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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츠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

※ 본 포스팅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츠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신 회사원 츠쿠루는 2살 연상의 여자친구 사라에게 고교 시절의 모임에 대해 술회합니다. 남학생 아카와 아오, 여학생 시로와 쿠로, 그리고 츠쿠루를 포함한 5명의 동급생은 봉사 활동으로 시작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모임으로 발전합니다. 대학 진학 이후에도 츠쿠루가 고향 나고야를 지속적으로 찾아 모임은 한동안 유지되지만 대학 2학년 시절 갑자기 츠쿠루는 이유도 모른 채 친구들로부터 외면을 당합니다. 충격을 받은 츠쿠루는 한때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음을 사라에게 털어놓습니다. 사라는 츠쿠루가 옛 친구들과 만나 외면당했던 이유를 밝히고 상처를 치유할 것을 권유합니다.

긴 제목의 의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츠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이하 ‘다자키 츠쿠루’)는 30대 중반의 독신 남성이 과거 절친했던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해 입은 상처를 되짚어 나가며 치유해가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제목에서 주인공 츠쿠루에 대한 수식어 ‘색채가 없는’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고교 시절 모임의 네 명의 친구들은 공교롭게도 성(姓)에 색상을 의미하는 한자가 포함되어 있으며 애칭도 색상을 따서 불립니다.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쿠로(黑)입니다. 대학 시절 츠쿠루의 유일한 친구였던 2살 연하 남학생 또한 회색을 의미하는 하이다(灰田)입니다. 츠쿠루는 이름에 색상을 의미하는 한자가 자신만 없다는 사실에 콤플렉스를 느낍니다.

둘째, 다른 친구들은 분명한 색채, 즉 개성을 지녔습니다. 지적인 아카, 스포츠맨 아오, 여성적인 시로, 활달한 쿠로는 물론이고 하이다 또한 매우 관념적입니다. 그에 반해 츠쿠루는 자신만이 개성을 지니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츠쿠루의 부정적 자아 정체성은 옛 친구들과의 16년 만의 재회를 통해 해소됩니다. 츠쿠루는 자신이 항상 차분하고 주관을 견지하며 외모도 잘 생겼다고 주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인식과 주변의 평가가 달랐음을 알게 되며 주인공이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은 흔한 줄거리입니다. 츠쿠루의 성이 ‘多崎’로 ‘많을 多’자가 포함된 것부터 결코 츠쿠루가 몰개성하지 않고 오히려 풍부한 개성을 지녔음을 암시한 것입니다.

‘만들다’는 의미의 동사 ‘つくる’라는 이름처럼 철도역을 건설하고 개수하는 일에 종사하는 츠쿠루는 스스로 규정한 것처럼 복잡한 것과는 거리가 먼 아날로그적 인간입니다. 스마트폰, PC,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고독을 달래는 몇 없는 취미는 철도역에서 열차와 승객을 구경하는 일과 LP 음악 감상, 그리고 수영입니다. 철도에는 정통하지만 철도 사진을 촬영하거나 철도 모형을 제작 및 수집하는 취미도 없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철도역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이를 전공하기 위해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고 철도 회사에 취직해 진로 목표를 달성했기에 일본적인 철도 오타쿠에 언뜻 가까워 보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철도 오타쿠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제목의 ‘그의 순례의 해’는 츠쿠루가 16년 전 자신이 모임에서 쫓겨난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사망한 시로를 제외하고 나고야의 아오와 아카, 그리고 핀란드로 이민한 쿠로를 만나기 위한 여정을 의미합니다. 츠쿠루의 여정을 상징하는 곡은 옛 모임에서 시로가 피아노로 연주했으며 츠쿠루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 하이다와 함께 LP를 통해 반복 감상한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입니다. 츠쿠루는 나고야와 핀란드로 이어지는 여정을 통해 옛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인생과 사랑을 향해 한 걸음 전진하게 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기 복제

‘다자키 츠쿠루’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전작과의 공통적인 요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아날로그적이고 고독하며 과묵하고 깔끔한 일상을 영위하는 독신 남성 츠쿠루는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래 하루키 소설의 전형적인 주인공입니다. 하루키 본인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인공이 수영을 즐기며 수영장이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되는 것은 ‘태엽 감는 새’와 동일합니다. 3인칭 시점이지만 철저히 츠쿠루의 관점에만 의존해 실질적으로는 1인칭과 다를 바 없다는 점도 같습니다.

츠쿠루는 모임에서 추방되며 혹독한 시련을 거쳐 소년에서 성인으로 강제적인 성장을 경험합니다. 청춘의 혹독한 성장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비롯한 청춘 4부작 및 ‘노르웨이의 숲’ 등과 동일한 소재입니다. 학창 시절에 대한 그리움, 등장인물의 갑작스런 죽음 및 자살의 요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 졸려 살해당한 젊은 여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청춘 4부작의 완결편 ‘댄스 댄스 댄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라와 쿠로 등 등장인물들이 대화 중 자신의 손을 유심히 바라보는 강박적 습관을 지닌 것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쥐와 동일합니다.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익숙한 핀란드인 쿠로의 남편은 ‘댄스 댄스 댄스’의 하이쿠를 영어로 번역하는 베트남전 참전군인 딕 노스를 연상시킵니다. 백인 남성이 일본인 여성과 동거한다는 점에서도 동일합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관념적이면서도 육체적이기에 섹스에 대한 욕망과 행위 자체를 솔직 담백하게 풀어내는 것 또한 하루키 소설을 관통하는 공통적 요소입니다. 강렬한 성욕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이유로 인해 원만한 섹스에 이르지 못해 고뇌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츠쿠루는 꿈속에서 쿠로 및 시로와 2:1로 섹스를 나누고 하이다가 개입된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환상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가 나오코의 벗은 몸을 바라보는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장면과 상통합니다.

츠쿠루가 하이다에게 연정과 비슷한 기묘한 감정을 느끼며 성적인 꿈을 꾸고 스스로를 동성애자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은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관통하고 ‘노르웨이의 숲’에서 레이코를 비롯한 여성 등장인물들이 지닌 동성애적 요소와 동일합니다. 츠쿠루의 4명의 옛 친구는 남성의 경우 원색을, 여성의 경우 무채색의 이름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하이다는 츠쿠루의 성적인 꿈에 등장하는 두 여성을 상징하는 색상인 흑과 백의 혼합색인 회색을 상징색으로 지녔습니다. 하이다 또한 츠쿠루의 성적 대상임을 암시합니다.

결말에서 츠쿠루는 죽은 시로에 대한 살풀이라도 하듯 쿠로와 두 번에 걸쳐 육감적으로 포옹합니다. ‘노르웨이의 숲’의 결말에서 죽은 나오코에 대한 살풀이로 와타나베와 레이코가 섹스를 나누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단지 쿠로가 유부녀이며 남편 및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쿠로의 별장을 츠쿠루가 찾아갔기에 섹스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결혼해 두 명의 딸을 낳고 도자기를 제작하는 등 정력적으로 살고 있는 쿠로는 죽음의 색 검정색을 상징색으로 하며 성폭행 당하고 젊어서 요절하는 평지풍파를 겪은 불행한 시로는 순백의 흰색을 상징색으로 하는 역설적인 색상 배치가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진실을 찾기 위해 핀란드를 여행하는 것은 ‘양을 쫓는 모험’에서 주인공이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 주인공 ‘나’는 홋카이도를 일본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이국적인 공간처럼 묘사하는데 ‘다자키 츠쿠루’에서 핀란드는 타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이질적인 공간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묘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스모폴리탄적 성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홋카이도와 핀란드 모두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깊은 숲 속의 별장이 중요한 공간이 된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클래식과 팝 음악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도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래 전작들과 동일합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는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버전으로 소개됩니다. 팝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너무나 유명한 2곡이 언급됩니다. 나고야의 아오가 휴대전화 벨소리로 활용하는 ‘Viva Lae Vegas’와 헬싱키의 피자집에서 노인이 연주하는 ‘Don't be cruel’입니다.

특정 브랜드 이름을 작중에 언급하고 평가해 매우 구체적이며 자본주의적인 것도 여전합니다. 토요타의 렉서스, 폭스바겐의 골프, 르노의 밴 등 다양한 차량들이 언급되는 것은 물론 츠쿠루의 아버지의 유품인 태그 호이어 시계에 대한 세밀한 평가도 곁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자본주의적 사업을 벌이고 있는 아카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삽입해 하루키가 자본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는 의심으로부터 벗어나려 합니다.

오컬트적인 요소 또한 전작들과의 공통점입니다. 시로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는데 한편으로는 츠쿠루의 의지가 만들어낸 악령이 아닌가 하는 암시를 삽입합니다. 악령의 존재와 유체 이탈은 ‘태엽 감는 새’, ‘1Q84’ 등에 등장한 바 있습니다.

종반에서 신주쿠 역의 승강장에서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 위험성을 지적하며 1995년 옴 진리교의 사린가스 테러를 언급하며 우려하는 것은 하루키의 논픽션 ‘언더그라운드’와 후속작 ‘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2’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익숙한 전작들의 요소를 반복하는 것이 기존의 독자들에게는 반가움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무라카미 하루키로부터 새로움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자기 복제’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무수한 의문들’ 벌여놓고 수습 못 했다

더욱 아쉬운 것은 ‘다자키 츠쿠루’가 무수한 의문과 서사의 구멍을 남긴 채 미진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시로를 성폭행한 이는 누구인지, 그리고 살해한 이는 누구인지 의문을 자아내지만 규명하지 않습니다. 하루키의 장편 소설들은 기본적으로 추리 소설적 성격을 지녀왔습니다. ‘다자키 츠쿠루’에서도 마치 시로의 성폭행범과 살해범의 정체와 츠쿠루의 무의식과의 연관성을 밝혀낼 것처럼 바람만 잡다가 전혀 규명하지 않고 쿠로의 언급처럼 ‘악령’이라고 손쉽게 마무리하는 것은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벌여놓기만 하고 수습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에 앞서 사라는 츠쿠루를 위해 옛 친구들의 정보를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알아내 알려주는데 시로의 사망 여부는 알면서도 살해되었다는 사실은 몰랐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젊은 독신 여성이 자택에서 살해되어 아직 범인도 잡히지 않은 미제 사건을 남았다면 그녀에 관해 검색했던 포털 사이트 첫 페이지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쿠로의 핀란드 자택 주소와 전화번호가 나왔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에 무수한 개인 정보가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집 주소와 전화번호와 같이 가장 구체적이며 내밀한 개인 정보가 공개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것도 일본도 아닌 유럽의 핀란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츠쿠루와 마찬가지로 아날로그적인 인간이기에 인터넷을 멀리한 까닭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여행사 직원으로 츠쿠루를 대신해 정보원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여행 수속까지 맡아서 처리하는 여자친구 사라의 존재부터 작위적입니다. 아날로그적이며 소극적인 인간인 츠쿠루가 인터넷을 검색해 옛 친구들의 정보를 캐고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매끄럽게 실행에 옮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므로 여자친구로 하여금 대신하게 한 것인데 하루키 소설 특유의 작위적 성격이 극대화된 것 같아 매우 어색합니다.

츠쿠루가 사라에게 프로포즈해 과연 성공했는지 여부를 다루지 않고 작품을 종결지은 것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며 여운을 남기려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무책임한 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 사라가 손을 잡은 채 해맑은 웃음을 보인 중년 남성이 과연 누구인지 의문만 증폭시킨 채 규명하지 않은 것도 궁금증만 잔뜩 유발합니다.

사실 츠쿠루가 친구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된 진정한 이유도 궁금증을 유발했던 것에 비하면 맥 빠지며 실망스럽습니다. 아무리 하루키 소설이 기본적으로 절실하게 찾던 대상이 찾고 나면 변질된 것을 확인하는 ‘Seek & Find’의 성격을 지녔다 해도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 츠쿠루는 애꿎은 희생양이 된 셈인데 희생양을 만든 가해자인 친구들 중 16년 간 아무도 츠쿠루에게 해명한 이가 없으며 츠쿠루 또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외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살까지 기도하려 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친구들이 츠쿠루에게 해명하고자 했다면 편지와 같은 간접적인 수단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츠쿠루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자초지종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기에 더욱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하이다가 왜 갑자기 츠쿠루의 곁을 떠난 것인지 역시 규명되지 않습니다. 츠쿠루의 환상에 등장한 하이다가 꿈이 아니라 현실에 나타난 것인지, 츠쿠루의 환상과 하이다의 갑작스런 실종과 연관된 것인지, 그리고 하이다와 시로의 죽음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의문만 증폭시킬 뿐입니다.

츠쿠루와 쿠로의 만남이 지나치게 장황하게 묘사된 것도 아쉽습니다. 중반까지만 해도 츠쿠루가 왜 모임으로부터 축출되었는지 이유를 밝혀나가는 과정이라 속도감이 넘쳤지만 츠쿠루가 쿠로를 만나는 별장 장면은 이미 이전에 제시된 정보와 츠쿠루의 사념들의 반복에 불과함에도 매우 장황하게 묘사되어 지루합니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며 츠쿠루와 쿠로가 16년 묵은 옛 상처를 치유하는 마지막 단계이기는 하지만 질질 끄는 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태엽 감는 새’와 ‘1Q84’가 그랬듯이 작중에서 후속편을 언급하지 않고 나중에 발간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다자키 츠쿠루’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기 복제와 허술한 서사, 그리고 완결성 부족의 약점이 두드러진 실망스러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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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권, 2권 총력 리뷰 - 도그마의 안티테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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