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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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 섹스 중독조차 우아하다 영화

※ 본 포스팅은 ‘셰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뉴욕에 거주하는 30대 독신 직장인 브랜든(마이클 패스밴더 분)은 외형적으로는 매끄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섹스에 탐닉하는 나날을 보냅니다. 어느 날 떠돌이 가수인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 분)가 찾아와 브랜든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브랜든은 씨씨를 달갑지 않게 여깁니다.

대배우 스티브 맥퀸과 동명이인인 영국 출신의 1969년생 감독 스티브 맥퀸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2011년 작 ‘셰임(Shame)’은 번듯한 외면과 달리 고독과 공허에 시달려 섹스에 집착하는 여피의 내면을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묘사합니다.

주인공 브랜든은 섹스에 탐닉해 포르노와 화상 섹스를 즐기며 매춘부를 집에 부르는 것도 모자라 마약을 흡입하고 동성 섹스와 2:1 섹스까지 감행합니다. 설탕을 듬뿍 넣은 커피와 카페인 음료를 습관적으로 마시는 것으로 섹스 중독이 암시되는 브랜든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 직장 화장실에서조차 자위행위를 반복합니다. 브랜든은 섹스 중독을 혐오해 이겨내려 하면서도 상담 등의 치료 요법은 활용하지 않고 홀로 해결하려는 이중적 모습을 보입니다. 브랜든이 결혼을 거부하는 것도 섹스 중독이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든의 첫 번째 부끄러움(shame)이 바로 섹스 중독입니다.

브랜든의 두 번째 부끄러움(shame)은 여동생 씨씨입니다. 독신남성 답지 않게 아파트를 깔끔하게 정리 정돈한 브랜든과 달리 씨씨는 집안을 어지럽힙니다. 전문직에 종사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아파트를 소유한 브랜든과 달리 씨씨는 벌이가 시원치 않으며 머물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씨씨는 브랜든의 상사이자 유부남인 데이빗(제임스 뱃지 데일 분)을 브랜든의 아파트로 들여 충동적으로 섹스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브랜든의 씨씨에 대한 감정이 단순한 부끄러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씨씨는 브랜든의 스토커처럼 제시되며 제멋대로 브랜든의 집에 들어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목욕하던 도중에 브랜든과 재회합니다. 오빠가 여동생의 알몸을 보는 것으로 여동생이 처음 등장하는 것부터 의미심장합니다. 여동생이 거실 소파에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빠는 침실에서 노트북으로 소리가 나도록 한 채 포르노를 즐깁니다. 브랜든이 욕실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을 씨씨가 발견하기도 합니다. 남매가 피장파장이 된 것입니다.

브랜든의 씨씨에 대한 미묘한 감정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장면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씨씨가 데이빗과 섹스를 나눌 때입니다. 브랜든은 불쾌감과 초조함을 참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데 단순히 자신의 깔끔한 아파트가 엉망이 되었다는 수준의 감정이 아니라 마치 연인을 다른 남자에 빼앗긴 듯한 복잡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즉 브랜든의 씨씨에 대한 근친상간의 감정이 암시되는 것입니다.

브랜든은 씨씨에게 유부남인 데이빗과의 동침을 나무라며 윤리적 원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지만 정작 결말에서는 브랜든이 원칙을 지킬 수 있을지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서두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여성(루시 월터스 분)과 결말에서 재회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손가락에는 유부녀이거나 약혼자가 있음을 암시하는 반지가 끼워져 있습니다. 브랜든의 선택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제시하지 않고 여운을 남긴 채 엔드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브랜든 역의 마이클 패스밴더와 씨씨 역의 캐리 멀리건은 헤어 누드까지 불사하는 과감한 노출 연기를 선보입니다. 하지만 여성인 캐리 멀리건보다는 남성인 마이클 패스밴더의 노출이 보다 인상적입니다. 마이클 패스밴더의 몸이 그만큼 강렬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캐리 멀리건은 ‘드라이브’에서 발산한 매력을 ‘셰임’의 노출을 통해 반감시킵니다. 씨씨가 첫 등장하는 장면이 욕실인 것은 불안정한 심리 상태의 씨씨가 욕실에서 자살을 기도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과감한 노출 장면을 비롯해 다양한 섹스 장면이 제시되지만 적나라하면서도 결코 추하지 않고 에로틱하다기보다 건조하며 사실적입니다. 진지하게 만나려했던 직장 동료 매리언(니콜 비하리에 분)과 브랜든은 전망 좋은 호텔에서 대낮에 섹스하려 했다 발기 불능으로 실패합니다. 매리언이 혼자 떠나자 같은 장소에서 매춘부를 불러 격렬하게 섹스한 뒤 늦은 저녁 어두워진 호텔방에 홀로 남겨진 브랜든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일련의 전개는 쓸쓸함의 극치를 자아냅니다.

클라이맥스에서 극도의 허무감에 빠져 2:1 섹스를 할 때의 마이클 패스밴더의 표정 연기는 가히 압권입니다. 등장인물이 적고 서사 구조가 단순한 ‘셰임’이 영화적으로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마이클 패스밴더의 연기력에서 비롯된 세심한 심리 묘사 덕분입니다. 마이클 패스밴더의 열연으로 인해 LP로 음악 감상을 즐기는 섬세한 취향의 브랜든은 생명력과 동시에 설득력을 확보합니다. 섹스에 대한 갈망조차도 추하기보다 우아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셰임’의 또 다른 주인공은 대도시 뉴욕입니다. 차가운 톤의 영상으로 포착된 매력적인 대도시 뉴욕은 브랜든의 고독과 갈망을 부채질합니다.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브랜든은 낯선 이와의 충동적 섹스도 감행할 수 있습니다. 캐리 멀리건이 직접 부르는 ‘뉴욕, 뉴욕’은 ‘셰임’의 또 다른 주인공이 뉴욕임을 입증합니다. ‘뉴욕, 뉴욕’과 함께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 다양한 음악도 삽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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