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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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IMAX 3D - 2겹의 이야기, 2배의 감동 영화

※ 본 포스팅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인도 출신의 중년 남성 파이(이르칸 판 분)는 소설을 쓰겠다는 작가(레이프 스팰 분)에게 자신의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파이의 10대 중반 시절 아버지(아딜 후세인 분)가 경영하던 동물원을 정리해 캐나다로 온 가족이 이민을 떠납니다. 하지만 폭풍우를 만나 여객선이 침몰해 구명보트로 탈출한 파이는 ‘리차드 파커’라는 이름의 호랑이와 함께 표류하게 됩니다.

얀 마르텔의 원작 소설을 이안 감독이 영화화한 ‘라이프 오브 파이’는 소년 시절 가족을 잃고 227일 간 바다를 표류한 끝에 생존한 중년 남성의 회고담을 액자식으로 재구성합니다. 벵갈 호랑이와 함께 표류하다 생존한 소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의 서사는 매우 단순하며 직선적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며 범신론자라 할 수 있는 주인공 파이가 자신의 운명을 신에게 맡기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점에서는 중층적이며 복잡한 주제의식을 지녔습니다. 예술에서 다룰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소재인 삶과 죽음, 그리고 운명론을 직시합니다.

중년의 파이가 등장해 과거를 회상하기에 소년 파이가 생존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탄탄한 연출력으로 인해 표류 장면에서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습니다. 어쩌면 파이가 이름으로 인해 초등학생 시절 ‘오줌’이라 놀림 받은 것을 바꾸려 자신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원주율’이라며 암기한 원주율을 칠판에 무한대로 쓰는 장면에서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더불어 그의 생명이 10대로 마감되지 않고 무한한 원주율처럼 계속 이어질 것임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결말에 뜻밖의 반전을 배치해 110여분 간 전개했던 서사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파이와 함께 표류했던 호랑이는 실존하지 않았으며 처음에 구명보트에 탑승했던 동물들 또한 파이의 어머니를 비롯해 배에 탑승했던 인물들을 비유한 것임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오렌지 주스’라는 이름의 오랑우탄은 파이의 어머니였으며 다리를 다친 얼룩말은 선원, 그리고 하이에나는 요리사였음이 드러납니다.

파이의 표류담이 ‘아바타’에 필적할 만한 환상적인 3D 영상으로 제시된다는 연출 방식부터 그것이 사실이 아닌 허구 즉, 판타지일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지만 파이가 잠시 휴식을 취한 무인도가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파이의 표류담이 판타지임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따지고 보면 요리사로 분한 제라르 드 파르디유와 같은 유명 배우가 왜 그처럼 출연 장면이 짧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결말의 반전을 통해 풀린 셈입니다. 인종차별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요리사는 이기적이며 시체를 뜯어먹고 사는 하이에나로 비유됩니다. 아울러 불교를 믿는 친절한 선원은 무고한 얼룩말로, 자식을 잃은 어미 오랑우탄 오렌지 주스는 파이의 어머니로 비유된 것입니다. 파이가 구명보트에 우연히 탑승한 네 마리의 동물 중 가장 강인한 맹수인 호랑이에 자신을 비유한 것은 그만큼 강한 생존 능력을 암시하며 또한 호랑이에게 ‘리차드 파커’라는 사람 이름이 붙은 것 또한 호랑이가 인간, 즉 파이의 현신임을 암시한 것입니다. 즉 파이와 호랑이의 얼굴을 나란히 배치한 포스터부터 일종의 스포일러라 할 수 있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반전은 ‘식스 센스’, ‘파이트 클럽’의 반전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아와 초자아의 대결을 소재로 한 소설 원작의 영화라는 점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는 ‘파이트 클럽’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관객이 안도하는 순간 반전을 제시해 오히려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지기에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관객이 영화의 모든 것을 곱씹게 하는 풍부한 텍스트입니다.

파이와 호랑이와의 표류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실은 파이가 어머니의 살해와 복수의 살인이라는 더욱 고통스러운 표류를 경험하고 극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라이프 오브 파이’는 2겹의 이야기를 지닌 2배 감동의 영화로 승화합니다.

국내에서는 전체 관람가, 미국에서는 PG 등급을 받았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는 가족 영화나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모험 영화로 분류하기는 어렵습니다. 육상 및 해상의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해 3D 효과가 압도적이며 여객선이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는 장면은 어지간한 재난 영화에 비견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볼거리는 분명 풍부합니다. 폭력적인 장면을 직접적이 아닌 암시적으로 처리한다는 점에서 어린이가 관람하기에는 문제는 없지만 서사의 압도적인 무게감과 묵직한 주제의식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영화에 짓눌릴 가능성도 상당합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기본적으로 로드 무비이지만 성인용 자연 다큐멘터리와 생존 다큐멘터리가 결합한 결과물에 가깝기도 합니다.

뛰어난 연출력을 바탕으로 몰입도가 매우 높은 서사와 더불어 혹등고래, 고래상어, 날치 떼, 해파리 등이 등장하는 바다 장면의 3D 효과, 즉 입체감이 지나치게 두드러지는 것이 오히려 관객의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수영장과 바닷물 속에서 수면 위를 올려보는 앵글의 3D 효과는 뛰어나며 영화에 제시된 다양한 요소들은 엔드 크레딧을 통해서도 3D로 제시됩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이안은 자신이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합니다. ‘음식남녀’를 통해 조국 대만의 현대인을 조명했던 이안은 ‘와호장룡’과 ‘색, 계’를 통해서는 중화권의 과거와 근대를 각각 묘사한 바 있습니다. ‘아이스 스톰’과 ‘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서는 미국의 현대를,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통해서는 영국의 근대를 다뤘으며 ‘헐크’를 통해 슈퍼 히어로 영화도 연출했습니다. 그야말로 그 어떤 시공간을 배경으로 해도 마치 현지 출신의 감독인 것처럼 능수능란하게 연출해온 것이 바로 이안입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 또한 할리우드적 감수성과 연출력을 지닌 인도인 감독이 연출한 것처럼 시종일관 매끄럽습니다. 이안이 동양인이기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겠지만 인도를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한 영화들이 종종 범하는 오류인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이르판 칸은 정말로 10대 시절 엄청난 고난을 겪은 것처럼 여유와 슬픔 등 다양한 폭의 표정 연기를 선보입니다.

와호장룡 - 무협물의 절정, 그리고 끝
헐크 - 주인공보다 관객이 더 괴롭다
브로크백 마운틴 - 떠난 자는 남고, 남은 자는 떠나고
색, 계 - 남자와 사랑에 이용당해 파괴되는 여자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남선북마 2013/01/06 15:27 #

    새해 첫날 개봉하자 마자 본게 저한테는 신의 한수였네요. 이런 방법으로 전개될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끝난후에 받은 정서적인 감흥이 더 컸던거 같습니다.. 요즘은 영화정보가 하도 범람해서 숨은반전이란걸 모르고 가기 힘든데.. 제대로 뒤통수 맞은건 오랜만이네요..
  • 화려한불곰 2013/01/06 16:13 #

    사람이야기가 정말인건가요?! 그럼 반전이네요 으어.. 그런줄 몰랐네
  • Limccy 2013/01/06 16:54 #

    원작을 예전에 접했던지라 많이 걱정입니다......
  • 데니스 2013/01/06 17:28 #

    제가 듣기론 보험회사 직원들이 호랑이랑 표류한 이야기를 믿을수 없다고 해서 또다른 버젼을 말해준게 각 동물들을 요리사, 선원, 엄마, 파이에 비유한 것인데 실지로 극중 이야기를 듣는 작가에게 어떤 버젼이 맘에 드냐고 묻고 호랑이 버젼이 맘에 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작가가 마지막에 슬쩍 본 보험 보고서에도 호랑이와 오랜기간 함께 표류하다 생환한 케이스라고 일본 보험회사 직원들도 호랑이 버젼을 선택 했더군요. 결국 진실은 시청한 관객이 결정하라는 듯이 보이더라구요.

    전 그렇게 봤는데 번역이나 더빙은 어땠는지 모르겠네요.
  • 바테스 2013/01/12 10:13 # 삭제

    네이버 오픈캐스트 바테스의 영화 파편(http://opencast.naver.com/mv934)에 "경이로운 파이의 이야기" 발행하면서 다른 3개의 글과 함께 이 글을 소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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