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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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 바디스 - 절묘한 화학작용 돋보이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 본 포스팅은 ‘웜 바디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항 여객기에 기거하는 좀비 R(니콜라스 홀트 분)은 도시를 습격해 젊은 남성 페리(데이브 프랭코 분)의 뇌를 먹고 그의 기억을 얻습니다. R은 페리의 여자친구 줄리(테레사 팔머 분)에 호감을 느끼고 그녀를 데려옵니다. R은 줄리에게 며칠만 함께 있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아이작 마리온의 원작 소설을 조나단 레빈 감독이 영화화한 ‘웜 바디스’는 8년 전 바이러스가 창궐해 좀비가 들끓는 세상에서 좀비 청년과 인간 여성의 사랑을 묘사하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좀비 소재의 호러 영화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를 혼합해 절묘한 화학 작용을 일으켜 시너지 효과를 유발하는 참신한 발상이 돋보입니다. 최근 오락 영화에서 CG가 범람하면서 영상의 측면에서는 구현 불가능한 것이 없기에 어지간한 비주얼에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려워져 역설적으로 발상과 서사가 더욱 중요해졌음을 감안하면 ‘웜 바디스’는 볼거리보다 설정과 서사의 참신함을 앞세워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웜 바디스’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요소는 우선 주인공의 이름에서 드러납니다. 여주인공 줄리(Julie)는 줄리엣(Juliet)에서 비롯되었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기에 주인공 R이 로미오(Romeo)의 머리글자임을 유추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줄리는 R의 이름이 원래 무엇인지 물으며 ‘리차드(Richard)’, ‘리카르도(Ricardo)’ 등 R로 시작되는 남자 이름을 열거하지만 로미오는 열거된 이름들 중에 없으며 R은 로미오가 빠진 리스트 중 자신의 이름은 없다고 답합니다. 줄리가 로미오를 거명하고 R이 부정한 것은 아니니 R의 이름이 로미오임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유명한 대목 중 하나인 자신의 집 발코니에 나온 줄리엣이 지상의 로미오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웜 바디스’에서 그대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조연들의 이름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초반에 죽음을 맞이하는 줄리의 남자친구 페리(Perry)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의 약혼자 패리스(Paris)에서, R의 절친한 친구로 위기에서 구출하는 M/마커스(Marcus)(롭 코드리 분)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Mercutio)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줄리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절친한 친구 노라(Nora)(아날레이 팁튼 분)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사랑을 돕는 유모(Nurse)에서 비롯된 것이며 간호사(Nurse)의 꿈을 지니고 있던 노라는 결말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합니다.

영화 속 소품에서도 복선을 읽을 수 있습니다. R이 착용한 붉은색 후드는 좀비의 차가운 몸과 대조되는 줄리에 대한 사랑의 열정과 동시에 인간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순간 흘릴 붉은 피를 암시합니다. 아울러 R이 좀비에서 인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며 꾼 꿈속에서 줄리가 먹고 있는 붉은색 사과와도 색상이 상통합니다. 줄리가 사과를 먹는 것은 ‘성경’에서 인류의 시초가 되는 여성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것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금단의 영역을 열어젖혔듯이 줄리는 사과를 통해 인간과 좀비의 화해라는 금단의 영역을 열어젖힌 것입니다.

R이 자신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아날로그 매체인 턴테이블을 통해 LP로 명반들을 들으며 음악을 사랑하는 것은 처음부터 인간성을 희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홀로 지내는 것 또한 인간 특유의 감정인 절실한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애당초 좀비는 홀로 지내지 않고 떼로 몰려다니며 오로지 순간의 식욕을 채우는 것 외에 개인적인 수집욕이나 소유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줄리는 R의 음악 취향에 반색하며 그가 수집한 LP들의 가치를 알아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려는 순간 건스 앤 로지스의 ‘Patience’, R이 인간처럼 화장하는 장면에서 로이 오비슨의 ‘Oh, Pretty Women’ 등 익숙한 과거의 곡들이 삽입됩니다.

R과 줄리는 도피행각을 벌이다 빈집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각자의 사진을 촬영합니다. 디지털 카메라에 밀려 사실상 사장된 아날로그 매체를 사용해 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것 또한 LP 음악 감상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좀비 영화의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설정이 눈에 띕니다. 우선 좀비가 간단한 대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나 인간의 뇌를 섭취해 그의 기억을 얻고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설정은 인간화를 위한 포석입니다. 의사소통을 중시하며 좀비마저도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은 다른 것, 혹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기에 ‘웜 바디스’는 매우 진보적인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며 계량화할 수 없는 사랑이 좀비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구하는 치료약이 된다는 점에서는 관념론적입니다.

좀비에서 백골과 같이 한 걸음 더 흉측하게 변화된 ‘보니’를 설정한 것은 좀비가 상대적으로 인간적인 존재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보니와 줄리의 아버지 그리지오 대령(존 말코비치 분) 빛 부하들은 각각의 진영을 대표하는 강경파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몬터규 가문과 캐퓰릿 가문을 상징합니다. 줄리는 R의 얼굴 옆에 루치오 풀치의 1979년 작 ‘좀비’의 블루레이의 재킷을 들이대 비교하며 좀비 영화 장르에 대한 오마주를 표합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답게 고어의 수위는 높지 않습니다.

좀비였던 R이 인간화되는 과정의 미묘한 변화를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R은 처음에는 한두 단어 밖에 사용하지 못하다 점점 구사하는 단어가 늘어나 문장에 가까워집니다. 얼굴의 흉터는 줄어들고 창백한 얼굴은 점차 화색을 띠게 됩니다. 으스스한 눈동자는 푸른빛으로 변모합니다.

큰 키와 마른 체형, 넓은 이마와 길쭉한 얼굴, 그리고 큰 눈으로 인해 잘 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광적인 인상을 풍기는 니콜라스 홀트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잭 더 자이언트 킬러’에서 일편단심 사랑에 빠진 순정남으로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배역을 맡았지만 여성 관객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성인 배우로 인지도를 넓히는 파급 효과는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무리 원작 소설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을 영화화하는 것은 별개의 역량입니다. 조나단 레빈 감독은 ‘50/50’에 이어 또 다시 독특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했다는 점에서 차후 행보가 기대됩니다. 굳이 아쉬운 점을 지적하면 타인의 뇌를 먹고 그의 기억에서 비롯된 사랑이 과연 진정한 사랑인지, 아니면 뇌를 빼앗긴 자의 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의문이 결여되었다는 점입니다. 대중적인 로맨틱 코미디에 철학적인 정체성 고민은 없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만일 그와 같은 소재를 매끄럽게 영화 속에 녹여냈다면 ‘웜 바디스’는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50/50 - 죽음 다룬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하로 2013/03/17 08:11 #

    애초에 원작이 영어덜트로 심각한 의문이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소설이 아니라 아쉬운 부분입니다.
  • eratho 2013/03/17 11:53 # 삭제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비롯해서 요즘은 소위 일본에서 '라이트노벨' 이라 부르는 경향의 소설이 대세인 것 같네요. 음, 좋기도 하고 안좋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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