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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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배우는 과대평가, 영화는 과소평가 영화

아내와 혼외정사를 벌인 동료교사를 폭행한 뒤 정신병원에 수용된 팻(브래들리 쿠퍼 분)은 아내와 결별하고 학교에서도 해고된 뒤 부모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팻은 친구 아내의 여동생으로 남편과 사별한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분)와 만난 이후 그녀에 호감을 갖게 됩니다.

매튜 퀵의 소설을 데이빗 O. 러셀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정신적으로 극심한 위기를 겪은 남녀가 과거를 딛고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관객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장르 중 하나이지만 ‘힐링’이라는 단어가 상업적으로 남용되는 현실에서 알 수 있듯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21세기의 시류를 반영해 매우 시의적절하다 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팻과 티파니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팻의 절친한 친구이자 티파니의 형부로 잘 나가는 사업가인 로니(존 오티즈 분)의 고백에서도 21세기 현대인이 시달려야 하는 과도한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팻과 티파니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며 집착이 강해 편집광에 가깝습니다. 배우자와 헤어졌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애당초 팻은 티파니와 자신이 공통점을 지녔다는 사실을 부인하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음을 깨닫고 서서히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아내에게 편지를 전해주겠다는 약속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티파니와 춤을 연습하게 되는 팻은 몸을 함께 움직이는 춤을 통해 티파니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던 머릿속 즉, 심리 상태도 정돈됩니다. 영화 초반에는 팻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핸드 헬드 등 카메라 워킹이 현란했지만 티파니를 만난 이후 카메라는 점차 안정을 찾아 갑니다.

1990년생으로 만 23세의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통해 제8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는 분명 인상적이었지만 극중의 비중이나 연기의 난이도를 비교하면 팻 역의 브래들리 쿠퍼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제니퍼 로렌스 본인의 이전 출연작과 비교해도 보는 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 ‘윈터스 본’의 차분하고 처연한 연기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밖으로 내지르는 연기에 비해 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카데미에 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아무르’에서 압도적인 연기를 펼친 에마뉘엘 리바에 비해 우월하다고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니퍼 로렌스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첫째, 아카데미가 프랑스의 칸보다는 자국의 골든글러브에 보조를 맞춰왔으며 둘째, 후보에 오른 작품 하나만을 수상의 근거로 삼기보다 필모그래피 전체를 은연중에 반영해 과거 수상하지 못한 작품이 가산점과 같이 취급되며 셋째, 할리우드의 20대 여배우 기근 속에서 모처럼 나타난 약관의 대형 여배우를 격려하기 위한 차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연 못지않게 조연들 또한 인상적입니다. 로버트 드니로는 미식축구에 광적으로 빠져 사설도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퇴직 노인이자 팻의 아버지로 등장하는데 그의 출연작 여럿을 합쳐놓은 듯합니다. 스포츠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고인이 된 토니 스콧 감독의 ‘더 팬’을, 도박에 모든 것을 거는 모습은 ‘카지노’를 연상시키며, 옆집 학생을 위협할 때에는 ‘대부2’와 ‘언터처블’의 마피아 보스의 카리스마를 잠시 뿜어냅니다. 집착이 강하며 폭력적인 팻의 성향은 로버트 드니로가 분한 아버지의 유전적 영향을 짐작케 합니다.

팻은 별거중인 아내 니키(브레아 비 분)와의 재결합을 갈망하는데 티파니의 언니 베로니카로 등장한 줄리아 스타일스가 제이슨 본 삼부작에서 ‘니키’로 출연했다는 점은 우연의 일치이지만 흥미롭습니다. 속사포와 같은 수다 연기가 장기인 크리스 터커 또한 감초 역할을 톡톡히 수행합니다. 필라델피아의 미식축구팀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프로야구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활용해 지역성을 부각시켜 등장인물들의 생명력을 배가시킵니다.

하지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국내 수입 및 배급사의 행보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선 ‘암울한 인생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을 얻기 위한 전략’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의미의 길고도 난해한 원제 ‘Silver Linings Playbook’을 번역도 하지 않은 채 거의 그대로 국내 개봉명으로 사용한 것은 관객의 흥미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압축적이며 이해하기 쉬운 한글 제목을 찾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게다가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개봉해 가벼운 팝콘 무비처럼 인식시킨 것 또한 전략(Playbook) 부족에 가까웠습니다. 차라리 개봉 시기를 조정하고 골든글러브 수상과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를 전면에 내세워 입소문을 낼 수 있는 관객을 끌어들이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꺽여’, ‘긍적적’ 등 무성의한 한글자막 오타 또한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소위 ‘대박 흥행’은 어렵다 해도 개봉 시기와 마케팅, 입소문 등이 적절히 어우러졌다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무신경한 수입 및 배급사의 행보가 2월 14일 국내 개봉 이후 현재까지 누적 관객 수 10만 명을 조금 넘는 흥행 참패로 직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극중의 이중 내기 설정은 다소 작위적이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력을 포함한 완성도를 감안하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과소평가받기에는 아까운 작품입니다.

파이터 - 명불허전 크리스찬 베일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남선북마 2013/03/04 02:37 #

    로맨틱 코미디에 은근히 운치있는 한글이름 잘 짓더니.. 이건 왜 이렇게 방치했나 모르겠네요.. 유행이 지나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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