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tomino.egloos.com

포토로그


메모장

KBReport 프로야구 필자/다음카카오 1boon/KBO 야매카툰

LG 트윈스 야구 전 경기 아프리카 생중계 http://afreecatv.com/tomino

사진, 글, 동영상 펌 금지합니다. 영화 포스터의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서 있습니다.

반말, 욕설, 비아냥, 협박 등의 악성 댓글은 삭제합니다. 비로그인 IP로 댓글 작성은 가능하지만 동일 IP로 닉네임을 여러 개 사용하는 '멀티 행위' 시 역시 삭제합니다.


설국열차 - 봉준호 영화 중 가장 아쉽다 영화

※ 본 포스팅은 ‘설국열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살포한 CW-7이 빙하기를 유발합니다. 인류의 유일한 피난처 설국열차가 달린지 17년, 피지배 계급의 젊은 리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열차의 보안설계자 민수(송강호 분)를 찾아내 열차의 지배자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가 살고 있는 지배 계급의 격렬한 저지를 극복하며 맨 앞 칸으로 전진합니다.

색채 대비처럼 선명한 주제 의식

자크 로브, 뱅자맹 르그랑, 장 마르크 로셰트의 만화를 바탕으로 봉준호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설국열차’는 해외 유명 배우들의 캐스팅 못지않게 400억이 넘는 천문학적인 제작비로 인해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베일을 벗은 ‘설국열차’는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열차가 지나가는 듯한 독특한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시작되는 ‘설국열차’의 열차 내부는 인간 세상의 압축판입니다. 다인종으로 구성되어 영어, 프랑스, 한국어, 일본어가 혼재됩니다. 비좁은 꼬리칸에 모여 사는 피지배 계급은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블록의 배급에만 의존하지만 열차 앞쪽의 지배 계급은 쾌적한 환경 속에서 온갖 종류의 고기와 생선을 먹고 의료 혜택을 받는 것은 물론 향락을 즐깁니다.

낭만적 제목과 달리 치열한 계급투쟁을 묘사하는 ‘설국열차’의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갈등, 소외된 약자, 무한히 달리는 열차의 요소는 ‘은하철도 999’와 닮았습니다. 혈투의 시작을 알리는 예카테리나 다리, 영구 동토, 추위, 유혈 혁명 등의 요소는 러시아를 떠올리게 합니다.

현상 유지를 강조하는 균형론을 앞세운 지배 계급과 변혁을 주장하는 갈등론으로 무장한 피지배 계급의 차이는 색채 대비를 통해서도 뚜렷이 드러납니다. 흰색은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극명한 삶의 격차를 야기한 눈을 상징합니다. 열차의 2인자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 분)의 의상과 녹음이 우거진 온실의 색상 또한 흰색입니다. 반면 검정색은 피지배 계급의 꼬질꼬질한 의상과 단백질블록 등 가난을 상징합니다. 몇 차례의 혁명이 실패로 끝난 뒤 필연적으로 수반된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중충한 검정색으로 가득한 피지배 계급과 달리 지배 계급의 의상과 생활공간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다채로운 원색으로 가득합니다.

파란색과 빨간색도 대비됩니다. 뒤늦게 정체를 드러내는 윌포드의 의상은 안정을 상징하는 파란색입니다. 반면 피지배 계급이 일으키는 혁명은 유혈, 즉 붉은 피로 물들어갑니다. 오랜 세월의 압제를 상징하는 긴 터널 속 결투에서 혁명의 붉은 횃불은 압제의 어둠을 깨뜨리는 불길이라는 점에서 노골적입니다. 횃불을 들고 오는 찬 역을 맡은 것은 한국인 배우인데 제작을 맡은 박찬욱 감독의 이름에서 착안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윌포드가 커티스에 전하는 탄환 편지에서도 ‘피(BLOOD)’가 언급됩니다.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의 권력을 빼앗아 열차를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열차의 굳게 닫힌 문으로 상징되는 폐쇄적 계급 구조를 완전히 무력화시킨 마지막 성냥불과 그로 인한 폭발 또한 붉은색입니다.

봉준호 영화 중 가장 아쉽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극단적인 대립이라는 사회 비판적이며 현실적인 소재는 이미 ‘괴물’에서도 어느 정도 암시된 바 있습니다. ‘설국열차’에는 ‘괴물’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송강호와 고아성이 부녀로 등장하는 것은 ‘괴물’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입니다. ‘설국열차’에서 빙하기라는 최악의 부작용을 유발한 가스 CW-7은 ‘괴물’에서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살포한 정체불명의 가스 ‘옐로 에이전트’를 떠올리게 합니다. 커티스와 에드가(제미이 벨 분)의 형제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나 민수와 요나(고아성 분), 타냐(옥타비아 스펜서 분)와 티미를 비롯해 부모와 자식 관계를 강조하는 것도 ‘괴물’이나 ‘마더’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족은 ‘플란다스의 개’ 이래 봉준호 감독의 장편 영화에서 일관된 소재이기도 합니다.

풍성한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설국열차’는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우선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선명하고 분위기가 무겁습니다. 여름 흥행을 노린 오락 영화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양갱과 비누를 합친 듯한 단백질블록, 번역기의 이상한 목소리와 말투, 계란과 같은 대머리 사내(토마스 레마르퀴 분)의 계란 배급과 같이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이 엿보이는 설정도 존재하지만 선명한 주제의식에 가립니다.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이 거액의 제작비와 화려한 캐스팅, 그리고 이념적 주제의식에 짓눌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양극화가 심한 한국 사회에서 지배 계급인 재벌의 대자본을 끌어와 지배 계급을 타도하는 혁명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그것이 영화 산업의 본질이라 해도 말입니다.

액션이 강한 편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손도끼로 맞서는 집단 난투극 장면도 있지만 봉준호 감독이라면 기대할 수 있는 새로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어의 강도도 높습니다. 서두에서 앤드류(이완 브렘너 분)의 팔을 냉동시켜 산산조각 내는 신체 훼손 장면은 생체 실험에 나섰던 일본군 731부대를 고발한 영화로 1988년 작 ‘마루타’를 연상시킵니다. 도끼와 칼 등 다양한 무기를 앞세운 폭력도 영화적 미학을 추구하기보다 계급 혁명에 걸맞게 날것에 가깝게 연출했습니다. 직접적인 묘사는 피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결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수준의 고어는 아니라 애매합니다. 어떻게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닌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을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차라리 고어의 수준을 올리고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인육 소재 또한 다소 부담스럽습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식량이 부족하다면 자연스레 대안은 인육밖에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백질블록의 원료가 잡아간 아이들이 아닌지, 지배 계급이 즐겨 먹으며 피지배 계급이 선망하는 스테이크 역시 인육이 아닌지 상상하게 합니다. 단백질블록은 원료가 바퀴벌레이며 스테이크 고기의 정체는 거대한 고기 창고를 통해 규명되지만 열차가 17년 전 처음 운행되기 시작했을 때 커티스가 인육을 먹었음을 민수에게 고백합니다. 맨 앞 칸에서 윌포드가 커티스를 맞이하며 구워 먹는 스테이크 또한 잡아간 아이들로 만든 것이 아닌지 상상하도록 합니다. 수족관과 초밥을 통해 개체수의 균형을 강조해 피지배 계급의 숙청과 인육 섭취를 바탕으로 인간의 개체수를 조절한 것은 아닌지 짐작하도록 합니다. 도축된 닭과 소가 무수히 매달린 고기 창고도 보이지만 그 많은 닭과 소가 과연 어디서 어떻게 키워진 것인지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것은 설정상의 의문으로 남습니다.

CG가 어색한 것도 약점입니다. 열차 외부를 바깥에서 잡는 시점과 열차 내부에서 바깥의 설국을 바라보는 시점의 CG가 부자연스럽습니다. 민수가 언급하려다 입을 닫았으며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북극곰도 어색합니다. ‘괴물’의 클라이맥스에서 괴물에 불이 붙는 장면의 CG가 어색했던 것을 연상시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윌포드의 대사가 장황한 것도 약점입니다. 열차의 원리에 대한 설명에 민수의 결투가 삽입되어 교차 편집되지만 호흡이 깁니다. 윌포드의 설명적인 대사를 보다 압축했더라면 나았을 것입니다.

결말 또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열차가 폭발하며 커티스와 민수의 희생에 의해 살아남은 요나와 티미가 빙하기가 약화되기 시작한 설원의 대지에 발을 내딛지만 그것이 125분 러닝 타임 내내 눌려있던 관객들에게 탁 트인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제시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흥행 기대 쉽지 않은 이유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배우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의 인지도, 그리고 멀티플렉스 CGV를 소유한 CJ의 배급력과 마케팅을 통해 어느 정도 관객을 모을 수는 있겠지만 ‘괴물’과 같이 1000만 관객을 끌어들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작 중 가장 많은 제작비에 가장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지만 가장 실망스러운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관객들에게는 무엇을 앞세워 호소할지 의문입니다. 유머와 액션 등 오락성이 부족한 데다 매우 무거우며 그렇다고 압도적인 작품성을 지녔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단편 ‘흔들리는 도쿄’를 제외하면 봉준호 감독의 장편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로맨스는 ‘설국열차’에서도 결여되어 있습니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눈이 맞는 남녀가 과연 없는 것인지를 감안하면 로맨스의 결여는 흥행 요소를 놓침과 동시에 비현실적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임신한 여교사(앨리슨 필 분)가 총기를 난사해 사람을 살해하다 칼에 맞아죽는 전개 또한 임신부에 대한 할리우드의 금기를 깨뜨리는 것이라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월포드의 회유를 거부한 커티스가 그토록 잃고 싶어 하던 손을 잃고 민수와 함께 목숨까지 버리면서 혁명을 완수해 다음 세대에 기차 밖 세상을 물려준다는 점에서는 할리우드 해피 엔딩에 가깝지만 미국의 관객들은 ‘설국열차’를 SF 설정을 앞세운 프로파간다 계급 영화로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4월 사망한 마거릿 대처를 연상시키는 틸다 스윈튼의 호연을 비롯해 캐스팅은 화려하지만 그렇다고 티켓 파워가 뛰어난 스타가 출연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을 수호하는 캡틴 아메리카가 약자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는 혁명가로 변신했다는 점이 흥미를 유발할 수 있지만 크리스 에반스는 티켓 파워를 지닌 톱스타로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잘 생긴 얼굴 또한 수염 분장과 모자 등으로 가렸을 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꼬질꼬질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송강호가 영화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것도 아쉽습니다. 극중에서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민수는 번역기에 의존합니다. 번역기가 처음 제시되는 장면에서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후에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으로 전락합니다. 영화 종반 맨 앞 칸 입구에서 아예 번역기가 사라진 채 커티스와 민수가 각자의 모국어로 나누는 대화는 비현실적입니다. 영화가 시작된 지 30분 이후에 처음 등장하는 송강호의 등장 분량이 많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차라리 송강호에게 서툴게라도 영어 대사를 사용하도록 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인 배우가 닫힌 문을 여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등장인물로 분했다는 점에서는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랜달 덕 김이 분한 키메이커를 연상시킵니다.

반면 고아성은 다국적 배우들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녹아듭니다. 영어 연기도 자연스럽습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고래 뱃속에서 살아나온 예언자 요나(Yona)를 모티브로 한 극중 이름에서 앞일을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고아성이 답답한 열차 밖으로 나오는 결말의 영광을 차지하리라는 것은 진작 암시된 것입니다. 젊은 한국인 여성이 ‘Yona’로 작명된 것에 대해 이름이 비슷한 김연아(Kim Yuna)를 떠올리는 서구의 관객도 있을 듯합니다.

플란다스의 개 - 재평가받아야 할 걸작 코미디
살인의 추억 - 범인 없는 걸작 토종 스릴러
괴물 - 진짜 괴물은 무능한 한국 사회
도쿄! - 소외된 사람들의 도시, 도쿄
마더 - 봉준호, 한국 엄마들의 책임을 묻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Blueman 2013/08/03 15:40 #

    좋은 평을 내주셨습니다.
    저도 보고오면서 영화속 여러요소에 몰입했긴했지만 솔직히 결말을 보며 의아해했거든요
  • 하하 2013/08/04 02:46 # 삭제

    영화를 보고 나서 제 아쉬웠던 감정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시원하게 알려주시는군요. 좋은 평입니다.
  • ㅁㄴㅇㅁ 2013/08/15 12:54 # 삭제

    인물관계에 대한 오류가 있네요. 다시 한번 보세요.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