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은 ‘중경삼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1994년 작 ‘중경삼림’이 재개봉되었습니다. ‘동사서독’의 길고 지루한 포스트프로덕션 도중 잠시 짬을 내 기분전환을 위해 제작한 만큼 왕가위의 중화권 필모그래프 중 가장 경쾌한 작품이자 유일한 해피 엔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경삼림’은 삐삐와 자동응답기 시대의 영화입니다. 극중에 등장하는 카이탁 국제공항은 1998년을 끝으로 폐쇄되었습니다. 최초 개봉으로부터 19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극중 첫 번째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아기고양이들이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이지만 ‘중경삼림’은 여전히 세련되며 매력적입니다.
금성무와 임청하의 첫 번째 에피소드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경찰 223번 하지무(금성무 분)를 둘러싼 금발의 인연이 흥미롭습니다. 메이로부터 버려진 이후 하지무는 술집에서 만난 금발 여인(임청하 분)과 사랑에 빠집니다. 서두에서 하지무가 용의자를 연행하던 도중 금발 마네킹과 부딪치자 용의자가 도주합니다. 용의자를 뒤쫓던 하지무는 금발 여인과 청과상 앞에서 충돌합니다. 금발 마네킹이 금발 연인과의 인연의 시작을 암시합니다. 두 사람이 사복 경찰과 마약 중개인이라는 점에서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발 여인을 배신한 백인 마약상은 금발 가발을 쓴 술집 바텐더와 관계를 맺습니다. 금발 여인은 마약상을 살해하며 복수한 뒤 금발 가발을 벗어던진 채 긴 생머리와 선글라스 차림으로 자리를 뜹니다. 임청하의 긴 생머리와 선글라스 차림은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 씨를 앞세운 포스터를 연상시킵니다.
‘타락천사’에서도 금성무는 죄수 223번 하지무로 등장합니다. 하지무가 짝사랑에 빠지는 여성 찰리(양채니 분)의 연인을 빼앗은 연적은 금발의 여성 ‘금발령’입니다. 하지무와 찰리는 금발령을 찾아 복수를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중경삼림’의 하지무는 4월 1일 만우절에 이별을 통보받은 후 4월 한 달 간 기다리며 매일같이 하나 씩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읍니다. 5월 1일이 되자 그는 모아둔 파인애플 통조림 30개를 한꺼번에 먹어치운 뒤 금발의 여인과 조우한 술집에서 위스키를 잔뜩 마십니다. 그리고 금발의 여인이 곁에 잠든 호텔방에서 광둥어 영화 2편을 시청하며 밤새 샐러드 4접시를 해치웁니다. 실연에 대한 공복과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갈망이 폭음과 폭식으로 화한 것입니다.
하지무에게 이별을 고한 여자 친구의 이름이 5월을 뜻하는 ‘May’인데 5월 들어 하지무가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것도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하지무가 즐겨 찾는 샐러드 가게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도 ‘May’라는 이름의 동명이인 여종업원이 등장합니다.
양조위와 왕정문의 두 번째 에피소드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경찰 633(양조위 분)은 스튜어디스(주가령 분)에게 채인 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근무하는 페이(왕정문 분)의 관심을 받지만 눈치 채지 못합니다. 633의 고지식한 성격은 그의 경찰 제복은 물론이고 집안의 하얀 삼각팬티와 러닝셔츠 차림에서도 드러납니다. 제복과 하얀 속옷은 눈치 빠름과는 거리가 있는 의상입니다. ‘해피 투게더’에서도 양조위는 집안에서 하얀 삼각팬티 차림으로 등장하는 아휘로 분한 바 있는데 ‘중경삼림’의 633과 마찬가지로 고지식하며 성실한 인물이었습니다.

반면 페이의 의상은 강렬합니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633과 두 번째 만난 날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본 페이는 세 번째 만남에서는 하얀 바탕에 파란색 하트 마크의 반팔 티셔츠를 입고 등장합니다. 633에 대한 사랑을 티셔츠의 하트 마크가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633의 집 열쇠를 돌려주는 스튜어디스의 편지를 돌려 읽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워 페이가 633과 1:1로 대면하는 장면에서 하트 마크 티셔츠는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페이의 의상은 영화의 분위기까지 바꿔놓습니다. 페이가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부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실외 낮 장면이 제시됩니다. 노란색 티셔츠를 비롯한 페이의 밝은 색 의상은 그녀의 낙천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사복과 제복이 관계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633은 경찰 제복을 입고 나타나 사복을 입은 페이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하지만 633이 사복을 입고 페이와의 첫 번째 데이트를 위해 캘리포니아 바로 향하자 페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633이 사복을 입고 기다리는 것으로 관계가 역전됩니다. 경찰을 사직한 후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인수한 633은 사복을 입은 채 스튜어디스 제복을 입은 페이와 1년 만에 재회합니다. 제복을 입은 자는 사랑의 주도권을 지니고 기다리게 하는 자이며 사복을 입은 자는 사랑에 빠져 기다리는 자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소품 비행기는 사랑을 상징합니다. 633과 스튜어디스가 비행기로 사랑의 장난을 치는 장면에서 그림자에 비치는 비행기 모형의 기수는 발기된 음경을 연상시킵니다. 두 사람의 섹스를 암시합니다. 페이는 633의 빈집에 들어가 청소를 하던 도중 확대경으로 침대에서 긴 머리카락을 찾아내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페이 또한 비행기를 가지고 놀며 633에 대한 마음을 확인합니다. 스튜어디스가 남긴 제복을 입어보는 장면과 더불어 비행기를 가지고 노는 장면은 633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스튜어디스가 되려하는 페이의 심리 상태의 복선입니다.
두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요소들
두 개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요소들도 있습니다. 잠든 여성과 지켜주는 남성이 반복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하지무는 금발 여인이 잠들자 ‘그녀가 쉬자는 말이 정말로 쉬자는 것인지 몰랐다’며 지켜줍니다. 금발 여인은 밤새 쫓긴 피로를 하지무 덕분에 해소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633의 집에 무단 침입해 청소하려던 페이가 발각되지만 633의 다정한 마사지에 소파에 앉은 채 잠이 듭니다. 페이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던 633도 그녀의 곁에 기대 함께 낮잠에 빠집니다. ‘중경삼림’을 통틀어 가장 달콤하고 안온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화양연화’에서도 두 주인공이 집안에 갇혀 나가지 못해 함께 잠드는 비슷한 장면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신발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하지무는 잠든 금발 여인의 신발을 벗겨준 뒤 넥타이로 깨끗이 닦아줍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페이가 633의 집에 들어가 이전에 사용했던 슬리퍼를 바꿔줍니다. 신발 교체는 새로운 사랑을 상징합니다. 중국의 과거 전족 풍습을 감안하면 신발은 매우 중요한 소품입니다. ‘화양연화’에서도 차우(양조위 분)가 수리챈(장만옥 분)의 신발을 고이 간직한 바 있으며 수리챈이 필리핀의 차우의 집까지 찾아가 ‘회수’한 바 있습니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외에 인상적인 두 개의 공간은 서클K 편의점과 맥도날드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금발 여인이 범행 준비를 위해 들러 인도인이 마음대로 음료수를 꺼내 마신 편의점과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새로운 남자 친구를 대동한 스튜어디스와 633이 조우하는 편의점은 동일 장소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무도 편의점에서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읍니다.
하지무가 홀로 햄버거를 구입해 밖에 나와 먹는 맥도날드는 큼지막한 간판이 인상적입니다. ‘타락천사’에서 황지명(여명 분)과 금발 여인(막문위 분)이 조우하는 맥도날드와 동일한 매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클K 편의점과 맥도날드는 자본주의적이며 세련된 도시적 공간이자 조명이 밝아 밤 장면을 즐겨 촬영하는 왕가위의 입맛에 맞아떨어지는 로케이션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중경삼림’의 개봉 당시 발매된 OST에는 왕정문이 부른 ‘Dreams’를 제외하고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 디나 워싱턴의 ‘What a Diff'rence a Day Made’ 등의 올드 팝이 전부 수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타락천사’의 OST에는 관숙의의 ‘망기타’가, ‘동사서독’의 OST에는 맹인 검객(양조위 분)이 마적대와 혈투를 벌이는 장면의 곡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중경삼림’의 OST 누락은 정도가 심합니다.
아비정전 - 왕가위 월드의 원형
중경삼림 - 도시적이고 쿨한 감수성
중경삼림 - 12년 만에 필름으로 재회한 인생의 영화
중경삼림 - 왜 우리는 이 영화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타락천사 - 우울과 고독 속으로 침잠하다
타락천사 - 헤어지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
해피 투게더 - 아휘, 다시 시작하자
화양연화 -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화양연화 - 고통스럽고 행복한, 사랑
2046 - 엇갈린 사랑의 공허함
2046 - 두 번째 감상
2046 - 세 번째 감상
2046 - 네 번째 감상
에로스 - 세 편의 알듯 말듯한 사랑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배경만 바꾼 왕가위의 동어반복
일대종사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일대종사 - 7번의 기념사진, 그리고 궁이
http://twitter.com/tominodijeh

‘중경삼림’은 삐삐와 자동응답기 시대의 영화입니다. 극중에 등장하는 카이탁 국제공항은 1998년을 끝으로 폐쇄되었습니다. 최초 개봉으로부터 19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극중 첫 번째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아기고양이들이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이지만 ‘중경삼림’은 여전히 세련되며 매력적입니다.
금성무와 임청하의 첫 번째 에피소드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경찰 223번 하지무(금성무 분)를 둘러싼 금발의 인연이 흥미롭습니다. 메이로부터 버려진 이후 하지무는 술집에서 만난 금발 여인(임청하 분)과 사랑에 빠집니다. 서두에서 하지무가 용의자를 연행하던 도중 금발 마네킹과 부딪치자 용의자가 도주합니다. 용의자를 뒤쫓던 하지무는 금발 여인과 청과상 앞에서 충돌합니다. 금발 마네킹이 금발 연인과의 인연의 시작을 암시합니다. 두 사람이 사복 경찰과 마약 중개인이라는 점에서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발 여인을 배신한 백인 마약상은 금발 가발을 쓴 술집 바텐더와 관계를 맺습니다. 금발 여인은 마약상을 살해하며 복수한 뒤 금발 가발을 벗어던진 채 긴 생머리와 선글라스 차림으로 자리를 뜹니다. 임청하의 긴 생머리와 선글라스 차림은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 씨를 앞세운 포스터를 연상시킵니다.
‘타락천사’에서도 금성무는 죄수 223번 하지무로 등장합니다. 하지무가 짝사랑에 빠지는 여성 찰리(양채니 분)의 연인을 빼앗은 연적은 금발의 여성 ‘금발령’입니다. 하지무와 찰리는 금발령을 찾아 복수를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중경삼림’의 하지무는 4월 1일 만우절에 이별을 통보받은 후 4월 한 달 간 기다리며 매일같이 하나 씩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읍니다. 5월 1일이 되자 그는 모아둔 파인애플 통조림 30개를 한꺼번에 먹어치운 뒤 금발의 여인과 조우한 술집에서 위스키를 잔뜩 마십니다. 그리고 금발의 여인이 곁에 잠든 호텔방에서 광둥어 영화 2편을 시청하며 밤새 샐러드 4접시를 해치웁니다. 실연에 대한 공복과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갈망이 폭음과 폭식으로 화한 것입니다.
하지무에게 이별을 고한 여자 친구의 이름이 5월을 뜻하는 ‘May’인데 5월 들어 하지무가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것도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하지무가 즐겨 찾는 샐러드 가게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도 ‘May’라는 이름의 동명이인 여종업원이 등장합니다.
양조위와 왕정문의 두 번째 에피소드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경찰 633(양조위 분)은 스튜어디스(주가령 분)에게 채인 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근무하는 페이(왕정문 분)의 관심을 받지만 눈치 채지 못합니다. 633의 고지식한 성격은 그의 경찰 제복은 물론이고 집안의 하얀 삼각팬티와 러닝셔츠 차림에서도 드러납니다. 제복과 하얀 속옷은 눈치 빠름과는 거리가 있는 의상입니다. ‘해피 투게더’에서도 양조위는 집안에서 하얀 삼각팬티 차림으로 등장하는 아휘로 분한 바 있는데 ‘중경삼림’의 633과 마찬가지로 고지식하며 성실한 인물이었습니다.

(사진 : 2005년에 촬영한 홍콩 란콰이풍의 샐러드 가게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Chungking Express'라는 영어 제목명에도 영향을 주었으나 현재는 폐업)
반면 페이의 의상은 강렬합니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633과 두 번째 만난 날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본 페이는 세 번째 만남에서는 하얀 바탕에 파란색 하트 마크의 반팔 티셔츠를 입고 등장합니다. 633에 대한 사랑을 티셔츠의 하트 마크가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633의 집 열쇠를 돌려주는 스튜어디스의 편지를 돌려 읽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워 페이가 633과 1:1로 대면하는 장면에서 하트 마크 티셔츠는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페이의 의상은 영화의 분위기까지 바꿔놓습니다. 페이가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부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실외 낮 장면이 제시됩니다. 노란색 티셔츠를 비롯한 페이의 밝은 색 의상은 그녀의 낙천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사복과 제복이 관계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633은 경찰 제복을 입고 나타나 사복을 입은 페이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하지만 633이 사복을 입고 페이와의 첫 번째 데이트를 위해 캘리포니아 바로 향하자 페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633이 사복을 입고 기다리는 것으로 관계가 역전됩니다. 경찰을 사직한 후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인수한 633은 사복을 입은 채 스튜어디스 제복을 입은 페이와 1년 만에 재회합니다. 제복을 입은 자는 사랑의 주도권을 지니고 기다리게 하는 자이며 사복을 입은 자는 사랑에 빠져 기다리는 자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소품 비행기는 사랑을 상징합니다. 633과 스튜어디스가 비행기로 사랑의 장난을 치는 장면에서 그림자에 비치는 비행기 모형의 기수는 발기된 음경을 연상시킵니다. 두 사람의 섹스를 암시합니다. 페이는 633의 빈집에 들어가 청소를 하던 도중 확대경으로 침대에서 긴 머리카락을 찾아내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페이 또한 비행기를 가지고 놀며 633에 대한 마음을 확인합니다. 스튜어디스가 남긴 제복을 입어보는 장면과 더불어 비행기를 가지고 노는 장면은 633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스튜어디스가 되려하는 페이의 심리 상태의 복선입니다.
두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요소들
두 개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요소들도 있습니다. 잠든 여성과 지켜주는 남성이 반복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하지무는 금발 여인이 잠들자 ‘그녀가 쉬자는 말이 정말로 쉬자는 것인지 몰랐다’며 지켜줍니다. 금발 여인은 밤새 쫓긴 피로를 하지무 덕분에 해소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633의 집에 무단 침입해 청소하려던 페이가 발각되지만 633의 다정한 마사지에 소파에 앉은 채 잠이 듭니다. 페이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던 633도 그녀의 곁에 기대 함께 낮잠에 빠집니다. ‘중경삼림’을 통틀어 가장 달콤하고 안온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화양연화’에서도 두 주인공이 집안에 갇혀 나가지 못해 함께 잠드는 비슷한 장면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신발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하지무는 잠든 금발 여인의 신발을 벗겨준 뒤 넥타이로 깨끗이 닦아줍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페이가 633의 집에 들어가 이전에 사용했던 슬리퍼를 바꿔줍니다. 신발 교체는 새로운 사랑을 상징합니다. 중국의 과거 전족 풍습을 감안하면 신발은 매우 중요한 소품입니다. ‘화양연화’에서도 차우(양조위 분)가 수리챈(장만옥 분)의 신발을 고이 간직한 바 있으며 수리챈이 필리핀의 차우의 집까지 찾아가 ‘회수’한 바 있습니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외에 인상적인 두 개의 공간은 서클K 편의점과 맥도날드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금발 여인이 범행 준비를 위해 들러 인도인이 마음대로 음료수를 꺼내 마신 편의점과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새로운 남자 친구를 대동한 스튜어디스와 633이 조우하는 편의점은 동일 장소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무도 편의점에서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읍니다.
하지무가 홀로 햄버거를 구입해 밖에 나와 먹는 맥도날드는 큼지막한 간판이 인상적입니다. ‘타락천사’에서 황지명(여명 분)과 금발 여인(막문위 분)이 조우하는 맥도날드와 동일한 매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클K 편의점과 맥도날드는 자본주의적이며 세련된 도시적 공간이자 조명이 밝아 밤 장면을 즐겨 촬영하는 왕가위의 입맛에 맞아떨어지는 로케이션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중경삼림’의 개봉 당시 발매된 OST에는 왕정문이 부른 ‘Dreams’를 제외하고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 디나 워싱턴의 ‘What a Diff'rence a Day Made’ 등의 올드 팝이 전부 수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타락천사’의 OST에는 관숙의의 ‘망기타’가, ‘동사서독’의 OST에는 맹인 검객(양조위 분)이 마적대와 혈투를 벌이는 장면의 곡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중경삼림’의 OST 누락은 정도가 심합니다.
아비정전 - 왕가위 월드의 원형
중경삼림 - 도시적이고 쿨한 감수성
중경삼림 - 12년 만에 필름으로 재회한 인생의 영화
중경삼림 - 왜 우리는 이 영화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타락천사 - 우울과 고독 속으로 침잠하다
타락천사 - 헤어지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
해피 투게더 - 아휘, 다시 시작하자
화양연화 -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화양연화 - 고통스럽고 행복한, 사랑
2046 - 엇갈린 사랑의 공허함
2046 - 두 번째 감상
2046 - 세 번째 감상
2046 - 네 번째 감상
에로스 - 세 편의 알듯 말듯한 사랑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배경만 바꾼 왕가위의 동어반복
일대종사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일대종사 - 7번의 기념사진, 그리고 궁이
http://twitter.com/tominodijeh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