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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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슬러 - 치타가 인간보다 낫다 영화

※ 본 포스팅은 ‘카운슬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인 카운슬러(마이클 패스밴더 분)는 사업가 라이너(하비에르 바르뎀 분)와 마약중개인 웨스트레이(브래드 피트 분)와 손잡고 마약 밀수에 동참합니다. 하지만 라이너의 연인 말키나(카메론 디아지 분)가 비밀리에 마약을 탈취하고 카운슬러 일당은 신변의 위협을 받습니다.

‘카운슬러’는 코맥 맥카시가 각본을 쓰고 리들리 스콧이 연출을 맡았으며 캐스팅된 배우들의 면면까지 화려한 하드보일드 스릴러입니다. 주된 공간적 배경은 멕시코와 미국이지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영국 런던도 제시되어 국제적입니다. 결말에서 말키나는 홍콩도 언급합니다.

이미 영화화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더 로드’의 원작자인 소설가 코맥 맥카시가 직접 각본을 집필해 ‘카운슬러’의 방향성을 결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반적으로 대화의 호흡이 길어 문학적으로는 주옥같지만 영화적으로는 지루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코맥 맥카시의 극도로 염세적인 성향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제시되어 세련미와는 거리가 있으며 허세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악이 승리하는 결말 또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와이어맨(샘 스프루엘 분)이 ‘그린 호넷’(리차드 카브랄 분)을 살해하기 위해 오토바이 매장에 들어가 야마하 바이크의 사이즈를 줄자로 재면서부터 긴장감은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고도의 기술을 지닌 장인처럼 와이어맨이 꼼꼼하게 철사 장치를 준비해 그린 호넷을 살해하는 장면은 ‘속 나바론의 요새’의 독일군 살해 장면을 연상시키지만 그에 앞서 라이너가 카운슬러에게 설명한 살해 장치의 변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연과 필연이 뒤얽히며 중반 이후 촘촘해지는 서사는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라이너가 언급한 목을 철사로 옭아매 살해하는 장치는 웨스트레이의 살해에 고스란히 사용됩니다. 카운슬러는 도망치지 못해도 자신만큼은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는 웨스트레이의 자신에 찬 공언은 허언이 됩니다. 여성을 참수한 뒤 성폭행하는 스너프 필름은 카운슬러의 연인 로라(페넬로페 크루즈 분)에게 적용됩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신체 절단에 의한 여성 살해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에 가까우며 극중에서도 로라가 살해되는 스너프 필름의 내용이 제시되지는 않지만 목이 잘려 몸만 남은 로라의 시체가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장면은 제시됩니다. 긴 대사를 통해 예고된 끔찍한 살해 방식이 고스란히 현실화된 것입니다. 마약 거래에 참여하려는 카운슬러와 동업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고했던 라이너와 웨스트레이의 우려 또한 모두 현실이 됩니다.

최고의 비주얼리스트로 손꼽히는 거장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만큼 고어 장면의 연출은 매우 강렬합니다. 코맥 맥카시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를 연출에도 반영해 고어 장면을 사실적으로 제시합니다. 특히 웨스트레이가 살해당하는 장면은 놀랍습니다. 2007년 작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마약을 소재로 다룬 바 있으며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맡아도 탁월한 연출력을 과시하는 만큼 리들리 스콧과 코맥 맥카시, 두 거장이 합작한 ‘카운슬러’는 기억에 남을 만한 하드보일드 스릴러입니다.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측면도 있습니다. 라이너가 총격으로 살해당해 유혈이 낭자해진 가운데 두 마리의 치타가 라이너의 차량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립니다. 마치 라이너의 시체가 뜯어 먹히는 끔찍한 장면이 연출될 듯한 순간 두 마리의 치타는 라이너를 지나칩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학살극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치타는 주인의 시체를 뜯어먹지 않습니다. 말키나는 치타 문신을 하고 자신을 치타에 비유하지만 말키나를 비롯한 인간들보다 치타가 오히려 인간적입니다. 트럭에 실은 마약을 은폐하기 위해 채운 분뇨가 총격전 와중에 새고 이후에 이를 메우는 과정과 시카고 마약 조직의 일원 랜디로 분한 존 레귀자모가 등장해 수다를 떠는 장면도 웃음을 자아냅니다. 엔드 크레딧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흥겨운 박자의 레게음악은 차갑고 잔혹했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뒤풀이와 같아 웃음을 자아냅니다.

주인공 카운슬러(Counselor)는 이름부터 역설적입니다. 실제 이름은 등장하지 않고 ‘카운슬러’로만 불린다는 점에서 ‘드라이브’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분한 주인공이 ‘드라이버’로만 불린 것과 유사합니다. ‘카운슬러’는 사전적으로 변호사를 의미하며 상담역으로도 해석될 수 있으나 극중에서 카운슬러는 주변 인물들의 상담을 받아주기보다 처음 참여한 마약 거래의 성사 및 뒷수습을 위해 주변 인물들과 상담하고 조언을 구하며 부탁하기에 급급합니다. 카운슬러가 카운슬링이 절실한 상황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극중에서 카운슬러는 자신을 영악하다 믿으며 그가 의뢰인을 배신한다는 암시도 있지만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기 마련입니다. 카운슬러는 배신당합니다.

돈, 여자, 사회적 신분을 동시에 손에 쥔 남부럽지 않은 여피였으나 잘못된 선택으로 나락으로 굴러 동료와 연인을 잃은 카운슬러는 죽음으로 내몰립니다. 마약 거래는 애초에 카운슬러가 뛰어들어서는 안 될 바닥이었던 것입니다. 오프닝의 카운슬러와 로라의 긴 베드신은 카운슬러의 행복한 시절과 동시에 그린 호넷과의 인연을 암시하지만 결과적으로 비참한 후반부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카운슬러의 죽음은 묘사되지 않았으나 그의 은신처의 위치가 이미 파악당한 뒤이니 참혹한 죽음은 필연적입니다. 게다가 누가 자신을 노리는 지조차 모르는 채 당해야 합니다. 자신만만했던 초반을 지나 초조한 중반, 그리고 파멸로 이르는 후반까지의 마이클 패스밴더의 연기 변화는 훌륭합니다. 파멸에 대한 두려움으로 두 번에 걸쳐 눈물을 주룩 흘리는 장면과 스너프 필름의 dvd를 받아들고 초췌한 모습으로 오열하는 장면의 연기는 인상적입니다. 리들리 스콧이 ‘프로메테우스’에 이어 왜 또 다시 마이클 패스밴더를 캐스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코맥 맥카시와 하비에르 바르뎀의 인연도 흥미롭습니다. 코맥 맥카시 원작으로 코엔 형제가 영화화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은 끝내 생존하는 무시무시한 킬러 안톤 쉬거로 출연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바 있습니다. ‘카운슬러’에도 하비에르 바르뎀이 출연하면서 코맥 맥카시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는데 이번에는 하비에르 바르딤에 가장 먼저 숙청되는 인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는 정반대가 된 셈입니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아내 페넬로페 크루즈와 함께 출연한 것도 인연의 연장선상입니다. 극중에서 언급되는 만화 ‘그린 호넷’의 영화판에 카메론 디아즈가 히로인으로 출연한 바 있던 사실도 이채롭습니다. 카메론 디아즈는 철두철미한 거악이자 팜므 파탈로 출연합니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스페인어 대사의 대부분이 한글자막으로 번역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코맥 맥카시의 주옥같은 대사를 놓치며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지 못한 애비게일의 한글자막은 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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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솔다 2013/11/17 08:52 #

    하비에르 바르뎀도 !!나오는군요!!!!!!
    코맥 맥카시 각본이라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 Adrenalin 2013/11/17 12:50 #

    리뷰가 어찌 이렇게 상세하고 좋은지요
    영화보면서 막연히, 그리고 모호하게 느끼던 점을 명쾌하게 정리해주시네요.
    영화의 한줄 요약도 제목에..ㅎㅎ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2014/03/18 14:54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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