만 같은 엘프가 술에 취해 경비를 게을리 한다든가 하는 장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은 적은 편입니다. 쥐락펴락하는 피터 잭슨 특유의 연출력이 사라져 ‘반지의 제왕’ 삼부작은 물론 ‘호빗 뜻밖의 여정’만도 못합니다. 12명의 드워프 중 개성이 제대로 부여된 것이 여전히 소린과 킬리뿐인 것도 아쉽습니다. 나머지 드워프는 역할이 미미해 모두 엇비슷합니다.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에서 9명의 원정대원 각각의 개성을 살렸던 것에 비하면 아쉽습니다.

러닝 타임은 무려 161분이지만 지루합니다. 약 40분을 줄여 120분 정도로 내놓고 블루레이와 dvd로 출시되는 확장판에서 러닝 타임을 마음껏 늘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영화화했던 ‘반지의 제왕’ 삼부작에 비해 분량이 크게 적은 소설 ‘호빗’을 동일한 삼부작으로 영화화한 것이 태생적으로 무리였으나 피터 잭슨이라면 원작의 분량 차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삼부작이 너무나 위대했기에 그와 비교되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는 더욱 실망스러운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피터 잭슨은 자신의 벽에 부딪쳤고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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