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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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 - 한국식 온정주의 스릴러 영화

※ 본 포스팅은 ‘더 테러 라이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내에 이혼 당하고 TV 마감뉴스에서 라디오 시사프로로 밀려난 방송국 앵커 윤영화(하정우 분)는 생방송 도중 걸려온 테러 예고 전화를 무시합니다. 하지만 통화 직후 마포대교가 폭파되자 특종을 잡았다는 예감에 보도국장 차대은(이경영 분)에게 요구해 TV 속보를 진행하게 됩니다.

김병우 감독이 각본까지 맡은 ‘더 테러 라이브’는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테러범과 특종을 잡아 시청률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언론, 그리고 테러범이 사과를 요구하는 정부의 줄다리기를 묘사하는 스릴러입니다.

윤영화는 야심만만하지만 약점이 있는 주인공입니다. 동료 기자인 아내 이지수(김소진 분)의 특종을 가로채 이혼 당했으며 뇌물을 수수한 인물입니다. 테러 특종을 독점해 내리막 인생에서 반전해 다시 출세하고픈 욕심에 동료 라디오 PD(한성천 분)를 기만하고 테러에 관련된 정보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습니다. 윤영화의 이기심과 오만은 TV 속보를 앞두고 화장실에서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담배를 피우고 재를 세면대에 떠는 행위를 통해 암시됩니다. 스릴러의 공식이 그러하듯 주인공의 약점은 결정적인 순간에 만천하에 공개되어 주인공의 발목을 잡고 파멸로 이끕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입니다. 윤영화의 자신만만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모두들 윤영화를 이용하려고 할 뿐입니다. 차대은은 윤영화를 시청률 상승의 도구로, 정부는 윤영화를 시간 끌기의 도구로 활용할 뿐입니다. 차대은은 목표 시청률을 돌파하자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음에도 자축하며 퇴근하고 정부는 대통령이 사과할 것처럼 시간을 끌더니 윤영화를 희생양으로 선택합니다. 테러를 통제해 이용하고자 했던 윤영화는 테러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모두에게 이용당합니다.

오히려 테러범이야말로 가장 순진한 인물입니다. 마포대교 공사 중 사망한 인부들을 위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50대 테러범 박노규의 정체는 결과적으로 박노규의 아들 박신우(이다윗 분)로 밝혀집니다. 거액의 보상금을 방송국으로부터 일찌감치 받아내지만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요구야말로 본질적이며 초지일관인 것이 오히려 독특합니다. 영화 속 테러범은 외형적으로는 이데올로기나 종교와 같은 명분으로 무장하지만 실제로는 돈에 대한 욕심 때문임이 클라이맥스의 반전에 제시되는 것이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테러 라이브’의 먹이사슬은 테러범 박신우가 최하층에 위치하며 그 위에 윤영화, 그리고 최상층에 차대은과 정부가 위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테러가 잔혹한 것이 아니라 정치와 방송이 더욱 잔혹합니다. 테러범보다 더욱 냉혹한 악인들로 가득한 ‘더 테러 라이브’입니다.

연쇄 테러 소재, 현란한 카메라 워킹, 재빠른 편집, 그리고 실시간에 가까운 연출까지 미국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더 테러 라이브’이지만 설정, 정서, 각본은 매우 한국적입니다. 영남 사투리를 사용하는 경찰청장과 지하 벙커에 숨은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를 연상시킵니다.

진정한 특종과 속보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특종과 속보에 혈안이 된 영화 속 방송가의 모습에서 종편은 물론 공중파까지 함량 미달의 뉴스를 보도하는 한국 방송가의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경쟁 방송사로부터 생방송 도중에 전화가 걸려와 앵커의 뇌물 수수 여부를 추궁하는 장면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인상적입니다. 윤영화와 경찰청장의 귀에 폭탄이 장착되며 윤영화가 ‘귀에 폭탄’이라 메모를 남기는 설정은 이맘때의 무더위였던 1988년 8월 4일 MBC TV의 뉴스데스크 도중 20대 청년이 난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주장한 희대의 방송 사고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테러 라이브’는 정부의 무능과 황색 저널리즘을 비판합니다.

테러범이 불쌍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갚고 희생자들을 도우려는 가난한 효자라는 설정도 한국적입니다. 첫 번째 테러부터 희생자를 최소화하며 악역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감정 이입을 유도합니다. 종반에 모습을 드러내는 박신우 역의 이다윗의 외모 또한 테러범답지 않게 초라해 동정을 자아냅니다. 박신우가 경찰에 의해 사살된 이후 윤영화가 기폭장치로 테러를 완수해 국회의사당을 붕괴시키는 전개는 테러범에 대한 감정이입과 동시에 현 정치 상황에 대한 관객들의 불만에 편승하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주인공이 테러범에 감정을 이입하는 결말은 극히 한국적이며 온정적입니다. 마포대교에서 자식들을 먼저 구한 아버지가 죽는 장면과 그로 인해 테러범이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것 또한 온정적입니다. ‘더 테러 라이브’의 시나리오 판권이 할리우드에 판매되어 리메이크된다 해도 테러범의 정체와 결말은 상당히 달라지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아쉬운 점도 엿보입니다. 테러범은 예고편에 제시된 목소리부터 50대가 아닌 젊은 남성으로 들리지만 극중에서 50대로 단정 짓는 것은 방송인과 정부 관계자답지 않게 어설픈 것입니다. 박노규의 2년 전 사망에 대해 너무나 뒤늦게 파악된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긴박한 상황에서 순간순간의 결단에 내몰려 갈등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윤영화의 대사 중 ‘잠깐만’을 외치는 장면이 많습니다. 영화적으로 줄이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방송이 나가지 않는 상황이라지만 시청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욕설을 하는 앵커가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여전히 감정이 남아 있는 전처를 살해한 테러범에 윤영화가 동조하는 결말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더 테러 라이브’는 태생적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어느 나라 정부든 언론에서 생방송하고 있는 와중에 테러범과 협상하거나 테러범에게 사과를 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물밑에서 협상을 하거나 돈을 건네더라도 말입니다. 따라서 극중에서 대통령이 테러범에 사과하는 장면은 제시되지 않을 것이라 이미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야기할 정치적 논란과 부담에 대한 우려로 인해 대통령이 극중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대통령은 결말에서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정장을 입은 남성의 상반신과 목소리로만 등장합니다. 최소한 여성 대통령은 아닌 것입니다.

하정우의 귀에 장착되었다는 폭탄도 러닝 타임이 거의 채워지지 않는 이상 터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러닝 타임을 채우지 않은 상황에서 주인공을 죽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폭탄이 가짜라 실소를 자아내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테러범과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여 테러범이 폭탄을 제거하도록 동의한다든가 아니면 시간을 버는 사이 정부의 전문가가 폭탄을 제거하는 편이 긴장감을 증폭시켰을 것입니다.

실내에 국한된 단조로운 공간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를 메우는 하정우의 연기는 명불허전입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심리를 드러내며 영화의 긴박감을 배가시킵니다. 맛깔스럽게 먹는 연기로 유명한 하정우이지만 긴박한 영화다 보니 먹는 연기는 없습니다. 대신 최근 집중적으로 홍보되는 음료를 마시는 장면이 많습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Real 2013/08/11 00:22 #

    배우들의 연기력에 의한 극진행과 작품탄생이라는 느낌을 받네요.
  • 울랄라 2013/09/06 01:20 # 삭제

    전처를 죽도록한 테러범에 대한 감정이 보다 자신도 이 정부에 버림 받았다는게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시 합치길 원했던 살아있길 원했던 전처의 죽음에 허망하기도 하고..
    나름 엘리트 방송인의 자신의 이성적으로도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테러범이 누굴 죽이려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사과 한마디면 살 수 있었기에 더 정부에 배신감이 드는거죠.. 그도 어쩔 수 없는 사람

    비서실장의 전화에서 이미 예견된 이야기입니다만 정부를 위한 희생자가 필요합니다.
    테러범은 저격당해 죽었죠.. 그럼에도 저격은 계속됩니다. 게다가 마지막 무선에선 '보이는 즉시 사살'하라고 합니다.
    영화에선 누굴 죽이라고 대상은 안나옵니다만 테러범이 죽어서 추락한 상태인데 저런 무선이 계속된다면 윤영화겠지요.
    죽이고 테러범에게 죽였다고 정보조작쯤 간단한거구요..

    많은 부분이 허술하고 실소를 금치못하게 하지만 그냥 킬링타임용으론 그럭저럭.. 나름 폰부스 생각하고 기대했는데 1/10도 못하네요..
  • 12 2013/10/06 01:23 # 삭제

    확실히 극의 구성요소에서는 허술한 부분이 많이 보이긴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후 몇주동안 많은 관객을 모이게하고 극찬을 받은것은.. 분명 영화가 현 사회의 문제점을 잘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전 오히려 영화의 허술한 부분이 돌직구적인 사회비판 요소를 더 부각시켜줬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억지스럽고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인해 더 부각된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지적이 국민의 마음에 파고든것이 아닐까요? 관객이, 국민이 평소 사회에 품던 불평등에 대한 의아함과 불만을 단적으로 보여준 더 테러 라이브, 블록버스터급 영화도 아닌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만든 이 영화의 성공은 분명 우리 국민의 , 대한민국 사회의 요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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