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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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 성불구여도 괜찮아

※ 본 포스팅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1926년 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매력적인 여성 브렛을 중심으로 기자 제이크, 소설 한 편을 쓴 로버트, 그리고 브렛과의 결혼을 앞둔 마이크 등 남자들의 뒤얽힌 연애 행각을 묘사합니다. 도회적인 프랑스 파리에서 산페르민 축제가 벌어지는 스페인 팜플로나로 공간적 배경이 이동하는 와중에 등장인물들은 흥청망청 향락에 몰두합니다.

주인공 제이크는 세계 1차대전 중 이탈리아 전선에서 성기에 부상을 입고 성불구가 된 인물로 종군 간호사 브렛과 사랑에 빠집니다. 성불구가 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기자 신분까지 제이크는 작자 헤밍웨이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파리 생활 및 팜플로나로의 여행 또한 헤밍웨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온갖 종류의 술에 대한 꼼꼼한 묘사로 독자의 음주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이지만 막상 음식에 대한 묘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단순히 먹었다고만 언급된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섹스를 할 수 없기에 제이크는 욕구 불만을 지닐 수밖에 없지만 의연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의 고민을 남에게 털어놓지 않으며 나약한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신적 강인함과 절제를 추구합니다. 2부 14장 정도를 제외하면 자신의 본심을 독자들에게조차 좀처럼 털어놓지 않습니다. 작품 전체의 분량을 감안하면 제이크가 속내를 드러내는 부분은 미미합니다. 독자는 제이크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한 하드보일드 문체와 제이크의 정신적인 강인함은 상통합니다.

제이크는 투우, 낚시와 같은 남성적인 취미를 지녔지만 동시에 책과 신문을 몸에서 떼지 않는 섬세한 취향을 지닌 교양인입니다. 미군에 복무해 참전했지만 파리에 거주하며 모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점에서 국외자라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개성을 지닌 인물입니다.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브렛과 그녀에 얽히는 남자들을 관찰하는 화자인 제이크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시선이 냉정하며 객관적입니다. 브렛을 사랑하면서도 결코 한 남자에 정착하지 못하는 방탕함이라는 브렛의 치명적인 약점을 숨기지 않고 담담히 술회합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번역자 김욱동은 작품 해설에서 헤밍웨이와 교류했던 동시대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 닉에 제이크를 비견합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이미 몇 차례 영화화된 바 있지만 제이크는 바즈 루어만에 의해 최근 영화화된 ‘위대한 개츠비’에서 닉을 연기했던 토비 맥과이어의 이미지와 흡사합니다. 제이크와 닉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글을 쓰며 향락에 몰두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위대한 개츠비’는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진한 허무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따지고 보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위대한 개츠비’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짧은 호흡의 속도감 넘치는 대화, 간결한 문체, 도시적 정서, 여행 및 향락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닮았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한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서로 사랑하면서도 섹스가 불가능한 제이크와 브렛의 관계는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와 유사합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유례가 없었던 세계대전의 참화 이후 기존의 윤리와 가치가 급격히 무너지자 새로운 가치관을 찾지 못한 채 향락에 몰두한 젊은 세대를 묘사합니다. 그들은 ‘길 잃은 세대’, ‘잃어버린 세대’ 혹은 ‘상실의 세대’라 불렸는데 ‘노르웨이의 숲’에서 묘사하는 전공투 이후의 허무감에 사로잡힌 일본의 단카이 세대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이 국내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무관하지 않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세련미를 자랑했지만 그보다 반세기 이상 이전에 원조가 존재했던 셈입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도입부로부터 여주인공 브렛이 등장해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기까지 변죽을 울리며 뜸을 들이는 작법은 21세기의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세련된 것입니다.

제이크의 주변 인물들은 긍정적인 인물과 부정적인 인물로 뚜렷이 구분됩니다. 제이크의 절친한 친구 빌은 브렛을 중심으로 한 복잡한 치정 관계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방관자로 긍정적인 인물입니다. 다른 인물들의 성적 방종에 편승하지 않는 원칙론자입니다.

19세의 잘 생긴 투우사 로메로는 다른 투우사들이 비견할 수 없는 완벽한 기술을 지닌 남성입니다. 제이크는 자신의 욕구 불만을 남성적인 투우 관람과 완벽한 투우사 로메로와의 친교를 통해 해소하려 합니다. 제이크의 로메로에 대한 선망은 로메로가 브렛과 동침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전개를 통해 입증됩니다. 때문에 제이크는 ‘뚜쟁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이크가 거세된 소로 비유된다는 점입니다. 투우를 앞둔 거친 소들은 성미를 죽이기 위해 거세된 소들 사이에 지내게 됩니다. 마치 로버트, 마이크와 같이 브렛을 향해 치받으며 강렬한 성욕을 드러내는 사내들 사이에서 제이크가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1부에서 제이크가 매춘부 조젯에 초연할 수 있는 것도 브렛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불구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이크, 빌과 달리 로버트와 마이크, 브렛은 발정 난 동물처럼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인물들입니다. 로버트는 소설 한 편을 쓴 뒤에 무엇을 집필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무능한 인물인데다 눈치마저 없는 폭력적인 바람둥이로 등장합니다. 마이크는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빚을 얻어 사치스런 삶을 향유하는 사내입니다. 로버트가 브렛에 접근하는 것은 용납 못하지만 로메로가 브렛과 동침하는 것은 인정하는 기묘한 정신세계를 지녔습니다.

브렛은 30대 중반으로 이혼이 마무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마이크와의 결혼을 약속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고 로메로와 야반도주하는 극도의 성적 방종을 노출하는 여성입니다. 시쳇말로 브렛은 ‘어장관리녀’, 마이크는 어리석은 물주로 두 사람은 한심스러운 커플입니다. 그래서인지 브렛의 주변에는 친구라 부를 있는 여성이 없으며 중성적 존재라 할 수 있는 제이크만이 유일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입니다. 브렛은 외로운 여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길 잃은 세대’가 희망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낙천적 제목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성불구이며 향락에만 몰두하고 동일한 잘못을 반복해도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으며 전진을 통해 조금씩 정신적으로 성장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가장 부정적인 인물 브렛이 로메로가 자신의 곁을 떠나며 짧은 사랑이 마무리되자 결말에서 ‘난 그런 화냥년이 되지 않을래’라며 제이크 앞에서 결심합니다. 브렛의 결심이 지켜질지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최소한 결심을 했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 브렛은 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욱동이 번역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158페이지의 ‘열 받게 하지마’는 의문을 남기는 번역입니다. ‘화나다’는 의미의 ‘열 받다’는 1980년대에 탄생한 신조어이기 때문입니다. 표준어 여부를 떠나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개봉을 앞두고 국내 번역본을 둘러싼 논쟁에서 김욱동이 취한 보수적 태도를 감안하면 부합되지 않는 번역입니다.

234페이지의 ‘리아우-리아루’는 236페이지와 237페이지에 번역된 바와 같이 ‘리아우-리아우’가 정확한 번역으로 보입니다. 279페이지의 ‘그런 순 없지’는 ‘그럴 순 없지’가 되어야 옳습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JHALOFF 2013/07/31 16:24 #

    노인과 바다 같은 소설보다 헤밍웨이의 걸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성불구 자체는 헤밍웨이의 그곳이 매우 작아 컴플렉스를 느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부분까지 헤밍웨이 본인과 닮은 캐릭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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