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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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eport 프로야구 필자, 전 스포츠조선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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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7인 - ‘처절함’ 사라진 리메이크 영화

※ 본 포스팅은 ‘7인의 사무라이’와 ‘황야의 7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멕시코의 황량한 농촌을 산적 칼베라(엘리 왈라치 분) 일당이 정기적으로 약탈합니다. 농민들은 투쟁을 결심하고 총을 구하려다 노련한 크리스(율 브리너 분)와 빈(스티브 맥퀸 분)을 비롯한 7명의 총잡이를 고용하게 됩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1954년 작 ‘7인의 사무라이’를 존 스터지스 감독이 1960년에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은 산적으로부터 가난한 농민들을 지키는 7명의 총잡이의 활약을 묘사하는 서부극입니다. 207분이었던 원작의 러닝 타임을 128분으로 줄인 만큼 리메이크는 압축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우선 캐릭터부터 압축되었습니다. 원작 ‘7인의 사무라이’에서 초보 무사였던 카츠시로와 미후네 도시로가 분했던 경박한 키쿠치요는 ‘황야의 7인’에서 경박한 성격으로 총잡이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 치코(호스트 부홀즈 분)로 통합되었습니다. 리더 캄베이를 보좌하는 참모 역할이었던 시치로지는 크리스와 동등한 위치를 점해 버디 무비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빈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큐조는 총탄보다 빠르게 단검을 던지는 사나이 브릿(제임스 코번 분)으로, 도끼로 장작을 패다 스카우트되는 헤이하치는 베르나르도(찰스 브론슨 분)로 옮겨왔습니다. 크리스, 치코, 그리고 농민들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개성은 러닝 타임의 압축으로 인해 원작에 비해 단순화되었습니다.

서사의 변화는 당연합니다. 산적과 맞서기 위해 장로가 사무라이, 즉 사람을 구해오라는 ‘7인의 사무라이’와 달리 ‘황야의 7인’에서 장로는 총을 구해오라고 하지만 ‘총보다 사람이 싸다’며 총잡이를 구하는 편이 낫다고 농민들에게 조언하는 것은 크리스입니다. 원작에서는 장로가 마을 외곽에 거주하다 산적의 습격으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황야의 7인’에서는 크리스의 이주 권유를 거부한 장로가 살아남습니다. ‘7인의 사무라이’의 결말에서 ‘이긴 것은 저들(농민)이다’라는 대사는 캄베이의 몫이지만 ‘황야의 7인’에서는 생존한 장로의 몫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 7명 중 4명의 사무라이가 몇 번의 싸움을 거치며 차례로 전사하지만 ‘황야의 7인’에서는 7명 중 4명의 총잡이가 마지막 싸움에서 한꺼번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다릅니다.

마을 처녀 시노와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의 차이로 인해 포기하고 마을을 떠나는 카츠시로와 달리 ‘황야의 7인’의 치코는 처녀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마을에 남습니다. 할리우드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건조했던 원작의 제목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를 리메이크를 거치며 ‘훌륭한 7인’ 정도로 직역될 수 있는 자화자찬식의 다소 낯 뜨거운 제목 ‘The Magnificent Seven’을 선택한 것부터 두 작품은 방향성의 차이를 분명히 했던 셈입니다. ‘황야의 7인’의 오프닝에 제시되는 경쾌한 행진곡풍의 주제 음악 이후 칼베라 일당의 등장과 함께 제시되는 산적의 테마가 ‘7인의 사무라이’의 메인 테마와 유사한 것부터 두 작품의 차이는 암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작품의 차이는 농민들의 배신으로 칼베라 일당에 무장해제를 당해 마을을 떠나는 총잡이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싸운다는 ‘황야의 7인’만의 에피소드에서 두드러집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 사무라이들은 농민들과 신뢰를 쌓은 이후 결코 그들로부터 배신당하지 않습니다. 사무라이와 농민 모두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무사도의 영향 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극중에서 사무라이는 비록 몰락했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의 지배 계급입니다.

하지만 ‘황야의 7인’의 총잡이들은 결코 지배 계급이 아닙니다. 의협심보다는 계약에 의해 움직이며 스스로를 어리석은 인간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총잡이들이 마을로 돌아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유도 농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어리석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영화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계급의 차이가 서사에도 반영된 것입니다. 한편으로 미국인 총잡이들이 미국인이 아닌 멕시코 인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설정은 냉전 시대 세계 경찰 노릇을 자임했던 미국의 국제적 지위를 반영한 것처럼 보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와 ‘황야의 7인’의 가장 큰 차이는 처절함의 유무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는 클라이맥스의 빗속의 혈투로 대변되는 처절함으로 점철한 영화입니다. 따라서 세계영화사에 손꼽히는 걸작으로 여전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황야의 7인’은 크리스가 인디언의 장례식을 치러주며 악몽에 시달리는 오리지널 캐릭터인 총잡이 리(로버트 본 분)와 빈의 대사 등을 통해 총잡이는 집도 가족도 없는 처연한 떠돌이임을 강조해 수정주의적인 성격을 드러내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는 입에 담배를 문 채 멋들어진 대사를 늘어놓는 서부극의 마초 판타지에 충실합니다.

적의 몸을 자신이 든 칼로 베고 찔러 살육의 감촉을 몸으로 느끼는 사무라이와 먼 곳의 적도 총을 발사해 살해할 수 있으나 살육의 감촉을 몸으로 느끼기 어려운 총잡이의 ‘육체성’의 차이가 ‘처절함’의 유무라는 엄청난 차이로 직결된 것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 산적에 납치되어 어쩔 수 없이 몸을 팔게 된 농민 리키치의 아내가 리치키와 재회한 후 자살하는 처절한 에피소드 또한 ‘황야의 7인’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

원작의 러닝 타임을 축소하고 서사 및 등장인물도 단순화했지만 ‘황야의 7인’은 현 시점에서 보면 반세기의 전 영화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중반이 다소 지루합니다. 하지만 서부극이라는 장르의 틀로 국한한다면 ‘황야의 7인’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율 브리너,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등 당대의 스타들이 마초적 매력을 물씬 풍기며 와이드 스크린을 꽉 채웁니다. ‘양은 털을 깎일 운명’이라며 착취당하는 농민들의 처지를 빗댄 칼베라의 대사도 인상적입니다. ‘황야의 7인’이 얼마나 성공적인 서부극이었는지는 3편의 속편이 제작되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TV 드라마까지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입증됩니다.

한 편의 영화가 리메이크될 경우 원작을 먼저 접하고 리메이크를 관람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7인의 사무라이’와 ‘황야의 7인’을 모두 아직 접하지 않았다면 ‘황야의 7인’을 먼저 관람하고 ‘7인의 사무라이’를 나중에 접해 두 작품을 비교하는 편이 낫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황야의 7인’을 필름으로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 - 시민 계급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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