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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어라 - 사랑과 전쟁, 그리고 죽음

※ 본 포스팅은 ‘무기여 잘 있어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탈리아군 구급차 장교로 복무 중인 미국인 헨리는 영국인 간호사 캐서린과 사랑에 빠집니다.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입원한 헨리는 캐서린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아기도 생깁니다. 전선에 복귀한 헨리는 후퇴 도중 죽을 고비를 맞이합니다.

1929년 작 ‘무기여 잘 있어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장편 소설입니다.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에 적십자 부대의 구급차 운전병으로 참전해 부상을 입고 육군병원에서 미국 간호장교와 사랑에 빠져 청혼했지만 거절당한 바 있습니다. 헨리와 캐서린의 사랑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헤밍웨이 본인의 사랑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기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기여 잘 있어라’는 전쟁과 사랑이라는 국적 불문하고 만인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소재를 선택해 모험담과 로맨스를 혼합 제시합니다. 헨리는 참호 속에서 부하들과 차게 식은 마카로니를 포크도 없이 맨손으로 먹다 포격을 받아 부상을 입은 뒤 후송되어 캐서린과 달콤한 사랑에 빠집니다. 목숨을 건 탈영 과정과 호수에서 밤새 보트를 저어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중립국 스위스로 향하는 전개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쥐락펴락합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캐서린의 생생한 출산 과정 또한 헤밍웨이가 아들의 제왕절개 수술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전쟁에 대한 묘사 못지않게 사실적이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한 하드보일드 문체는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도 여전합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사랑의 비극을 시종일관 담담하게 표현해 오히려 비극성을 심화시킵니다. 비극적 상황을 묘사하면서도 신파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독자보다 감정이 앞서는 오류를 범하지 않습니다. 한 세기 전의 작품이지만 하드보일드 문체 특유의 세련된 농담도 눈에 띕니다.

헨리는 부하들을 지휘해 후퇴하던 도중 다른 부대의 공병 하사관들을 탑승시킵니다. 하지만 진창에 빠진 구급차를 꺼내는데 공병 하사관들이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하들과 합심해 살해합니다. 명령 불복종이라는 명목이지만 살해 이유로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얼마 후 헨리는 부대 이탈을 이유로 헌병대로부터 즉결처형에 내몰립니다. 자신이 살해한 공병 하사관과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어리석은 이유로 아군마저 살해하는 것이 전쟁의 본질임을 직시합니다. 전술한 참호 속 마카로니 장면에서는 방금 전까지 함께 식사를 나눈 동료가 싸늘한 시체로 돌변합니다. 전쟁은 이유 없이 아무나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의아한 것은 징집 대상이 아닌 미국인 헨리의 이탈리아군 자원입대 이유입니다. 입대 경위는 어느 정도 드러나지만 입대 동기에 대해서는 불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헨리가 전쟁의 대의명분을 지지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자신과 무관한 전쟁에 대한 혐오를 끊임없이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선을 이탈한 이후에도 틈만 나면 신문을 찾아 읽으며 전선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헨리입니다. 캐서린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호사로서 야전병원에 근무하게 된 경위는 제시되지만 분명한 동기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단지 전사한 연인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유추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전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나 환자에 대한 사명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헨리와 캐서린 모두 모순적인 인물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모순이 곧 인간의 본질이라 해도 말입니다.

타국의 전쟁에 참전한 국외자 헨리의 유일한 세상의 접점은 캐서린입니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과 소원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단지 두 사람이 서로의 가족일 뿐입니다. 연인을 전쟁에서 잃은 상실감에 시달리는 캐서린을 상대로 가볍게 놀아보려 했던 바람둥이 헨리는 부상을 전후로 캐서린과 열렬한 사랑에 빠집니다. 캐서린 또한 헨리만을 바라보며 함께 전선에서 이탈합니다. 하지만 캐서린은 헨리의 아이를 출산하다 사망합니다. 태아도 사산됩니다. 헨리는 모든 것을 잃습니다.

헨리와 캐서린의 종착역이 헨리의 조국인 미국이나 캐서린의 조국인 영국이 아니라 두 사람의 국적과는 무관한 것은 물론 전쟁과도 무관한 중립국 스위스라는 점은 두 주인공의 떠돌이 신세를 상징합니다. 헨리는 미국으로 귀국하고픈 마음이 애당초 결여되어 있습니다.

‘무기여 잘 있어라’의 주제는 전쟁 고발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좌절과 허무감에 대한 실존주의적 인식입니다. 부하들의 전사를 경험하고 자신의 죽을 고비를 넘어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헨리이지만 결국 캐서린과 태아의 죽음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허무주의자 헨리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죽음으로부터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각적 쾌락에 몰두합니다. 캐서린을 만나기 이전에는 여러 명의 여자와 그리고 캐서린과 만난 이후에는 캐서린과의 섹스에 몰두합니다. 다리 부상조차 헨리의 성욕을 감퇴시키지 못합니다. 술과 음식에도 집착합니다. 1926년 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는 음식에 대한 묘사는 술에 대한 묘사보다 적었지만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술 못지않게 음식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묘사합니다.

남성적인 헤밍웨이의 취향이 담긴 권투와 경마 취미는 물론 미국인답게 종종 야구에 비유하는 표현 또한 인상적입니다. 헨리가 캐서린과 대화하며 야구를 화제로 올리자 야구를 잘 모르는 영국인 캐서린이 의미를 되묻는 장면도 제시됩니다.

‘무기여 잘 있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2년 작 장편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과 유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문체와 독특한 유머 감각, 음식과 술에 대한 집착, 남자 주인공의 허무주의적이면서도 냉정한 성격은 헤밍웨이가 하루키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무기여 잘 있어라’의 종반부는 ‘양을 둘러싼 모험’의 종반부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주인공이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이국적인 추운 도시로 향하면서 등장인물의 숫자가 적어지며 고립된 일상에 갇히는 점, 소중한 이의 죽음, 그리고 홀로 남겨져 새로운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결말은 ‘무기여 잘 있어라’와 ‘양을 둘러싼 모험’의 공통된 요소입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무기여 잘 있어라’는 2012년 1월 3일 1판 1쇄 출간 이후 약 1년 만인 2013년 1월 30일에 출간된 1판 4쇄인데 오타가 눈에 띕니다. 414페이지의 ‘행운은 빈대’는 ‘행운을 빈대’의 오타로 보입니다. 423페이지 ‘난 충분이 쉬웠으니까’에서 ‘충분이’는 ‘충분히’가 되어야 옳습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 성불구여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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