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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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 소년, 왜 혁명에 몸을 던졌나 영화

※ 본 포스팅은 ‘레 미제라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이 국내 개봉 이후 다양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우선 정식 발매된 영화의 OST CD가 영화의 모든 것을 담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158분의 러닝 타임 동안 거의 쉴 새 없이 노래로 채워지기 때문에 CD 2장으로도 모자라지만 현재 발매된 OST는 65분 분량의 CD 1장만을 담고 있기에 비롯된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몇몇 노래들이 축약된 것이 아쉽지만 특히 사창가 장면, 판틴의 죽음, 장 발장과 어린 코제트의 만남, 가브로쉬의 첫 등장과 죽음 등 중요 장면에 삽입된 곡들이 누락된 것은 분명 아쉽습니다. 주요 몇몇 곡들이 편곡과 개사를 통해 변주 및 활용되어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곡들은 누락되지 않았다 해도 아쉬움은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사실 이번에 발매된 OST CD의 부제가 ‘HIGHLIGHTS FROM THE MOTION PICTURE SOUNDTRACK’인 만큼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차후 발매될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OST CD에 기대를 걸어야 하며 보다 완벽하게 모든 노래를 ‘소장’하는 방법은 영화의 블루레이나 dvd를 선택하는 방법밖에 없을 듯합니다.

기본적인 서사 외에 노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레 미제라블’을 지난 12월 19일 처음 관람했을 때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적응하기 어려워 다소 지루했습니다. 하지만 OST CD를 구입해 ‘복습’을 한 뒤 두 번째 관람을 했을 때는 그야말로 영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공연장에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관람하는 것에 비하면 생생한 맛은 분명 덜 하겠지만 영화는 비용이 훨씬 저렴하며 편집이 속도감을 유지하기에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노래가 귀에 익은 상태에서 2시간 30여 분의 콘서트 동영상을 대화면으로 본다는 생각이라면 영화 ‘레 미제라블’은 가격 대비 효과가 큰 콘텐츠인 셈입니다.

‘레 미제라블’은 개봉 이후 국내에서 400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뮤지컬 장르에 대한 일반 관객들의 생소함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상을 보고 귀로는 노래를 들으며 한글 자막까지 읽는 것은 번거롭고 피곤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특히 노래는 처음 들을 때 귀에 익기 어려운 법인데 2시간 30여 분 내내 노래로 채워지니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운문인 영어 가사가 의미하는 함축적 표현이나 운율을 파악하는 것은 자막에 의존하는 한국의 일반 영화 관객에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지만 영화의 장르적 특성의 본연에 접근하는 것이 여타 장르 영화에 비해 부담스럽다면 불만스러운 관객이 나오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두 번째 관람에서 인상적인 등장인물은 우선 자베르였습니다. 노트르담 성당을 비롯한 파리의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처음으로 독창하는 장면에서 자베르는 거대한 독수리상을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독수리가 상징하듯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발장과 자베르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두 사람 모두 신(神)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이 말하는 신은 크리스트교의 유일신으로 동일한 존재이지만 장 발장의 신은 자비의 신이며 자베르의 신은 정의의 신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하나의 신이 지니고 있는 양면 중 한 쪽 면을 추종했다는 점에서 두 사나이는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장 발장의 생은 제목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즉, ‘불쌍한 사람들’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평생 쫓기며 불행했지만 시장으로서 시민들에게 인정받았으며 사랑하는 딸 코제트(어린 코제트를 안아 올려 도주한 뒤 여생 동안 사랑하며 키운 장 발장으로 휴 잭맨이 캐스팅된 것은 그가 실제로 어린 딸을 끔찍이 사랑하는 가정적인 아버지라는 사실이 파파라치들에 의해 종종 공개된 것이 일조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자신을 이해한 사위 마리우스가 있었기에 죽음의 순간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베르를 이해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가 처음 독창할 때는 건물 옥상 난간 위를 걸었으며 마지막 순간에는 다리의 난간 위를 걷다가 투신합니다. 자신이 신의 의지를 실현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자베르는 목숨을 걸고 균형을 맞춰 걸어야 하는 난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남자, 즉 위태롭고 외로운 처지였음을 상징합니다. 극중에서 혁명에 참여한 청년들조차 참혹하게 죽었지만 결코 외롭지는 않았는데 자베르는 죽음의 순간까지 외로웠습니다.

장 발장에 의해 풀려나 죽음을 면한 자베르의 심경의 변화는 소년 혁명가 가브로쉬의 죽음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자베르는 가브로쉬의 시체 앞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의 훈장을 가브로쉬에게 달아줍니다. 비록 가브로쉬를 비롯한 혁명가들은 장렬히 전사했지만 구시대는 완전히 가고 혁명의 정신이 대세가 되는 새로운 시대가 올 것임을 자베르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자베르는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인물이었으며 권력의 주구에 불과했습니다. 자베르 또한 ‘불쌍한 사람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진정한 악인은 자베르가 아니라 테나르디에 부부입니다. 자베르에게는 악을 일소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원칙이라도 있었지만 테나르디에 부부는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우는 것 외에는 원칙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관을 경영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으면서도 소녀 코제트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사기도 불사하며 돈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숨기지 않습니다. 혁명으로 인해 귀족이 기득권을 상실하게 되면 권력의 공백기를 가장 먼저 메우며 부르주아로 성장할 인물들이 바로 테나르디에 부부인 것입니다. 이들은 혁명으로 인해 내전 상태에 돌입하자 시체에서 금품을 챙기는 기회주의자다운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피로 얼룩진 혁명의 과실을 무임승차로 따먹은 것은 테나르디에 부부와 같은 악덕 자본가인 것입니다.

하지만 시종일관 무거운 작품의 분위기를 중화시키기 위해 테나르디에 부부는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장 발장과 자베르는 물론 판틴과 코제트에 이르기까기 ‘불쌍한 사람들’로 가득한 ‘레 미제라블’이지만 테나르디에 부부는 결코 불쌍하지 않기에 얼마든지 희화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이들이 테나르디에 부부의 사기극에 속아 넘어가지만 유독 장 발장만큼은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당하지 않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이는 장 발장 또한 19년의 수감 생활과 이후 평생의 도주로 인해 ‘어둠의 세계’에 잔뼈가 굵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처럼 형편없는 부모를 둔 에포닌은 의외로 바르게 자라 타인을 위해, 사랑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인물로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속된 말로 개의 자식으로 범이 태어난 셈입니다.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코제트를 맡긴 대가를 치르기 위해 판틴은 치아를 뽑고 매춘에까지 내몰리는데 외동딸을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던졌다는 점에서 성녀와 다르지 않습니다. 공장에서의 첫 등장에서 판틴은 파란색 제복을 입고 파란색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는데 그 모습은 공장 노동자보다는 수녀를 연상시킵니다. ‘레 미제라블’에 가득한 크리스트교적 색채를 감안하면 다분히 의도적인 의상으로 보입니다.

첫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소년 혁명가 가브로쉬는 최종 결전을 앞두고 ‘바리케이드에서 피하라’는 장 발장의 조언을 무시하고 동지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합니다. 신분을 숨기고 혁명군에 침투한 자베르의 정체를 밝히고 마리우스의 편지를 전하는 대가를 장 발장에게 요구하는 것을 보면 가브로쉬는 세상물정에 매우 밝으며 영리한 소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혁명에 몸을 던진 것은 그만큼 현실의 극단적인 부조리를 입증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가브로쉬 역시 ‘형들’과 마찬가지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패색이 짙은 최종 결전을 앞두고 혁명군 리더 앙졸라가 ‘떠날 사람은 떠나라’고 하지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동지들을 규합하는 것은 가브로쉬입니다. 죽음을 각오한 가브로쉬는 무모하리만치 바리케이드를 넘어 정부군을 향해 전진하다 흉탄에 최후를 맞습니다. 민중들이 등을 돌린 불리한 판국에서도 동지들이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피를 흘리도록 가브로쉬가 나선 것입니다.

비록 앙졸라와 가브로쉬, 그리고 마리우스의 혁명은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이며 관용적인 나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혁명의 피가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프랑스가 진보적이며 관용적인 나라가 되기까지 혁명과 반혁명이 꼬리를 물었고 무수한 피가 흘러야 했습니다.

영화 ‘레 미제라블’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대입하는 이들도 없지 않습니다. 영화를 해석하는 방법은 세상 사람들의 머릿수만큼이나 다양하며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실패한 혁명에 대한민국의 현실을 대입하는 이들이 ‘틀렸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대의 도도한 물결은 거스를 수 없으니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패배의 피와 눈물은 승리를 위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킹스 스피치 - 우아하고 섬세한 왕실 드라마

레 미제라블 - 앤 해서웨이 카리스마 인상적
[CD 지름] ‘레 미제라블’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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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바테스 2013/01/09 09:26 # 삭제

    스포일러 있다 하니 나중에 와서 읽을께요 ^^ 일단, 손가락은 한번 꾹 눌러놓고.. ^^
  • 남선북마 2013/01/09 11:07 #

    테나르디에 부부는 뮤지컬에 코믹하게 나와서 그렇지 희대의 사이코패스들인데..
    그 자식들.. 에포닌이나 가브로쉬는 같은 환경에서도 참 잘 자랐지요..
    같은 암울한 상황에서도 기성세대는 편승하려하고,, 젊은 세대는 타도하려 하고..
    그 시대에도 요즘과 같이 세대갈등이 참 심했던 시대였겠구나.. 하는 생각 좀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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