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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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희 - 여자와 말(言)을 공유한 세 남자 영화

※ 본 포스팅은 ‘우리 선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영화과 출신의 선희(정유미 분)는 교수 동현(김상중 분)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으려 합니다. 문수는 오랜만에 만난 선희를 잊지 못하는 마음을 고백하지만 선희는 시큰둥합니다. 문수는 선배 재학(정재영 분)의 자취방에 찾아가 선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는 중의적인 제목의 영화입니다. 극중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들은 주인공 선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동현, 재학, 문수는 물론이고 초반에만 잠시 등장하는 상우(이민우 분)까지 모든 남성 등장인물들의 지인이 선희입니다. 한국인들이 습관적으로 붙이는 ‘우리 집’ ‘우리 아빠’, ‘우리 학교’, ‘우리 후배’ 등의 ‘우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희를 연인으로 공유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문수는 과거 사귀었지만 한동안 ‘잠수 탄’ 선희와의 연인 관계를 복원하고 싶어 안달합니다. 재학은 선희와의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얼굴을 만지는 등 스킨십을 시도하고 빗속에서 긴 키스에 성공합니다.

동현은 자신의 권력을 앞세워 선희와 술을 마신 후 동침하는 것으로 암시됩니다. 동침 전까지 부정적인 내용이 기술된 선희에 대한 동현의 추천서는 동침 후 온갖 미사여구가 가득한 것으로 극적으로 변화합니다. 추천서의 표변 과정은 학계에서 권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풍자합니다.

따지고 보면 선희에 대한 동현, 재학, 문수의 ‘스킨십 성과’는 나이와 권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동현은 동침, 재학은 키스에 성공하지만 문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문수는 동현과 재학에 비해 어려 여자를 다루는 데 서툴기도 하지만 아직 경력과 권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선희와 문수의 관계는 홍상수 감독의 2011년 작 ‘옥희의 영화’의 옥희와 진구의 관계의 후일담을 보는 듯합니다. 정유미와 이선균이 각각 역할을 맡아 출연한 것, 모두 영화과 학생인 것, 교수까지 다각관계가 형성되는 것, 그리고 홍상수 감독이 교수로 재직 중인 건국대가 촬영 장소로 사용된 것이 동일합니다. 옥희와 선희는 이름도 돌림자를 사용한 것처럼 끝 자가 동일하며 화장기 없는 얼굴과 수수한 외양, 그리고 당돌한 성격도 비슷합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20대 여성이라는 점에서 선희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주인공 해원과 동일한 고민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인물로부터 ‘돌아이’라 불리는 선희의 직선적 성격은 상우와의 만남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선희는 상우가 자신을 속이자 상대가 선배임에도 참지 않고 불같이 화를 냅니다. 선희가 뭇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상우가 선희에게 커피 한 잔 하자며 거짓말로 유혹하는 장면부터 드러납니다. 아역 스타 출신의 이민우가 분한 상우는 극중에서 선희가 문수와 치킨집에서 만나는 장면을 전후해 시간이 흘렀음을 제시하는 건널목 장면을 끝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평가는 물론 인생철학까지 반복적인 대화를 통해 여러 사람의 의견이 엇비슷해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 ‘우리 선희’의 주제 의식입니다. 한 인간을 평가하는 공식적인 문서인 추천서는 물론이고 비공식적인 회합인 술자리까지 대조적인 매개물과 만남을 통해 등장인물들은 ‘순수하다’는 선희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인생철학에 대해 주고받으며 엇비슷한 사고방식을 공유하게 됩니다. 한 명의 여성을 세 남자가 공유하듯 인간에 대한 평가도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며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과연 누가 먼저 입에 올린 말인지조차 불분명해질 정도입니다.

‘끝까지 파봐야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인생철학을 술에 잔뜩 취해 반복하는 이선균의 연기는 가장 큰 웃음을 유발합니다. 이선균의 취객 연기에 앞서 치킨을 배달시키고 마주 앉은 이의 입에 안주를 넣어주는 주현(예지원 분)의 행동 또한 반복됩니다. 주현의 술집 ‘아리랑’에 치킨 배달을 위해 들어온 배달원의 두리번거리는 연기도 웃음을 자아냅니다.

영화적으로 깔끔하게 정제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에 가까운 구어적이며 사실적인 대사를 강조하는 홍상수 영화의 매력은 ‘우리 선희’에서도 변함없습니다.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재기용해 동일한 공간적 배경 속에 집어넣어 엇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지만 정제되지 않은 대사에도 미묘한 변화를 삽입해 서사에 긴장과 재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홍상수 감독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프닝에 제시된 경쾌한 피아노곡이 다시 배경 음악으로 깔리며 세 남자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창경궁의 결말은 체호프의 재기 넘치는 단편 소설을 보는 듯합니다. 하지만 포스터에서 제시한 것처럼 선희까지 네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장면은 영화에서 제시되지 않습니다.

동현과 문수 등 등장인물들 또한 의상을 영화 내내 바꿔 입지 않고 하나만 고집하기에 극중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시퀀스는 더욱 비슷한 인상을 부여합니다. 재학 역의 정재영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처음 출연한 ‘특혜’인 듯 실내복과 외출복으로 각각 별도의 의상을 입고 등장합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쉽지 않은 롱 테이크를 주로 활용하며 관습적인 바스트 숏이나 클로즈업으로 컷을 부여하지 않아 자연스러움을 강조하지만 20세기 중반의 영화들처럼 갑작스런 줌을 활용해 생뚱맞은 카메라는 오프닝 크레딧의 수기처럼 여전합니다. 북촌, 창경궁, 건대 등 공간적 배경이 생뚱맞은 것은 물론 3번이나 삽입되는 최은진의 노래 ‘고향’은 생뚱맞음을 넘어 기괴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남자라는 이름의 수컷
극장전 - 영화를 위한 영화
옥희의 영화 - 독특한 형식미, 홍상수의 변주곡
북촌 방향 - 우연에 의존한 일상성의 고찰
다른 나라에서 - 끊임없이 반복, 변주되는 우주적 인연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 뒷담화와 수작질, 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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