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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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 - 끊임없이 반복, 변주되는 우주적 인연 영화

※ 본 포스팅은 ‘다른 나라에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다른 나라에서’는 세계적인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뻬르를 캐스팅해 전라북도 변산반도의 모항을 배경으로 한국 남자들과 얽히는 3개의 에피소드를 제시합니다. 빚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함께 모항에 숨은 영화과 학생 원주(정유미 분)가 쓴 각본을 기초로 한 액자 구성의 영화입니다.

3개의 에피소드에서 안느(이자벨 위뻬르 분)는 영화감독이었다, 불륜녀이기도 하며, 마지막에는 이혼녀로 등장합니다. 안느의 주변 인물 또한 이채롭습니다. 종수(권해효 분)는 영화 감독으로 두 개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안느와 키스까지 나눈 지인으로 등장하지만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모항에서 안느와 처음 만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안느의 이야기를 창조한 원주는 펜션의 주인집 딸로 등장하며 원주의 어머니 박숙(윤여정 분)도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안느의 지인인 민속학 교수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는 소수의 배우들이 엇비슷한 역할을 바꿔 맡는 소극장 연극을 떠올리게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세 개의 에피소드의 연관성입니다. 한 명의 배우가 동일한 이름을 지닌 다른 인물을 연기하기에 세 개의 에피소드는 각기 독립된 패럴럴 월드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편, 중편, 완결편의 관계처럼 보입니다. 이를테면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안느에 집적대던 안전요원(유준상 분)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안느가 연인 문수(문성근 분)와 키스하는 모습을 훔쳐보며 아쉬워 하지만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안느와 섹스하며 원하던 바를 이룹니다. 안느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숨겨둔 우산을 세 번째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에서 꺼내 사용하는 장면은 세 개의 에피소드가 연결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안느가 해변에 버린 소주병은 첫 번째 에피소드의 서두에 등장하는 깨진 소주병 조각과 연결되어 순환론적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과 비슷한 인물들을 만나며 부대낄 수밖에 없는 인연을 우주적 차원에서 변주한 홍상수 감독의 운명론이 반영된 작품입니다. 안느는 언제나 우산을 필요로 하고 매번 영화감독과 얽히며 항상 안전요원의 유혹을 받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수와 키스합니다. 꿈과 상상, 그리고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른 나라에서’는 엇비슷한 서사가 등장인물만 바꿔 반복, 변주되는 현대판 신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집적대는 남자’와 ‘못 이기는 척 응하는 여자’라는 인간 수컷과 암컷의 흥미진진하며 우스꽝스런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영화 전반의 즉흥성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파란색 볼펜 손 글씨로 쓴 오프닝 크레딧이 강렬하지만 정작 제목과 달리 ‘다른 나라에서’는 이국성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안느에게 한국 음식이 맛있느냐고 묻는 질문이 제시되며 안느가 절을 찾고 스님(김용옥 분)과 만나는 장면도 제시되지만 기본적인 서사는 홍상수 감독이 한국 배우들만을 캐스팅해 연출한 전작들과의 공통적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안느가 소주 병나발을 부는 장면은 한국적이라기보다 홍상수적입니다. 따라서 극중에서 ‘한국 남자들은 섹스를 밝힌다’는 대사는 ‘한국 남자’에만 국한된 것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매우 복잡하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서’가 난해한 영화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로 이루어졌지만 일상적인 구어체 대사가 대부분이며 서사 또한 단순합니다. 그러므로 ‘장인’ 홍상수 감독이 엇비슷한 장면을 가지고 노는 가벼운 코미디로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항상 삭발을 견지해 스님을 연상시키는 도올 김용옥이 진짜 스님 역을 맡아 어설픈 연기를 한 것이나 만삭의 문소리가 표독스런 아내 역을 맡은 것도 웃음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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