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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 만화적인 안온한 코미디 영화

※ 본 포스팅은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사망한 뒤 홀로 사는 사요코(이치카와 미카코 분)는 동거 중인 고양이들을 외로운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줍니다. 고양이를 빌려줌으로써 사요코는 타인의 외로움을 치유하지만 정작 자신의 외로움은 치유하지 못합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젊은 여성이 고양이를 매개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가까워지는 과정을 묘사하는 안온한 코미디입니다. 개별 에피소드가 독립적이기에 옴니버스 구성에 가까우며 사요코가 해변을 렌터카로 달리는 장면의 연출이 대변하듯 전반적으로 만화적이며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고양이 대여는 부업에 불과하며 주식 매매, 역술 등 다양한 직업을 보유해 사요코가 경제적으로 넉넉하다고 묘사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외로운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인물들과 친밀해진다는 기본적인 서사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전작 ‘카모메 식당’과 동일합니다. 사요코는 초등학교에서 시절 왕따 당하며 ‘울트라맨’에 등장한 악역 괴수 ‘자미라’에서 따온 ‘자미코’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일본 특유의 서브 컬처 요소가 가미된 것은 ‘카모메 식당’에서 ‘독수리 5형제’의 주제가를 두고 등장인물들이 진지하게 토론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외로움, 즉 마음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푸딩의 구멍, 양말의 구멍, 도넛의 구멍, 그리고 개미구멍의 순으로 제시됩니다. 전술한 세 개의 구멍은 모두 고양이를 빌리려는 이들의 외로움을 상징하지만 네 번째 개미구멍이 상징하는 마음의 구멍은 고양이를 빌리기 원하는 사요코의 초등학교 동창 요시자와(다나카 케이 분)가 아닌 사요코 본인의 것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즉 요시자와의 등장으로 서사의 중심이 주변 인물들이 아닌 주인공 사요코에게로 이동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요시자와가 등장하며 두 가지 진전이 이루어집니다. 첫째, 이전까지 제시되지 않았던 사요코의 본명과 별명이 제시됩니다. 둘째, 할머니와 생활하던 시절의 습관 그대로 ‘더위에는 보리차’라며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던 사요코가 요시자와가 가져오는(훔쳐오는?) 맥주를 마시고 그 맛을 알게 됩니다. 즉 보리차와 결별하고 맥주를 마신 것은 어린 시절과 결별하고 어른이 되며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채로운 것은 요시자와와 사요코가 마시는 맥주가 압도적인 종류를 자랑하는 일본 맥주 중 하나가 아니라 스리랑카의 라이온 맥주라는 것입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미니멀리즘에 충실해 일본적인 사고방식을 찬양하는 주제의 영화를 연출하면서도 의외로 이국취미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카모메 식당’과 ‘토일렛’은 일본적인 섬세함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공간적 배경은 일본이 아니라 핀란드와 캐나다였습니다. 따라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품이 일본 맥주가 아닌 스리랑카 맥주라는 것 역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이국취미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엉뚱하지만 결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인물들(요시자와는 예외)이 등장하며 인간미와 슬로 라이프, 부드러움과 배려를 강조하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일관된 정서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서도 여전합니다. 렌터카 회사에서 홀로 근무하는 요시카와(야마다 마호 분)의 에피소드가 직접적으로 드러내듯 무엇이든 등급을 매겨 차별하는 고도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함을 비판합니다.

조연급 등장인물의 이름에서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요코에게 고양이를 빌리려는 이들의 이름은 요시오카(吉岡)(쿠사무라 레이코 분), 요시다(吉田)(미츠이시 켄 분), 요시카와(吉川), 요시자와(吉沢)로 모두 ‘좋다’는 의미의 ‘요시(吉)’가 돌림자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고양이를 빌리면 행복해진다는 의미의 의도적인 작명으로 보입니다. 비록 노파 요시오카는 사망했지만 매정한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되새기게 된다는 점에서는 결코 비극적인 죽음만은 아닙니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서 제시되는 사요코의 할머니와 요시오카, 두 노파의 죽음은 죽음 또한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웅변하듯 담담하고 따뜻하게 묘사됩니다. 사무실 책상에 복고양이를 두고 있는 요시카와는 사요코로부터 빌리는 고양이를 복고양이 바로 옆에 앉힘으로써 엄청난 행운을 누리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사요코의 약점을 콕콕 찌르며 상처를 주지만 종반 화해하는 노파로 분한 것은 남성 중견 배우인 고바야시 카츠야입니다. 결말에 등장하는 버릇없는 소년은 요시자와의 분신과도 같습니다. 소년이 사요코와 가까워지는 것은 사요코가 말한 ‘위아래 15살 차이까지는 무방하다’는 대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말미를 장식하는 노파 요시오카의 아들이 홀로 냉장고에 기대 무수한 푸딩 중 하나를 먹는 장면은 분위기는 물론 미장센까지 ‘중경삼림’에서 금성무가 무수한 파인애플 통조림 중 하나를 좁은 복도에 나무의자를 놓고 먹는 장면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요시다가 빌렸던 고양이를 입양하기 위해 사요코에게 무릎을 꿇고 ‘어머니’라 부르며 간청하는 것은 배우자가 될 여성의 부모에게 결혼 허락을 받아내는 남성을 연상시키도록 연출했습니다.

에피소드 사이의 막간에는 고양이들의 귀여운 동영상이 삽입됩니다. 엔드 크레딧에는 출연한 고양이들의 이름이 제시되며 등장인물은 물론 고양이들까지 등장하는 쿠루네코 야마토의 귀여운 만화풍 일러스트 또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엔드 크레딧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고양이를 최대한 배려해 촬영했다’는 요지의 안내문입니다. 한 마리조차 마음대로 다루기 힘든 것이 고양이인데 과연 그 많은 고양이들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기’시킨 것인지 놀랍습니다. 사요코의 휴대전화 벨소리는 그녀가 수레를 끌며 ‘외로운 이들에게 고양이를 빌려준다’며 외치는 고물상 아저씨와 같은 ‘노래’의 음을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카모메 식당 - 일본판 ‘바그다드 카페’
토일렛 - 이국취미와 일본 예찬의 불편한 결합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JNK 2013/01/03 13:03 #

    리뷰 잘봤습니다.
  • 돌갱이 2013/01/03 17:53 # 삭제

    요전에 참 즐겁게 봤던 영화예요. 렌타-네코-하는 그 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그런 영화였어요. 그래서인지 벨소리는 한번에 알아맞췄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참 따스해지더라고요. 리뷰를 읽고 나니 다시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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