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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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살아라, 찰나까지도

※ 본 포스팅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내전에 공화군으로 참전한 미국인 청년 로버트는 다리를 폭파하라는 지령을 받고 파블로가 이끄는 산중 게릴라 부대에 합류합니다. 파시스트들에 의해 집단 성폭행당한 여성 마리아와 사랑에 빠진 로버트는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죽음 속의 삶을 살다

공화 세력과 파시스트가 대결한 스페인 내전이 한창인 1937년을 배경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40년 출간한 장편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제목은 17세기 영국의 목사이자 시인 존 던의 기도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종’이란 ‘조종(弔鐘)’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목부터 주인공 로버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암시합니다.

작품 곳곳에는 전쟁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죽음이 제시됩니다. 로버트의 전임자인 폭파원 가슈킨은 임무 도중 입은 부상을 입고 죽음을 자청해 파블로 일당에 의해 살해됩니다. 파블로 일당이 파시스트들을 집단적으로 공개 처형한 과거가 파블로의 아내 필라르의 회상으로 삽입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부모가 파시스트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과거를 회상합니다. 다리 폭파를 위해 협력하기로 한 엘소르도 일당은 파시스트의 폭격으로 전멸합니다. 로버트의 아버지는 권총으로 자살했는데 헤밍웨이의 아버지가 권총 자살한 사실을 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말은 로버트의 죽음으로 마무리됩니다.

죽음은 행위로 직접적으로 제시될 뿐만 아니라 상징적으로도 암시됩니다. 필라르는 로버트와 처음 만난 순간 그가 죽음을 맞을 것임을 손금을 통해 알아차립니다. 로버트는 끊임없이 죽음의 공포를 몰아내려 하지만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을 애써 무시하는 로버트에게 필라르는 ‘죽음의 냄새’가 존재한다고 강조합니다. 심지어 마리아와의 격정적인 섹스 속에서도 로버트는 죽음을 엿봅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전쟁 중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실존주의적 인식을 가득합니다.

로버트는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다리 폭파의 임무를 완수한 후 포격으로 중상을 입은 로버트는 파블로 일당과 함께 도망칠 수 없게 되자 마리아에 작별을 고하고는 한 명의 더 파시스트라도 더 살해하기 위해 가물거리는 의식을 쫓아내며 기관총을 잡습니다.

폭파 임무 완수 이후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로버트는 전임자 가슈킨과 동일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죽음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가슈킨은 죽음의 공포를 견디지 못해 동료들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애원한 반면 로버트는 자신을 죽여주겠다는 동료들의 권유를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투쟁합니다. 찰나와 같은 짧은 삶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강렬한 열망을 드러낸 것입니다.

전작과는 다르다, 전작과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헤밍웨이의 전작인 1929년 작 ‘무기여 잘 있어라’와 여러모로 비교됩니다. 두 작품 모두 타국의 전쟁에 참전한 미국인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전쟁 중 사랑에 빠진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습니다. ‘무기여 잘 있어라’의 주인공 헨리가 참전 동기가 불분명한 것과 달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로버트는 파시스트에 맞서겠다는 분명한 의지와 함께 스페인에 대한 애정이 참전 동기로 분명히 제시됩니다.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운 헨리는 전선을 이탈해 살아남지만 박애주의자 로버트는 전선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헨리의 아내 캐서린이지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로버트의 연인 마리아는 살아남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삶을 소중히 여기던 헤밍웨이도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총기로 자살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권총 자살한 아버지를 비겁자처럼 묘사한 것을 보면 헤밍웨이가 1930년대만 해도 자살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것은 분명한데 아무리 우울증을 비롯한 질병과 알코올 중독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1961년 자살한 것은 슬픈 일입니다.

시점의 변화를 통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전작들과도 차별화됩니다. 1926년 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무기여 잘 있어라’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 이외의 인물의 관점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채택해 주인공 로버트 외에 안셀모를 비롯한 파블로 일당은 물론 파시스트 베렌도 중위의 시점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관점이 삽입됩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활용해 주인공은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심리까지 꼼꼼하게 포착합니다. 특히 파블로 일당의 실질적인 리더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인 필라르와 선하면서도 신념이 굳은 노인 안셀모의 생생한 매력이 돋보입니다.

서사가 전개되는 공간 또한 로버트의 시점을 뛰어넘어 연락을 위해 파견된 안드레스나 마드리드에 주재 중인 특파원 카르코프 등의 시점을 통해 다채로운 공간이 제시됩니다. 회상의 삽입과 시점의 변화를 통해 스페인 이외에 미국에까지 지평을 넓혀 헤밍웨이의 관심이 개인에서 공동체와 사회로 확장되었음을 드러냅니다.

이분법의 함정을 피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논리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화군은 선, 파시스트는 악으로 단순화시키지 않습니다. 악이라 할 수 있는 파시스트 측의 베렌도 중위는 전과 확인을 위해 엘소르도 일당의 시체의 목을 베지만 결코 승리의 기쁨을 자축하거나 잔혹함을 즐기지 않습니다. 목을 베라는 명령을 부하들에게 하달하면서도 꺼림칙해합니다. 파블로에 의해 파시스트로 분류되어 학살된 인물들 중에는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는 인상적인 인물들도 존재합니다.

로버트가 가담한 공화군에는 부정적 인물이 존재합니다. 파블로는 게릴라 대장이지만 이제는 말의 소유에만 집착하는 프티 부르주아로 전락했으며 로버트의 작전을 방해하고 함께 싸운 동료들을 살해합니다. 실존 인물 앙드레 마르티는 공화군의 수뇌부이지만 추진력을 상실하고 작전을 방해하는 무능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최전선 산중에서 게릴라들이 열악한 지원 속에서 분투하다 목숨을 잃는 동안에도 공화군 수뇌부는 마드리드에서 불륜과 유흥을 즐깁니다. 공화군 조직 또한 파시스트의 관료제와 별 다를 바 없습니다.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은 최전선의 군인을 소모품처럼 다뤄 무의미하게 인간이 죽는 전쟁의 추악한 본질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권선징악과도 거리가 멉니다. 탐욕스러우며 사악한 파블로는 끝내 살아남습니다. 파시스트를 살해하는 것도 부정한 행위라는 결벽에 가까운 윤리 의식을 갖춘 안셀모는 파블로의 작전 방해가 화근이 되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러시안 룰렛과 같아 누가 죽고 살아남을지 알 수 없으며 생사에 인과 관계가 결여된 것이 전쟁의 또 하나의 본질입니다.

3박 4일간의 짧은 시간을 압도적 분량에 할애한 장편 소설이지만 헤밍웨이 특유의 하드보일드 문체와 더불어 대화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아 속도감과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비록 일부 설정에 대해 왜곡 논란은 있으나 남성적인 헤밍웨이의 열정적인 스페인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더불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투우에 대한 심미안이 재확인됩니다.

헤밍웨이 특유의 색채는 여전합니다. 음식, 술, 섹스 등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요하며 구체적인 묘사는 헤밍웨이답습니다.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산중 게릴라임에 불구하고 파블로 일당은 술과 미식을 즐기는 집단으로 묘사됩니다. 로버트 또한 그들이 만든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며 파블로 일당과 가까워집니다. 신입사원을 환영하는 회식과도 같습니다. 섹스에 대한 묘사는 직설적이기 보다 암시적이지만 만일 헤밍웨이가 20세기 후반에 집필 활동을 했다면 자신의 문체를 닮은 무라카미 하루키 못지않게 상세하고 감각적으로 섹스를 묘사했을 것입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는 곳곳에서 오타가 발견됩니다. 1권 126페이지 두 번째 줄의 ‘넌무’는 ‘너무’가 되어야 옳습니다. 로버트와 마리아가 수염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144페이지의 ‘끝날 때까진 길지 않을 거야’에서 ‘길지’는 ‘기르지’로 수정해야 합니다. 로버트가 각국의 단어로 내면의 자신을 직시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 활용된 321페이지의 ‘에스타(esta noche)’에서 ‘noche’의 한글 표기가 누락되었습니다. 448페이지의 ‘이중 조정 장치’는 바로 앞 페이지에서 표기한 바와 같이 ‘이중 조종 장치’가 되어야 옳습니다. 2권 92페이지의 ‘프리미티보는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에서 ‘말했다’와 ‘그의’ 사이에 마침표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 성불구여도 괜찮아
무기여 잘 있어라 - 사랑과 전쟁, 그리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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