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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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것처럼 - 거짓말, 파국 부르다 영화

※ 본 포스팅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빚에 시달리는 사회학과 여대생 아키코(타카나시 린 분)은 매춘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전직 교수 타카시(오쿠노 타다시 분)와 하룻밤을 보낸 아키코는 다음 날 학교 앞에서 남자친구 노리아키(카세 료 분)와 마주칩니다. 노리아키는 타카시의 정체를 궁금해 합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각본 및 연출을 맡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여대생 매춘부와 그녀의 연인, 그리고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 노인의 삼각관계를 묘사합니다. 하룻밤부터 그 다음 날 점심까지의 짧은 시간적 배경 동안 개별 시퀀스를 공들여 길게 묘사해 마치 사실주의 단편소설을 읽는 듯합니다. 젊은 여자와의 섹스를 중심으로 늙은 남자와 젊은 남자가 대립한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아키코는 자신이 매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리아키에 숨겨야 하며 타카시 또한 사회적 지위와 이웃의 눈치가 있기에 젊은 여성을 집으로 불러 매춘을 꾀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합니다. 따라서 아키코와 타카시는 필연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으며 거짓말을 덮기 위한 새로운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매춘이라는 소재를 노출이나 섹스 장면 없이 담백하게 묘사하며 자극적인 장면도 없지만 과연 두 사람의 거짓말은 언제 밝혀지며 어떤 파국을 맞을지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자랑합니다.

대도시의 수많은 소음, 택시의 라디오 소리, 주택가 인근 도로의 자동차 소리까지 민감하게 재현해 생생함을 배가시킵니다. 아키코가 매춘을 위해 목적지로 향하는 택시의 라디오에서는 타카다 미츠에의 1977년 유행가 ‘유리언덕[硝子坂]’이 흐릅니다. 아키코가 타카시의 집에서 그의 가족사진을 보며 자신과 닮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옆집 여성의 대사를 통해 일리가 있음이 드러나지만 동시에 일면식도 없는 여성과 매춘하는 남성의 심적 부담을 줄여주며 환상을 심어주기 위한 영업용 멘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란 출신이지만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일본인 감독이 연출했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본적이며 자연스럽습니다. 영화의 원제는 엔드 크레딧에도 흐르는 엘라 피츠제랄드의 올드팝 ‘Like Someone in Love’에서 비롯되었지만 오프닝 및 엔딩 크레딧은 모두 프랑스어로 되어 흥미롭습니다.

아키코와 타카시의 매춘 사실이 밝혀져 일대 소동을 맞이하는 결말의 파국 직후에 흐르는 달콤한 엔딩 테마 ‘Like Someone in Love’는 매우 역설적인 곡입니다. 아마도 아키코와 노리아키의 연인 관계는 파멸을 맞았을 것이며 타카시는 오지랖 넓고 수다스러운 옆집 여성의 입에 의해 매춘을 했다는 사실이 동네방네 퍼지게 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집착이 심하며 폭력적인 성향의 노리아키를 왜 사랑했는지 아키코 본인도 모르고 있습니다. 노리아키는 아키코에게 완전히 기만당하면서도 결혼을 결심했기에 진정한 사랑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타카시의 아키코에 대한 감정은 젊은 여성에 대한 애욕인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순수한 사랑인지, 그렇지 않으면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심정인지도 애매합니다. 타카시가 과연 아키코와 밤에 섹스를 했는지 여부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단지 상상에 맡깁니다. 타카시는 노령으로 인한 성적 능력 부족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삽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연적이라 할 수 있는 타카시와 노리아키가 학교 앞에서 조우해 자동차 정비소에 이르는 장면입니다. 차내에서 대화를 나누며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은 단순히 두 남자의 인생관이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노인과 젊은이의 세대 간의 갈등은 물론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화이트 컬러와 블루 컬러의 계급 갈등의 요소까지 지녔습니다.

두 남자의 대화는 사회적 경험이 풍부한 타카시가 노리아키에 주도권을 쥐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애당초 두 사람이 탑승한 차량이 타카시의 소유이자 그의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험을 마친 아키코가 차에 동승해 사회학 시험 결과에 관해 언급하자 중졸의 노리아키가 끼어들 여지는 없어 타카시가 주도권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타카시의 차량 정비 문제를 노리아키가 간파하면서 주도권은 노리아키에게 넘어갑니다. 타카시는 어쩔 수 없이 노리아키의 공간인 정비소로 향하고 그곳에서 아키코와 타카시의 거짓말은 들통 납니다. 쭈뼛쭈뼛하며 타카시 앞에 나타지만 자신의 공간인 정비소에서 자신만만한 자수성가 경영자로 변신하는 카세 료의 연기 변화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학교 앞에서 마주친 아키코와 노리아키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의 대사나 라디오 DJ의 멘트 등이 번역되지 않은 한글 자막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최소한 아키코와 노리아키의 언쟁만이라도 한글 자막으로 옮겨왔어야 관객의 이해를 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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