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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 익숙한 세계로 돌아온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

※ 본 포스팅은 ‘언어의 정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두 제작을 취미 겸 장래희망으로 지닌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타카오는 비가 올 때마다 등교하지 않고 신주쿠 교엔에서 오전 시간을 보냅니다. 공원의 정자에서 이름모르는 직장인 여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타카오는 사랑에 빠집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원작, 각본 연출을 맡은 ‘언어의 정원’은 독특한 제목답게 우연히 처음 만나 ‘만엽집’의 단가를 통해 가까워진 띠 동갑 연하남과 연상녀의 사랑을 묘사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일본어 원제에서 ‘언어’를 직선적인 의미의 단어인 ‘言語’ 혹은 ‘言葉’가 아니라 보다 문학적인 뉘앙스를 지녔으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言の葉’로 선택한 것부터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낭만주의적 정서를 엿볼 수 있습니다. 타카오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연상녀는 타카오가 재학 중인 고교의 고전문학 교사였으나 불량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사직한 유카리로 밝혀집니다. 그녀가 ‘만엽집’을 인용한 것은 직업적인 이유와 연관되어 있던 것입니다.

독특한 제목만 놓고 보면 두 주인공이 장마철부터 늦여름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배경 내내 시적인 대화를 나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유카리가 첫 만남에서 타카오에게 읊조리는 단가와 후반부에 타카오가 유카리에게 제시하는 답가를 제외하면 두 주인공은 신카이 마코토의 전형적인 캐릭터답게 말수가 적습니다. 둘 모두 자기표현이 서툴고 내성적이며 과묵하기 때문입니다. 대화가 적은 만큼 두 주인공의 심리는 내레이션을 통해 제시됩니다. 전반부가 타카오의 내레이션을 통해 타카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후반부는 유카리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반부에 숨겨둔 유카리의 비밀이 밝혀집니다. 유카리는 동료 교사이자 유부남인 이토 선생과 불륜이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미니멀리즘에 충실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답게 등장인물의 수 또한 적습니다.

신주쿠 역을 비롯한 도쿄 시내 곳곳의 풍경을 정교한 작화로 옮겨 속도감 넘치게 편집해 다카오의 내레이션과 함께 제시하는 서두 역시 신카이 마코토의 전형적인 연출 방식입니다. 지브리를 연상시키는 SF 판타지를 추구한 ‘별을 쫓는 아이’를 통해 미니멀리즘으로부터 벗어나는 듯싶었던 신카이 마코토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초속 5센티미터’와 같이 철두철미한 미니멀리즘의 세계로 복귀했습니다. 익숙하며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세계로 복귀한 만큼 ‘언어의 정원’은 ‘별을 쫓는 아이’에 비해 만족스러운 작품입니다. 청명한 피아노곡을 주된 배경 음악으로 삽입한 46분의 러닝 타임 동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에서 사랑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곤 했지만 ‘언어의 정원’은 엔드 크레딧 이후 행복한 결말을 암시합니다. 타카오의 성이 아키즈키[秋月]이며 유카리의 성이 유키노[雪野]인 것은 여름에 만난 두 사람의 사랑이 보름달의 가을과 눈 내리는 겨울을 지나며 무르익어 완성될 것임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신카이 마코토 = 사랑의 비극’의 공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타카오가 유카리의 아파트에 찾아가게 된 날 종일 비가 오다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비가 그치고 밝은 햇살이 비추는 것은 해피 엔드에 대한 분명한 암시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겨온 타카오가 아파트 계단에서 유카리에게 속사포처럼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은 교복을 입은 소년이 미묘한 감정을 지닌 연상의 성인 여성에게 격정적인 감정을 토로한다는 점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와 미사토가 연출한 몇 차례의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언어의 정원’은 결말의 강렬함에 있어서는 ‘초속 5센티미터’에 비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사랑을 소재로 한 영상물은 낙천적인 결말보다는 비극적인 결말이 보다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사랑’ 못지않게 또 하나의 주된 소재는 ‘성장’입니다. 10대 소년 타카오가 유카리와의 사랑을 통해 성장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를 어린아이로 규정한 유카리 역시 타카오와의 만남을 통해 미각장애를 극복하며 정신적으로 성장합니다. ‘걸음’으로 상징되는 세상을 향한 발돋움은 성장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벌레가 허물을 벗는 컷이 삽입되는 것 또한 두 주인공의 성장과 변화, 그리고 세상을 향한 발돋움을 상징합니다.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발과 신발입니다. 타카오는 취미이자 장래희망을 십분 활용해 세상을 향해 걷지 못하는 유카리를 위해 구두를 만듭니다. 포스터에도 제시되는 타카오가 유카리의 발 사이즈를 재는 장면은 아파트 계단에서 포옹하기 전까지 두 사람의 스킨십이 가장 친밀하게 진전된 순간입니다. 발 페티시마저 연상되는 장면입니다. 사랑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를 도우며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타카오가 구두에 집착하는 이유는 고인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 띠 동갑 연인과 가출한 어머니, 그리고 형까지 온 가족이 함께 한 소중한 추억의 매개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인 각본이겠지만 타카오 또한 구두를 통해 띠 동갑 여성과 사귀게 됩니다. 어머니의 전철을 밟는 아들입니다. 타카오가 연상인 유카리에 끌리는 이유를 어머니의 부재에서 비롯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가 한국에서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과 일본의 공통분모와 이국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어의 정원’은 교복, 학교, 왕따, 여교사와 남학생의 사랑 등 한국의 드라마나 만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를 지니고 있으며 지하철과 대도시 등의 요소 또한 한국에서도 친숙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고 도망갈까 두려워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통용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신발을 선물하는 것은 금기시하지 않아 한일 양국의 차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 이후 ‘신주쿠 교엔에서 음주는 금지되어 있다’는 자막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 시적인 미니멀리즘
별의 목소리 - 1인 제작 애니메이션의 한계와 극복
초속 5센티미터 - 삶과 세월 속에 묻힌 희미한 사랑의 그림자
초속 5센티미터 - 두 번째 관람
별을 쫓는 아이 - 독창성 상실한 신카이 마코토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elfineris 2013/08/21 18:19 #

    불륜이 아닙니다(.......)
  • 뮤온 2013/08/21 23:59 # 삭제

    이토 선생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라고 하는 유카리의 나레이션이 나오는걸로 봐서는 이토선생과의 불륜이라는건 말이 안맞는것 같습니다만...
  • ? 2013/08/22 13:36 # 삭제

    불륜이야기 듣고 내가 영화를 잘못 봤나 싶었는데ㅋ
  • 2013/10/07 18:09 #

    며칠 전 보고 왔습니다. 제 생각에도 불륜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영화에서 저보다 많은 걸 읽어 내셨군요. 같은 영화 보면서 나는 왜 이것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걸까 싶기도^^;
    마지막 자막은 정말 웃겼어요. 원래는 진지한 의도로 넣은 건지도 모르지만. 가까이 앉아 있던 어떤 관객이 '마지막이 가장 재밌었어'라고 하더군요.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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