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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Q’ 개연성 부족, 부정 못해 애니메이션

※ 본 포스팅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Q’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Q’(이하 ‘에반게리온 Q’)의 흥행세가 가파릅니다. 11월 17일 일본 현지에서 개봉된 ‘에반게리온 Q’는 개봉으로부터 한 달이 지난 현재 320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으며 흥행 수입 또한 40억 엔을 넘어 시리즈 사상 최대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폭발적인 흥행과는 별도로 과연 ‘에반게리온 Q’가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서사에 충분한 개연성을 지녔는지는 의문입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물론이고 15년 이상 동일한 작품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성우들조차 ‘당혹스럽다’는 공통된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에반게리온 Q’가 전편이었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파’(이하 ‘에반게리온 파’)로부터 14년이 지난 시간적 배경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에반게리온 파’의 결말에서 묘사된 니어 서드 임팩트의 저주로 인해 14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에바 파일럿들은 전혀 나이를 먹지 않았다는 것이 ‘에반게리온 Q’의 설정입니다.

하지만 작화를 살펴보면 14년의 세월은 캐릭터마다 불균등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초호기 내에 봉인되어 있던 신지는 물론이고 반 네르프 조직 빌레의 에바 파일럿 아스카와 마리 또한 플러그 슈트나 안경 등의 변화를 제외하면 설정대로 얼굴이나 몸매 등 외모의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카오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네르프의 새로운 레이는 보다 말수가 적어지고 소극적으로 변화했으며 과거의 레이의 기억을 전혀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14년 전에 비해 어려 보입니다.

성인 캐릭터들에게서는 14년의 세월의 무게를 차등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빌레의 기함 AAA 분다의 함장 미사토와 부함장 리츠코는 턱 선이 도드라지고 뺨이 홀쭉해져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특히 리츠코는 짧은 머리모양으로 인해 미사토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나이 들어 보입니다. 중간관리자로 승진한 시게루, 휴가, 마야의 오퍼레이터 3인방 역시 각각 수염, 넓어진 이마, 그리고 홀쭉해진 뺨으로 인해 세월의 경과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외모 변화는 14년보다는 훨씬 짧은 세월을 반영한 것처럼 보입니다.

네르프의 겐도와 후유츠키는 미사토와 리츠코보다 더욱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14년의 간극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은 아니지만 ‘에반게리온 파’에 비해 분명 늙어 보이며 TV판과 구극장판을 통틀어 가장 늙어 보입니다. 특히 후유츠키는 ‘에반게리온 파’에서만 해도 초로의 사나이였으나 ‘에반게리온 Q’에서는 완전한 노인처럼 보입니다.

겐도는 안경 대신 착용하는 고글로 인해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외모의 변화를 정확히는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의문을 자아냅니다. ‘에반게리온 파’에서 사도에 의해 침식된 이후 애꾸가 된 아스카와 마찬가지로 겐도 역시 니어 서드 임팩트를 통해 신체가 변화하거나 혹은 14년 사이에 자의에 의해 ‘에반게리온 파’에서 카지로부터 넘겨받은 느부갓네살의 열쇠를 눈에 이식했을 수도 있습니다. 겐도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오른손에 아담을 이식해 서드 임팩트를 시도한 바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든 간에 겐도의 고글은 제레의 리더 킬 로렌츠의 고글을 연상시킨다는 것입니다. ‘에반게리온 Q’의 말미에서 겐도는 킬 로렌츠를 비롯해 인류에 문명을 부여한 제레를 모두 말살하는데 제레의 킬 로렌츠의 지위를 겐도가 승계했음을 고글이라는 소품이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캐릭터와 달리 메카닉은 14년의 세월을 충분히 반영했습니다. 우선 신지와의 싱크로율이 0.00%로 추락한 초호기가 분다로 재창조된 것은 작품 전체의 향방을 좌우하는 큰 변화로 14년의 세월을 절감하게 합니다. 레이가 탑승한 Mark. 09 역시 사도처럼 스스로를 즉시 재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월의 흐름이 반영된 네르프의 기술 발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카오루의 죽음까지 연결되는 센트럴 도그마의 리리스의 변화 또한 세월의 무게가 반영된 것입니다.

신 캐릭터들이 탑승한 기함 분다를 제외하면 빌레가 거느리고 있는 선단에서는 인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분다 외의 전함에 탑승한 빌레 캐릭터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코드4C와의 교전 중에 빌레의 선단은 엄청난 피해를 입지만 동료들의 죽음에 대해 미사토의 반응은 무감각에 가깝습니다.

TV판 이래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서 사도의 파괴와 에바와 사도의 교전에 휘말려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것은 당연시되어 왔지만 니어 서드 임팩트를 거치며 인류가 절멸 상태에 도달했음을 감안하면 귀중한 전력인 동료들의 전사에 대해 빌레의 리더 미사토가 무감각한 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미사토는 단지 분다와 2기의 에바의 안위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듯합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서’에서 총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무수한 민중의 힘을 강조했던 결말을 감안하면 앞뒤도 맞지 않습니다. 어쩌면 분다를 제외하면 빌레의 나머지 선단은 무인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의 한계에 도전하는 압도적인 전투 장면 연출과는 별도로 ‘에반게리온 Q’의 가장 큰 문제는 14년의 세월 동안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지 규명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사를 통해 몇 가지 암시가 이루어지지만 구체적인 회상 장면은 삽입되지 않았습니다. 카지, 겐스케 등의 캐릭터는 니어 서드 임팩트에 휘말려 죽은 것인지 소멸한 것인지 봉인된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과연 ‘에반게리온 Q’가 ‘에반게리온 파’의 직접적인 후속편인지 의심스럽습니다.

2009년 ‘에반게리온 파’의 개봉 당시 제시된 ‘에반게리온 Q’의 예고편은 본편에서는 전부 무시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Q’가 ‘Quickening’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예고편의 명시 또한 본편에서는 사라졌습니다. 안노 히데아키가 예고편을 갈아엎고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연출한 것입니다.

안노 히데아키는 ‘에반게리온 세계관’의 창조주이자 데우스엑스마키나입니다. 그의 변덕에 따라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어떤 결말이든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그가 TV판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어떤 결말을 선택했는지는 새삼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두 개의 작품 모두 일반인들이 쉽게 수용하기 힘든 뜬금없거나 과격한 결말로 마무리된 바 있습니다.

애당초 변덕이 심했던 안노 히데아키는 작년 3.11 동일본대지진을 경험한 이후 더욱 변덕이 심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연 재해는 인간이 법칙성이나 개연성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전조조차 없이 갑작스레 발생해 무수한 인명을 희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에반게리온’의 창조주 안노 히데아키는 ‘에반게리온 Q’와 그에 앞서 상영된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를 통해 인간의 능력이 닿지 않는 대자연, 혹은 창조주의 변덕을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14년’이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서 14년은 신지의 탄생으로부터 사도의 습격까지의 기간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니어 서드 임팩트로부터 신지의 각성까지 13년도, 15년도 아닌 14년이라 못 박은 것은 안노 히데아키가 모종의 암시를 심어놓은 것이 분명합니다. 안노 히데아키는 후속편에서 14년의 세월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묘사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후속편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는 신극장판의 최종편입니다. 결말까지 휘몰아치기에도 바쁠 텐데 전작 ‘에반게리온 Q’의 부족한 개연성을 보완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설령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가 몇 년 후에 공개되어 ‘에반게리온 Q’의 ‘개연성 보완 계획’을 성공시킨다 해도 ‘뒷북’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반게리온’의 변덕스런 창조주 안노 히데아키의 또 다른 변덕의 결과물이 궁금합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Q’ 총력 리뷰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Q’ 공식 팸플릿
[사진] ‘에바 Q’ 상영 중인 TOHO씨네마즈 우메다
[사진] 롯데리아 에반게리온 텀블러 아스카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서’ 총력 리뷰
에반게리온 서 - 신극장판의 영화적 정합성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파’ 총력 리뷰
‘에반게리온 파’ 프리미엄 시사회 관람기
‘에반게리온 파’, ‘엔드 오브 에바’의 흔적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사카키코지로 2012/12/25 19:29 #

    다른 부분에는 나름 수긍이 갑니다만 동일본지진이 안노에 영향을 끼쳤다는 건 글쎄요...... 안노가 세컨드 임팩트를 눈앞에서 체험한 미사토 처럼 재해를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체험했다면 모를까 그저 지진이 났을때 일본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사람이 바뀔거라고 보진 않네요. 그렇게 본다면 저도 당시 지진피해자에 속하는데 그걸로 제가 바뀌었다고 보진 않거든요.
  • 의사양반 2012/12/25 21:10 # 삭제

    동일본대지진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대응하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일본적인 대응 방식이 실패한 거라... 굉장히 상징적인 실패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데요. 말하자면 해외에 있는 일본인이 오히려 일본 재해지역 외에 거주한 외국인 보다 더 큰 영향을 받았을 거라 봅니다. 그게 사람 성격을 확 바꾸거나 하는 종류의 체험은 아니겠지만요.
  • 풍신 2012/12/25 19:54 #

    전 안노한테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기대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파가 특이하게 대중적인 경우였고, Q는 병(?)이 또 도졌구나 하는 느낌일지도...
  • 남선북마 2012/12/25 21:01 #

    참으려고 참아볼려고 했는데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결국 줄거리 다 알게되네요..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개봉이나 좀 했으면..
  • mithrandir 2012/12/25 21:19 #

    분명 말씀하신 것처럼 플롯과 설정의 완결성, 개연성에서는 엉망이었지만,
    작품의 주제 의식이나 캐릭터들의 감정 라인을 따라가는 완결성은 훌륭했다고 봅니다.
    올해 봤던 영화 중 가장 인상적으로, 가장 만족스럽게 봤던 작품 중 한 편입니다.

    외전의 내용까지 끌어오면서 내적 완결성을 추구했지만
    정작 영화 자체의 작품성은 실망스러웠던 호빗과는
    모든 면에서 반대였다는 점에서 비교하게 되더군요.
  • ㅇㅇ 2012/12/26 19:12 # 삭제

    Q보면서 몇몇 소도구들만 잘라낸다면 에반게리온이 아니라 아무 SF애니의 극장판(에스카플로네든, 그렌라간이든)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TV 돌리다가 처음보는 드라마의 중간 에피소드를 보는 느낌이었음. 어떤 의미에서는 EOE보다도 생뚱맞지 않나 싶은데...솔직히 일본가서 본 돈이 아까웠습니다.
  • minci 2012/12/26 22:15 #

    과연 오덕, 십덕보다 무서운 변덕인가요.......
  • 데니스 2012/12/27 07:25 #

    전 이곳서 블루레이로 정발된 영화판 1, 2부 아직 돌려보지도 못했네요.
    내년에 Q가 블루레이로 정발될텐데... 이리 복잡해서리.... ㅡ,,ㅡ
  • ㅇㅇ 2013/04/24 14:48 # 삭제

    그래도 엔드오브에바처럼은 안될거라 생각합니다.
    우선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인터뷰에서 안노에게 도망치지말라는 말을했었는데.
    그 나우시카의 거신병씬은 자연재해의 메시지도 있겠지만 미야자키하야오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안노 나름의 뜻아닐까요?
    물론 끝까지 가봐야알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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