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나가 브론스키를 처음 만나는 장소이자 자살을 목격하는 불길한 장소가 기차역인 것은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이 결코 평탄할 수 없으며 결말에서 안나가 기차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강하게 암시합니다. 결코 머물 수 없으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잠시 들르는 공간이 기차역이기에 이승에 잠시 머무르다 죽음을 통해 떠나는 삶과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이루어지지도 못하는 안나의 사랑과도 상통합니다.
압도적인 분량에 비해 ‘안나 카레니나’의 줄거리는 간단한 편입니다. 엄청난 양의 책을 단 몇 줄의 줄거리로 줄일 수 있습니다. 검열 등 당국의 탄압에 맞서 투쟁했던 톨스토이이지만 19세기의 작품인 만큼 현대의 불륜 소설과 달리 육체적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것은 물론 대사조차 생략해 여백이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안나와 브론스키의 첫 동침이나 안나의 가출에서 비롯된 도피 행각의 시작 등은 지나치리만큼 간단하게 묘사되어 독자가 상상을 통해 공백을 메워야 합니다. 미국 드라마의 클리프 행어처럼 각 장의 끄트머리를 안나는 매우 파격적인 행각으로 장식하는 등 월간 잡지의 연재소설로서 독자의 이목을 끌기 위한 기교가 돋보입니다.
톨스토이가 등장인물들에 공을 들이는 것은 행동이 아닌 심리 묘사입니다. 실제 행동은 단순한 대신 그와 같은 행동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가 필요했는지 파헤칩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 의해 시시각각 미묘하게 변화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는 낱낱이 파헤쳐져 인간이 얼마나 내적으로 복잡하면서도 변덕스런 사고 양식을 지닌 동물인지 드러냅니다. 주인공 안나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은 물론 심지어 사냥개의 시각과 심리마저도 포착하기에 ‘안나 카레니나’는 그야말로 방대한 군상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나가 불륜에 빠지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남편 카레닌과의 대화 부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브론스키와도 대화 부족을 반복하면서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인간관계는 근본적으로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서만이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는 법인데 안나는 두 남자와의 사이에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충분한 대화를 제대로 시도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시달리다 죽음으로 자신을 내몬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스티바와 돌리 부부는 물론 돌리와 키티의 부모인 쉐르바츠키 공작 부부 또한 대화 부족은 마찬가지입니다.
의외로 안나 못지않은 압도적인 비중을 부여받는 또 다른 주인공은 레빈입니다. 레빈은 포크로프스코예의 영주로 돌리의 여동생 키티에게 청혼하지만 브론스키로 인해 갈등하는 키티에 일차적으로 거절당하는 인물입니다. 레빈은 하층민인 농민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러시아의 장래는 물론 인간의 본질로부터 농업의 개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책을 집필하려 하는 내실을 갖춘 인물입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 카레닌이 아내에 무관심하기는 했지만 부도덕한 행동을 저지르지는 않았기에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불륜에 빠진 안나에 대한 톨스토이의 시선은 차갑지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레빈에 대한 시선은 상당히 우호적입니다. 불륜녀의 이름을 제목으로 설정한 것부터 불륜 소설의 외피를 지니고 있는 ‘안나 카레니나’이지만 사실은 톨스토이가 표방하고 싶었던 주제의식은 레빈에 의해 구체화되며 레빈의 정신적 성장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7부의 말미에서 안나는 자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부에서 레빈이 등장해 자살 충동을 이겨내고 삶의 본질적 의미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레빈에 대한 톨스토이의 애정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당시 출판사가 주인공 안나의 죽음 이후 후일담을 묘사하는 8부의 출간을 반대하는 바람에 톨스토이가 8부를 자비로 출간한 것에서도 레빈에 대한 애정은 드러납니다.
안나가 두 남자와 대화 부족으로 인해 비극으로 치달은 것과 달리 레빈은 결국 아내가 된 키티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도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대조적입니다. 레빈과 키티는 이상적인 부부상에 가장 근접해 있습니다. 이채로운 것은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안나와 레빈의 공통된 지인이지만 방대한 분량의 작품 속에서 막상 안나와 레빈이 제대로 대면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한 차례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또 다른 주인공은 19세기 러시아 사회입니다.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등 거의 모든 요소들을 다루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결혼, 출산, 장례와 같은 인류 사회의 공통적 풍속들이 19세기 러시아인들에게는 어떻게 다뤄졌는지 현대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보수적인 모스크바와 자유분방한 페테르부르크의 도시 분위기의 차이를 묘사한 것 또한 인상적입니다.
사형제 등 러시아의 불합리한 제도들과 전쟁에도 반대했으며 기득권인 정교 세력과도 맞서 싸운 톨스토이인 만큼 러시아 사회의 비판 의식은 ‘안나 카레니나’에서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특히 당시 러시아의 지배 세력이었던 귀족들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 고발합니다. 사교계라는 미명 하에 불륜을 일삼으면서도 안나를 손가락질하고 빚을 내서 바람을 피우거나 도박을 일삼는 비생산적이며 유흥에 찌든 타락의 삶을 영위한 것이 당시의 귀족이었습니다. 임신한 유부녀 키티를 레빈의 집에서 유혹하는 바센카라는 희극적 인물을 통해 러시아 귀족이 얼마나 방탕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존재인지 비판합니다. 러시아의 모든 것에 대한 톨스토이가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안나 카레니나’의 출간 이후 40년 만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귀족들의 선거 장면이나 의식의 흐름을 좇는 기술, 그리고 인간의 삶의 본질에 대한 사유 등은 다소 지루하지만 각각의 챕터의 길이가 짧으며 톨스토이 특유의 촌철살인이 돋보이기에 읽기에는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문장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문체를 주무르는 대문호다운 면모 또한 인상적입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1996년 버나드 로즈 감독,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로 제작된 바 있으나 소피 마르소의 압도적인 미모와 결말의 자살 장면 외에는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조 라이트 감독, 키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 영화일지 궁금합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안나 카레니나’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무난하지만 한국적인 관점에서 스티바가 매제인 카레닌에게 반말을 하고 카레닌은 스티바에게 존댓말을 하도록 번역된 것은 카레닌의 지위와 나이를 감안하면 어색합니다. 스티바의 특유의 친화력까지 감안한 것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는 번역이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1판 10쇄로 작년 11월 19일에 출간된 판본은 이전에 출간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 비해 종이 질이 가벼운 대신 촉감이 거칠어지고 투명도가 떨어졌습니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꼼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3권에는 활자가 제대로 인쇄되지 않아 흐리멍덩한 부분도 보입니다. 단 번역자의 깊이 있는 관점이 돋보이는 ‘작품 해설’은 훌륭합니다.
오탈자도 곳곳에 눈에 띕니다. 2권 310페이지 ‘아르까지치’는 ‘아르카지치’가 되어 합니다. 605페이지에서 카레닌과 아들 세료자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하지만 내가 그 일을 좋아하며’에서 ‘내가’는 카레닌이 세료자를 지칭하므로 ‘네가’가 되어야 옳습니다. 620페이지 하단에서 ‘그들은 그거 날 모욕하고’는 어색합니다. ‘그거’를 삭제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이 될 것입니다. 3권 321페이지에는 ‘가엽고’와 ‘가엾은’이 눈에 띄는데 ‘가엽다’와 ‘가엾다’가 모두 표준어이지만 둘 중 하나로 통일해 표기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78페이지 하단의 ‘리리야와’는 오타로 ‘리디야와’가 되어야 옳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영화) - 줄거리 요약 급급했던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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