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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서독 리덕스 - 오리지널과 무엇이 달라졌나? 영화

※ 본 포스팅은 ‘동사서독 리덕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리덕스’(이하 ‘리덕스’)는 1994년 작 ‘동사서독’을 재편집해 2008년 공개한 작품입니다. ‘동사서독’의 러닝 타임은 100분이었으나 ‘리덕스’는 러닝 타임이 94분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동사서독’과 ‘리덕스’의 주된 차이는 구양봉(장국영 분)과 모용연/모용언(임청하 분)의 비중이 증가한 대신 맹인 검객(양조위 분)이 마적대와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축소되었습니다. 아마도 2003년 사망한 장국영과 ‘동사서독’이 실질적인 은퇴작이 된 임청하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동사서독’은 자막을 삽입하지 않은 반면 ‘리덕스’는 ‘화양연화’나 ‘일대종사’와 같이 본편에 자막을 삽입했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동사서독’에서는 홍칠(장학우 분)이 등장할 때 구양봉이 ‘7은 나에게 불길한 숫자’라는 독백을 통해 홍칠을 멀리하려는 이유만이 제시됩니다. 하지만 ‘리덕스’에서는 훗날 구양봉과 홍칠이 결투를 벌이다 둘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됨을 자막으로 삽입해 구양봉과 홍칠의 악연의 끝을 제시합니다.

자막은 절기도 제시합니다. ‘경칩’으로 시작해 ‘하지’, ‘백로’, ‘입춘’을 거쳐 다시 ‘경칩’으로 돌아옵니다. ‘동사서독’에서 살인청부업자 구양봉이 ‘40살로 보이는데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소?’라며 소위 ‘영업용 멘트’로 유혹하는 장면이 초반과 종반에 반복 제시되며 순환론적 세계관을 드러낸 것을 ‘리덕스’에서는 절기를 삽입한 자막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한 셈입니다. 순환론적 세계관은 사랑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고통과도 통합니다.

동사서독’은 서두에서 동사/황약사(양가휘 분)과 서독/구양봉의 각각의 결투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이 강호의 최고수임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리덕스’는 타이틀 롤인 두 사람의 각각의 결투 장면을 삭제했습니다. 따라서 마적대가 황약사에 의해 일격에 괴멸된 사실도 구양봉의 입을 통해 대사로만 제시될 뿐입니다. 황약사의 힘과 구양봉의 속도를 왕가위 감독 특유의 멋들어진 연출을 통해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입니다.

CG의 활용도 눈에 띕니다. 맹인 검객이 최후를 맞으며 피가 솟는 장면과 맹인 검객의 아내(유가령 분)가 남편의 죽음을 예감하는 장면에서 새가 날아가는 장면이 CG를 통해 보완되었습니다. 영화의 주제의식을 노골적으로 제시하는 구양봉의 형수(장만옥 분)의 독백 장면에서 장만옥의 얼굴도 ‘동사서독’보다 더욱 하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CG가 부자연스러워 영화에 대한 몰입을 저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반적인 색채도 달라졌습니다. ‘동사서독’은 파란색과 하늘색이 두드러졌지만 ‘리덕스’는 누런색과 초록색이 주조를 이룹니다. ‘동사서독’이 창공의 이미지를 중시했다면 ‘리덕스’는 사막의 이미지를 중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리덕스’는 ‘동사서독’에 비해 서부극에 대한 오마주가 더욱 강해졌습니다.

음악도 다릅니다. ‘리덕스’에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가 참여해 현대성을 부각시키지만 오히려 ‘동사서독’’의 서정성이 사라진 대신 박자를 강조합니다. ‘동사서독’에서 강조했던 코러스도 ‘리덕스’에서는 축소되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동사서독’의 오프닝을 장식했던 힘차고 웅장했던 곡 ‘序幕 : 天地孤影任我行’은 ‘리덕스’에서는 오프닝이 아닌 아내와 함께 떠나는 홍칠의 뒷모습에 삽입되었습니다.

왕가위 감독이 한 편의 작품을 국가별로 미묘하게 다르게 편집해 공개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미 개봉된 작품을 재편집해 상당한 시일이 흐른 뒤 새로운 이름으로 공개하는 것은 ‘리덕스’가 처음입니다. 굳이 지나간 영화를 재편집해 ‘리덕스’라는 꼬리표를 붙여 다시 개봉하는 이유는 ‘동사서독’에 대한 애착과 더불어 그 완성도에 대해 왕가위 감독이 스스로 아쉬웠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리덕스’는 절기를 구분한 자막처럼 상대적으로 분명해졌으며 매끈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주제의식 또한 분명해졌습니다.

하지만 베일은 쓴 여성처럼 애매모호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었던 ‘동사서독’의 매력이 ‘리덕스’에서는 사라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동사서독’은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제대로 된 2차 판권 상품이 전 세계적으로 드물었는데 ‘리덕스’의 등장으로 인해 ‘동사서독’은 역사의 뒤안길로 잊힐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굳이 ‘리덕스’를 공개해 ‘동사서독’에 손을 댈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뒤늦게 국내에 개봉된 ‘리덕스’의 한글 자막은 곳곳에 오류가 보입니다. 오프닝 크레딧의 출연 배우 이름 중 다른 배우들은 모두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표기했지만 유가령만이 ‘류자링’으로 표기된 것은 생뚱맞습니다. 모두 현지의 발음으로 표기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유가령 또한 다른 배우들처럼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표기했어야 합니다.

본편 한글 자막 중 황약사의 독백에서 ‘나는 많은 사람을 헤쳤다’는 ‘해쳤다’가 되어야 합니다. ‘자발로’는 ‘제발로’ 혹은 ‘자발적으로’가 되어야 하며 한자 자막을 해석한 ‘길일하다’는 ‘길일이다’ 혹은 ‘길하다’가 되어야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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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Porcupine 2013/12/09 12:16 #

    몆일 전에 디제님 블로그 발견해서 글 잘읽고 있습니다. 저도 왕가위(와 양조위)를 참 좋아하는데 블로그에 읽을거리가 많아서 재미가 쏠쏠하네요.감사해요~
  • 2013/12/09 12:5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태천 2013/12/09 14:04 #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추억의 고전 명작 상영하는 곳에서 볼까 생각 중인데
    관람하게 되면 좋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 noi1 2014/01/11 21:53 # 삭제

    저도 리덕스를 이제 봤는데요 여전히 좋긴하지만 뭔가 모호했던 예전이 더 나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음악도 뭔가 세련되긴했는데 예전같지않았다는 느낌이 쓰신글보고 알게되었어요 혹시 동사서독 이전버전을 구할수있는방법이 있을까요 ? 예전에 다운받긴했었는데 화질이 몹시 안좋더라구요 그리고 하늘이 아니라 사막을 더 조명했다는것도 리덕스보면서 뭐지 했는데 약간 씁쓸하네요 정말 변한것은 사람인가봅니다^^
  • 아라리 2014/05/07 10:55 # 삭제

    본편을 보고 리덕스를 보니 본편이 더 낫단 생각이 드네요..리덕스를 보고 본편을 봤으면 또 어땠을지 모르지만.. 너무 깔끔해져서 매력은 떨어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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