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블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영화화된 헐크,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 네 명의 슈퍼 히어로에 ‘아이언맨2’에 조연으로 등장했던 블랙 위도우, 그리고 블랙 위도우의 절친한 동료 호크 아이까지 가세한 어벤져스가 토르의 동생 로키의 지구 정복 음모에 맞선다는 줄거리의 영화 ‘어벤져스’는 2000년대 중반부터 마블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계획을 집대성한 결과물입니다. 초반에는 아시아, 유럽 등 세계 각지를 공간적 배경으로 제시해 ‘007’과 같은 국제 첩보물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클라이맥스에서는 뉴욕 맨해튼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외계인의 침략에 맞서는 영웅들을 묘사합니다.
‘어벤져스’의 많은 슈퍼 히어로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허트 로커’ 이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 이르기까지 최근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자 배우 중 한 명인 제레미 레너가 분한 호크 아이이며 가장 늦게 등장하는 것은 토르입니다. 초능력을 가장 늦게 보여주는 것은 헐크이며 가장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것 역시 헐크입니다. 헐크는 최종 보스 로키를 너무나 손쉽게 제압합니다.
‘헐크’의 에릭 바나도 ‘인크레더블 헐크’의 에드워드 노튼도 아닌 ‘어벤져스’의 헐크로 분한 마크 러팔로는 기존의 두 유명 배우의 헐크와는 판이하게 다른 이미지의 캐릭터를 구축합니다. 에릭 바나는 분노를 마구 폭발시키는 강렬한 브루스 배너/헐크를 창조했으며 에드워드 노튼은 분노를 삭이기 위해 내적 갈등에 시달리는 브루스 배너/헐크를 창조했지만 ‘어벤져스’에서 마크 러팔로의 브루스 배너/헐크는 마음 좋은 인도인 아저씨처럼 보입니다. 변신하고 나면 얼굴보다는 목 아래 몸뚱이가 훨씬 더 중요한 캐릭터가 헐크이며 두 편의 ‘헐크’가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슈퍼 히어로들이 여럿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어벤져스’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기는 어려웠겠지만 마크 러팔로는 헐크와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벤져스’에서 캐릭터로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아이언맨입니다. 이미 두 편의 영화가 성공해 세 번째 영화까지 제작되고 있으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배우로서의 아우라는 물론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이 매력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언맨이 새로운 수트를 비롯해 많은 무기를 활용할 수 있고 공중과 지상을 자유자재로 종횡무진하며 운신의 폭이 넓다는 점 역시 ‘어벤져스’에서 돋보이는 이유입니다.
‘엑스맨’처럼 슈퍼 히어로들이 애당초 한 팀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기에 영화 중반에 슈퍼 히어로들의 개성이 충돌하는 흥미진진한 장면부터 클라이맥스의 뉴욕 한복판 맨해튼의 전투 장면은 매끈하지만 그에 앞서 전반부의 속도감이나 액션은 다소 부족합니다. 또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인 ‘스파이더맨’ 3부작이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와 같은 심도 깊은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아이언맨’ 시리즈의 조연인 기네스 팰트로는 출연하지만 ‘토르’에 등장했던 나탈리 포트만이 카메오로도 출연하지 않아 사소한 아쉬움을 남깁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선한 슈퍼 히어로는 다섯 명이 넘는데 악역은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슈퍼맨2’에서는 슈퍼맨이 고향별 크립톤으로부터 찾아온 조드 장군을 비롯한 세 명의 초능력자 악역에 렉스 루터까지 포함해 4명의 악당과 맞서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비장미를 자아냈던 것처럼 적이 강해야 주인공이 빛나는 법인데 ‘어벤져스’에서는 한 명의 악역을 놓고 선한 슈퍼 히어로가 떼로 몰려다니기에 비장미를 유발하기는커녕 오히려 악역이 불쌍해 보일 지경입니다. 클라이맥스에서는 치타우리족의 대대적인 습격이 이루어지지만 ‘졸개’들과 싸우는 슈퍼 히어로가 패배할 리가 없다는 고정관념에 충실히 복무할 뿐입니다. 엔드 크레딧 중간에 암시하는 바와 같이 ‘어벤져스2’가 제작된다면 선한 슈퍼 히어로들과 수적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적당한 숫자의 악역이 필요합니다.
쉴드의 리더인 닉 퓨리가 치타우리족의 침략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서사의 단서는 흥미롭습니다. 극중에 제시되는 게임 ‘갤러그’ 장면과 백발백중의 명궁 호크아이를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에 비유하는 대사는 웃음을 유발합니다. 아이언맨의 특수성으로 인해 로키가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하는 장면의 유머 감각도 돋보입니다. 치타우리족과의 치열한 전투 이후 맨해튼 한복판의 아이언맨 소유의 스타크 빌딩의 ‘STARK’로 표기된 거대 간판이 손상되어 어벤져스(Avengers)를 상징하는 ‘A’자만 남은 결말도 인상적입니다. 좌충우돌하던 슈퍼 히어로들이 이제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헐크 - 주인공보다 관객이 더 괴롭다
인크레더블 헐크 - 속편과 패럴럴 월드 사이, ‘도망자’와 ‘킹콩’ 사이
아이언맨 - 진지한 히어로에 반기를 들어라
아이언맨2 - 빈약한 액션의 히어로 블록버스터
토르 - 114분짜리 밋밋한 ‘어벤져스’ 예고편
퍼스트 어벤져 - 애국심 강조하는 미국의 약물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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