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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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리비언 - 독창성과 개연성 ‘망각’한 모방작 영화

※ 본 포스팅은 ‘오블리비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약탈자’에 의해 달이 파괴되고 지구가 핵전쟁을 치러 인류가 토성의 위성 타이탄으로 떠난 서기 2077년. 요원 잭(탐 크루즈 분)은 파트너 빅토리아(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분)와 동거하며 우주정거장 ‘테트’의 관리 하에 지구의 물을 에너지로 바꾸는 거대 장치를 약탈자들로부터 지키는 공격 머신 ‘드론’의 수리 임무에 종사합니다. 약탈자들에게 생포될 뻔한 위기를 넘긴 잭은 지구로 추락한 우주 승무원 줄리아(올가 쿠릴렌코 분)를 구출합니다.

2010년 작 ‘트론 새로운 시작’을 연출한 조셉 코신스키가 자신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오블리비언(Oblivion)’은 ‘망각’을 의미하는 제목 그대로 과거의 기억을 소거당한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고 숨겨진 인류 역사의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전 SF 소설을 읽는 듯 ‘오블리비언’의 설정과 서사는 기시감에 시달리는 주인공 잭처럼 기존의 유명 SF 영화들에서 익숙한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주인공이 핵전쟁 이후의 숨겨진 인류 역사를 파헤치다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서사의 얼개는 1968년 작 ‘혹성탈출’과 동일합니다. 우주선 내부에서 장기 수면을 통해 줄리아가 시간을 넘어 나타난 것이나 방문이 금지된 구역에서 진실의 단서를 찾는 것 등의 요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혹성탈출’의 가장 충격적인 결말이자 반전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 든 오른손을 잭과 드론의 추격전에 삽입하며 조셉 코신스키는 ‘오블리비언’이 ‘혹성탈출’의 오마주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잭과 드론의 쫓고 쫓기는 협곡의 추격전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협’ 중반부의 포드 추격전을 연상시킵니다.

기계에 의한 인류의 지배와 무균질의 백색 공간과 소품, 그리고 제복 등은 역시 1968년 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줄리아가 탑승했던 우주선의 이름이 ‘오디세이’인 것 또한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꿈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며 자아정체성에 집착하던 주인공이 결과적으로 클론이었음이 밝혀지는 것은 ‘블레이드 러너’를, 미래를 배경으로 고독하게 임무를 수행하던 철학적인 의문을 지닌 주인공의 정체가 클론이었으며 용도가 사라지면 폐기된다는 설정은 던칸 존스의 2009년 작 ‘더 문’을 연상시킵니다. 옛 추억과 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을 소재로 한 SF라는 점에서는 ‘솔라리스’를, 기계에 의해 지배당한 인류와 무수한 클론의 이미지, 그리고 인간만의 해방구와 이를 파괴하려는 머신의 존재는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주인공 잭이 임무를 수행하며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즈의 모자를 애용하는 장면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2005년 작 ‘우주전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주전쟁’에서 톰 크루즈는 뉴욕 양키즈의 모자를 쓴 채 보스턴 레드삭스의 모자를 쓴 아들과 캐치볼하는 장면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오블리비언’에서도 야구공은 프로콜 하럼, 듀란듀란 등의 LP등과 함께 과거의 지구를 상징하는 소품 중 하나로 등장합니다. ‘오블리비언’이 시작된 뒤 약 55분 후에 등장하는 저항군 리더 말콤 역의 모건 프리먼은 ‘우주전쟁’에서 내레이터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 초반부에서 고글을 쓴 채 바이크로 잭이 사막을 달리는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 2’를 연상시킵니다.

극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킹콩 인형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히 ‘킹콩’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초반부에 잭이 고장난 드론을 씹던 껌으로 수리하는 장면은 ‘로켓티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일렉트로닉 계열의 배경 음악 또한 조셉 코신스키의 전작 ‘트론 새로운 시작’과 매우 유사합니다.

기존 영화들의 익숙한 요소들을 잔뜩 차용한 만큼 ‘오블리비언’의 전반적인 서사는 물론이고 반전을 눈치 채는 것 또한 어렵지 않습니다. 오프닝의 유니버설 로고부터 등장한 테트의 무균질의 백색의 공간과 묵시록적 종말 및 죽음을 상징하는 검정색으로 가득한 약탈자, 즉 인간의 공간이 대비되는 영상에서도 새로움은 없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스펙타클로 제시할 수 있었던 바닷물을 흡수하는 거대 장치가 파괴되는 장면이 삽입되지 않은 것도 아쉬움을 남깁니다.

지구의 거의 모든 공간이 전쟁으로 파괴되어 사막화되었지만 자연의 소중함을 상징하는 숲 속의 오두막이 덩그러니 남았다는 설정은 진부하며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인류와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을 선택하는 정의감 넘치는 전형적인 영웅으로 분한 톰 크루즈의 캐릭터도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서사의 개연성에도 적지 않은 의문이 남습니다. 잭이 지구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테트를 파괴하고자 영웅적인 희생을 선택할 때 동반자로 선택된 것은 줄리아가 아닌 말콤인데 체온 변화를 통해 잭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최첨단의 테트가 어째서 줄리아와 말콤, 즉 여성과 남성도 사전에 구별하지 못한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에 앞서 잭이 자신은 무수한 클론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도 별다른 충격은커녕 아쉬움조차 없이 손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아무리 톰 크루즈의 의연한 연기와 캐릭터가 뒷받침되었다고 하지만 평소 잭이 꿈의 의미에 집착하며 자아정체성 고뇌에 시달리던 것에 비하면 참으로 속편한 전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무수한 클론 중에서 왜 유독 그만이 자아정체성을 고뇌하다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어색합니다.

결말 또한 어색합니다. 지구를 구한 잭이 테트와 함께 사라지고 또 다른 잭이 숲 속 오두막에서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줄리아의 앞에 나타나는데 아마도 조셉 코신스키는 이것이 할리우드적이며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결말이라고 판단한 듯합니다. 하지만 드론으로부터 줄리아를 구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은 잭은 결말의 잭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이것이 과연 해피 엔드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데드 링거’와 같이 불륜과 섹스를 소재로 한 성인용 호러 SF에 가까운 기괴한 결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은 익숙한 설정과 개연성 부족한 서사는 단지 많은 예산을 소요한다고 해서 좋은 SF 영화가 탄생할 수 없음을 모방작 ‘오블리비언’은 입증합니다. SF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정의 독창성과 서사의 개연성임을 조셉 코신스키는 ‘망각’한 것입니다.

트론 : 새로운 시작 - 서자 넘지 못한 지루한 적자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아랑 2013/04/14 11:28 # 삭제

    아주 그냥 영화의 스포를 다 까발리시네
  • ㄱㄴㄹㅁ 2013/04/14 11:43 # 삭제

    이 작품의 원작 코믹스는 더 문보다 먼저 나왔으니 더 문을 따라한건 아닙니다~따라했다면 오히려 더 문이 이 작품을 따라한거죠~
  • 김하림 2013/04/14 12:35 # 삭제

    죄송한데 핵전쟁으로 지구가 폐허가 됬다는 건 테트의 거짓말일뿐입니다. 방사능오염지역이라는
    사막에서 아무일 없었잖아요.
    부분적으로 땅이 함몰된 부분을 보면 핵전쟁의 영향도 조금은 있었겠지만 쓰나미때문에
    전체가 폐허가 된 것뿐입니다.
  • oIHLo 2013/04/15 00:01 #

    막판에 2017년 오딧세이 호의 진상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우주선이 끌려가는 건 에피소드 4의 트랙터 빔 장면이 연상되더군요.
  • FANIYA 2013/04/15 10:05 # 삭제

    어제 영화를 보고왔습니다, 저 역시 이 영화의 군데군데 개연성없음. 여러가지 영화들 따라하기, 마지막 결말부분 52호 등장의 어이없음.등이 아쉽더군요., 그래도 간만에 톰형의 모습과 오리지널 SF 화면을 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아마 오두막 부분은 문제가 없을듯합니다. 핵전쟁으로 인한 어쩌구 자체가 테트가 클론들에게 기억시킨 거짓일테니까요.
  • 방사능꽃게 2013/06/03 14:27 # 삭제

    잘 쓴 리뷰라고 생각합니다.
    sf 영화에 대해 많이 접해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거부감이 많을 수도 있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이니 너그럽게 양해해주시면 될 듯 싶네요.
    요즘 우리나라는 긍정왜곡이 심한 상태인데 ( 부정적 견해를 무조건 배척하거나 무비판, 몰이해적인 찬성몰이식 )
    조목조목 잘 짚어서 알려주셨네요.
    남들이 좋다면 무조건 좋다고만 할게 아니라,
    난 좀 생각이 다른데... 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나 배려가 너무 없는 요즘이네요.
    디제님 리뷰는 분석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 2013/08/24 03:53 # 삭제

    톰 크루주의 배역 이름이 '잭 하퍼' 인 것은 하늘(우주)로 올라(우주선)가 거인(테트-샐리)을 만난 잭과 콩나무의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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