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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트 - 미국의 영웅은 정직해야 한다 영화

※ 본 포스팅은 ‘플라이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 여객기 기장 휩(덴젤 워싱턴 분)은 약물 복용 및 음주 이후 비행을 하다 기체 이상에 직면합니다. 추락 직전의 위기에서 휩은 기상천외한 비행을 통해 사상자수를 최소화하고 그 자신도 목숨을 구하지만 혈액 검사 결과로 인해 새로운 위기에 직면합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플라이트’는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 여객기 파일럿이 거짓된 영웅과 참된 죄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포착합니다. 주인공 휩은 자신의 과실을 숨기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너무나 미국적인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가 선택할 결론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의 영웅이라면 정직해야 한다는 ‘플라이트’의 주제의식은 첫 장면인 의외의 가슴 노출과 헤어 누드, 그리고 반복 제시되는 마약 복용 및 음주 장면과는 반대로 매우 건전하며 도덕적입니다. (가슴 노출 및 헤어 누드 장면은 초장부터 관객의 눈을 끌어당기기 위한 것이지만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는 여객기 사고 장면의 비극성을 심화하며 결말의 휩의 선택과 연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플라이트’의 줄거리는 마치 도덕 교과서나 논술 교과서에 포함될 법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과실을 숨기려는 휩의 노력은 책임 소재의 면피에 힘쓰는 일부 집단의 이기주의에 부합하거나 혹은 반대로 휩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에 상치됩니다. 승무원 노조, 항공사, 그리고 여객기 제조사 등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사망 및 부상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입니다. 인간의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이면을 ‘플라이트’는 간과하지 않습니다.

가족 영화의 요소 또한 로버트 저메키스 영화답습니다. 아버지의 직업과 자부심을 대물림한 휩은 전처 및 아들과 소원한 관계이지만 결말에서는 아들의 신뢰를 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암시됩니다. 니콜(켈리 라일리 분) 또한 어머니의 사망 이후 약물 중독으로 외롭고 힘겨운 삶을 살던 중 우연히 만난 휩과 이루어지게 됩니다.

서두에서 휩과 동침한 여승무원 트리나(나딘 벨라스케즈 분)가 추락 위기에 몰린 순간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소년을 부모에게 되돌려 보낸 살신성인과 고참 여승무원 마가렛(타마라 투니 분)으로 하여금 명재경각의 순간 아들을 위한 메시지를 블랙박스에 녹음시키는 휩의 지시 또한 가족주의적입니다. 특히 트리나의 살신성인은 클라이맥스인 청문회 장면의 휩의 고백과도 연결됩니다. 청문회의 고백 장면은 제85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덴젤 워싱턴의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사용된 바 있습니다.

휩과 니콜은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치는데 두 사람 모두 마약 중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우연한 만남의 서먹함은 제3자인 말기 암 환자 킵(코너 오닐 분)에 의해 희석됩니다. 킵은 우스꽝스럽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온 휩으로 하여금 삶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니콜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하는 인물입니다.

‘플라이트’의 서사는 허구이며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로 오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작 소설이 없는 오리지널 각본입니다. 하지만 시각적이며 실질적인 클라이맥스인 전반부의 여객기의 배면 비행 및 추락 장면을 혼란스러운 기내 조종석의 시점으로만 제시한 후 이와는 별개로 여객기 외부의 시점인 뉴스의 휴대 전화 촬영 동영상으로 제시하기에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은 사실성을 확보합니다. CNN을 활용하는 영리함도 사실성 확보에 일조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극중의 여객기 불시착 사고가 실제 사건이며 휩이 실존 인물인 양 여기도록 합니다.

사실성을 배가시키는 것은 쾌락적인 완벽주의자이자 거짓말쟁이 주인공 휩을 연기한 덴젤 워싱턴의 연기력입니다. 토니 스콧의 유작 ‘언스토퍼블’에서 베테랑 기관사로 등장해 풋내기 신참 기관사와 호흡을 맞추는 역할을 맡았던 덴젤 워싱턴은 ‘플라이트’에서 파일럿으로서 비슷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젊은이와 처음 호흡을 맞춰 무수한 인명이 희생될 뻔한 대형 참사의 위기를 돌파하는 영웅이라는 점에서 ‘언스토퍼블’과 ‘플라이트’의 덴젤 워싱턴의 캐릭터는 판에 박은 듯합니다.

덴젤 워싱턴은 거구와 여유 넘치는 이미지, 그리고 능수능란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유능한 인물로 분해 그 어떤 고난이 닥쳐도 느긋하게 헤쳐 나갈 것처럼 보입니다.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그랬듯 설령 비열한 악역을 맡는다 해도 숭고한 선인처럼 관객의 감정 이입을 이끌어내는 힘을 지녔는데 ‘플라이트’에서도 여전합니다. 심지어 음주와 흡연도 어찌나 맛깔스럽게 연기하는지 관객조차 음주 및 흡연 욕구를 환기할 정도입니다. 극중에서 정체불명의 음료수를 마시는 스폰지밥이 등장하는 TV 장면은 휩의 음주 악습을 빗댄 것입니다. 현찰 뭉치를 신문지에 싸서 ‘송아지 고기’라 쓴 채 냉장고에 보관했다 마약 구입 등에 사용하는 것은 그가 ‘아메리칸 갱스터’에 출연했음을 상기시킵니다.

고전적인 이미지의 포스터에도 활용된, 자신에 닥칠 고난을 암시하는 거센 비를 맞으며 휩이 비행기에 탑승하는 장면을 비롯해 반복 삽입되는 조 카커의 ‘Feelin' Alright’ 등 휩이 즐겨듣는 경쾌한 소울 음악은 그의 인종과 능수능란한 성격을 대변합니다.

영화 전반의 차분한 분위기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연출 의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덴젤 워싱턴의 이미지와 연기 덕분이기도 합니다. 관객의 감정선보다 앞질러 감정을 강요할 법도 하지만 클라이맥스까지 시종일관 담담함을 견지해 인상적입니다. 돈 치들은 ‘스워드피시’에서처럼 집요하면서도 닳고 닳은 변호사로 등장하는 반면 보다 비중이 적은 존 굿맨은 감초 같은 마약상 역할로 코미디를 담당합니다.

유머와 드라마, 그리고 어지간한 재난 영화에 필적하는 여객기 추락 장면의 스릴까지 ‘플라이트’는 다양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만 아카데미에서도 소외된 탓인지 국내에서 소규모 개봉 이후 내려가는 추세입니다. 덴젤 워싱턴의 명연기만으로 ‘플라이트’는 관람할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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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13/03/09 09:42 #

    제멕키스 아저씨가 이번에도 계속 하향곡선인 듯하여 가슴이 아픕니다. (작품성 말고 흥행에서...)
  • 대공 2013/03/09 09:46 #

    아, 이거보러 가야하는데...생각보다 재밌는것 같군요
  • 홍차도둑 2013/03/09 17:26 #

    써주신 제목만 봤을 때 순간 리처드 버드 '구라제독'이 떠올랐었습니다.

    미국의 영웅이지만 정직하긴 커녕 '명예욕'으로 인해 남북극 공중비행으로 갔다고 개뻥을 까댄...
    (그러고 보니 미국 해군의 로버트 피어리도 북극점 정복 했다는 개뻥을 깠군요)

    덴젤 워싱턴의 연기력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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