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 애플렉이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아르고’는 동명의 SF 영화 각본을 활용해 격렬한 반미감정에 들끓는 이란에서 미국인들을 탈출시켰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입니다. 오프닝에서는 익히 알려진 워너 브라더스의 이니셜을 딴 로고가 아니라 워너 브라더스의 텔레비전 로고를 활용하고 실제 TV 뉴스 장면을 삽입해 다큐멘터리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실화임을 강조합니다. 결말에는 극중 인물들의 후일담은 물론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터의 음성을 제시합니다. 엔드 크레딧에서는 극중에 등장했던 배우들과 실존 인물들을 비교하는 사진을 통해 사실성 배가를 위해 캐스팅과 분장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부각시킵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의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재현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아르고’의 약점은 바로 실화라는 출발점에 있습니다. 만일 ‘할리우드 작전’이라고도 불리는 ‘아르고 작전’이 실패했다면 밴 애플렉이 영화화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르고’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을 향해 우직하게 전진하는 성실한 영화라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반전을 기대한다면 ‘아르고’는 심심한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인공 토니는 과묵하며 무표정한 가운데 초조한 듯한 외모의 CIA 요원으로 등장하는데 까칠한 피부와 덥수룩한 수염은 화려한 이미지의 첩보원과 거리가 멀어 상당히 사실적입니다.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으며 신중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첩보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별거중인 아내가 키우는 외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아르고 작전’이 성공한 뒤 가족이 복원이 되었다는 결말은 너무나 할리우드적이라 아쉽습니다. 6명의 미국대사관 직원 중 2쌍의 부부가 존재하며 그들이 가족의 품에 안겼다는 결말 또한 가족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데 주인공 토니의 가족 관계까지 복원되는 것은 진부하며 작위적입니다. ‘아르고 작전’의 소재로 활용된 각본 또한 아버지가 아들을 구출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가족의 복원을 강조하는 주제 의식에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고’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영화 대본 리딩을 위해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답지 않은 각본을 읽어 내려가는 호텔의 주방 TV에서는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는 미국인 인질들에 대한 뉴스 보도가 이루어집니다. 화려한 할리우드와 격변의 테헤란을 교차 편집하며 긴장감을 유발하는 솜씨는 밴 애플렉이 연출자로서 확실히 ‘타운’보다는 성장했음을 입증합니다.
무엇보다 ‘아르고’의 가장 큰 매력은 지난 2월 아카데미를 휩쓴 ‘아티스트’가 그랬듯이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허황된 오락물로 영화계에서도 하위 장르로 취급받는 SF 영화가, 일부에서는 퇴폐적인 오락물을 양산한다며 폄하되는 ‘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경의를 숨기지 않습니다. 동시에 영화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즉 ‘아르고’는 영화의 놀라운 힘에 관한 영화입니다.
‘스타워즈’의 포스터와 피규어, 그리고 침구류까지 관련 캐릭터 상품이 소품으로 활용되며 ‘혹성탈출’은 토니가 ‘아르고 작전’을 착안하게 된 계기로 제시됩니다. 대본 리딩 장면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는 ‘스타워즈’의 추바카와 C3PO를 닮은 이들도 등장합니다. 한 마디로 ‘아르고 작전’에 활용된 각본이 ‘스타워즈’와 같은 SF 영화의 아류작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아르고’의 또 다른 장점은 정치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입니다. 흑백의 그래픽 노블과 다큐멘터리를 혼합한 속도감 넘치는 서두에서는 인질극을 연출한 이란뿐만 아니라 독재자를 옹호해 인질극의 빌미를 제공한 미국에도 책임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오리엔탈리즘이나 선악 구도에 함몰되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타운 - ‘히트’로 시작, ‘쇼생크 탈출’로 끝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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