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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제1회 한일 슈퍼 게임을 추억하며 야구

오늘 잠실야구장에서는 한일 레전드 매치가 벌어집니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역사에 획을 그은 은퇴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단판 승부를 벌입니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공식적인 교류가 시작된 것은 1991년 제1회 한일 슈퍼 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일 국교 수립 25주년과 한국 프로야구 출범 10주년을 기념해 1991년 11월 일본 전국을 순회하며 6차례에 걸쳐 맞대결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1936년 출범해 1991년 당시 56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 프로야구와 출범 10주년에 불과했던 한국 프로야구의 일천한 역사의 차이로 인해 당시 한국 대표팀은 내로라하는 8개 구단의 선수들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임했습니다. 1승이라도 거둘 수 있을까 하는 다소 주눅 든 분위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의 상징 도쿄돔에서 1991년 11월 2월 펼쳐진 1차전은 박동희(롯데)와 구와타의 선발 맞대결부터 명암이 교차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동희는 1회말부터 실점하며 4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지만 구와타는 한국의 타선을 3이닝 무실점으로 꽁꽁 묶었습니다. 두 번째 투수 조규제(쌍방울)가 우타 거포 아키야마와 오치아이에 백투백 홈런을 허용해 승부가 완전히 갈렸습니다. 7:2로 밀려 패색이 짙던 8회초 1사 후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는 최초로 도쿄돔에서 홈런을 터뜨린 김성한(해태)의 좌월 솔로 홈런이 위안이 되었을 뿐입니다.

이튿날 요코하마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도 8:2로 완패한 한국은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3차전에는 좌완 송진우(빙그레)를 선발 출격시켰습니다. 전통적으로 일본을 상대로 좌완 투수를 선발 등판시켜 효과를 본 것에 착안한 것입니다. 송진우는 6이닝 동안 2안타만을 내주며 무려 8개의 탈삼진으로 무실점 호투했습니다. 마침 한국의 타선이 2점을 먼저 뽑아 슈퍼 게임에서 첫 승을 거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가 커졌지만 7회말 송진우는 3안타를 허용하며 무너졌고 구원진의 난조로 역전패했습니다.

3경기를 모두 패하자 국내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일본 프로야구가 한 수 위라고는 하지만 한일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3연패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대로는 일본에 전패해 한국 프로야구가 대대적인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특히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입어 3경기 동안 모습을 감춘 ‘국보급 투수’ 선동열(해태)의 등판을 독촉하는 언론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지금은 철거된 오사카 후지이데라구장에서 펼쳐진 4차전에서 한국은 선발 한용덕(빙그레)의 호투와 모처럼 터진 타선에 힘입어 7:1로 역전승해 슈퍼 게임 첫 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일본 프로야구의 올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인 1차전과 달리 2차전 이후부터는 일본의 선수들이 지역 선발 위주로 구성되어 기량이 다소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한 수 접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사진 : 현역 선수 시절의 해태 선동열)

드디어 선동열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기후 나가라와가와 구장에서 벌어진 4차전에서 선동열은 선발 등판해 3이닝 무실점 5탈삼진으로 위용을 선보였습니다. 1회말 2사 후부터는 4타자 연속 삼진의 괴력을 과시했습니다. 이때의 호투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 훗날 일본 진출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부상으로 긴 이닝을 투구할 수 없었던 선동열에 뒤를 이어 송진우가 6이닝을 책임지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고 6회초 장종훈(빙그레)의 장쾌한 좌월 장외 솔로 홈런 등에 힘입어 8:0으로 완승하며 2연승했습니다.

2연승으로 2승 3패가 되자 한국은 내친김에 3승 3패 동률로 슈퍼 게임을 마무리하자는 의욕을 보였고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일본 역시 녹록치 않았습니다. 나고야에서 벌어진 마지막 6차전은 최대 접전이 벌어졌습니다. 1:0으로 뒤진 한국은 7회말 김민호(롯데)의 중전 적시타로 1:1 동점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기회에서 한대화(해태)의 빗맞은 안타에 발이 느린 김민호가 홈에 들어오다 횡사해 역전에 실패했습니다.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3이닝 동안 무실점 호투를 이어오던 김용수(LG)가 8회초 1사 후 노무라에게 우월 솔로 홈런을 허용해 아쉽게 2:1로 패했습니다.

2승 4패로 마무리된 제1회 한일 슈퍼 게임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국내 최고의 타자들은 일본 투수들의 ‘마구’ 포크볼에 연신 방망이를 헛돌렸습니다. 몸쪽공은 당겨쳐 장타를 만들고 바깥쪽공은 밀어쳐 단타를 만드는 철저히 세분화된 일본 타자들의 타격 기술에 놀랐습니다. 이만수(삼성), 장채근(해태)의 국내 최고의 포수들조차 일본 포수들에 비하면 도루 저지와 블로킹 등 수비 능력에서 상당한 약점을 노출했습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나 한국 프로야구는 31년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포크볼은 더 이상 ‘마구’가 아니라 어지간한 투수들이 활용하는 구종이 되었으며 몸쪽공은 당겨치고 바깥쪽공은 밀어치는 것이 타격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포수들의 수비 능력 또한 상당히 향상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야구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두 번의 WBC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은 일본 대표팀을 만나 대등한 승부를 연출했습니다. 오히려 한일전의 특수성으로 인해 한국 선수들이 강한 정신 자세로 무장하는 것에 일본이 두려워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펼쳐지는 한일 레전드 매치에는 21년 전 제1회 한일 슈퍼 게임을 통해 조우했던 양국의 전설들이 다시 맞대결을 펼칩니다. 선동열, 김용수, 한용덕, 송진우, 김성한, 이만수, 한대화 등 당시의 투타 주축 선수들이 다시 출격합니다. 은퇴 선수들의 경기인 만큼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전개되지는 않겠지만 한일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승부욕은 남다를 것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1991년 제1회 한일 슈퍼 게임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한일 레전드 매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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