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구회사 하스브로의 게임을 영화화한 피터 버그 감독의 ‘배틀쉽’은 태평양을 배경으로 외계인의 침략에 맞서는 미 해군 함대의 활약을 묘사하는 SF 액션 영화입니다. 해양 SF 액션 영화라는 점에서는 ‘어비스’와 ‘워터 월드’를, 외계인의 침략을 재난 영화처럼 묘사한다는 점에서는 SF 블록버스터 ‘인디펜던스 데이’를, 외계인에 맞서는 미군의 활약을 묘사한다는 점에서는 ‘월드 인베이젼’을, CG에 의존하는 액션 장면은 역시 하스브로를 뿌리로 한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 기존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요소로 가득하며 ‘스타워즈’ 시리즈의 매 편마다 등장하는 유명한 대사 ‘예감이 좋지 않아’를 오마쥬하기도 합니다. 외계인의 이동식 병기는 ‘기동전사 건담 F91’의 버그와 ‘기동전사 V건담’의 타이어형 서포트 메카를 연상시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다양한 영화들을 연상시킨다는 것은 ‘배틀쉽’이 그만큼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연출 방식 또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스타일을 답습합니다. 외계인의 침략 목적이 불분명한 것은 서사의 약점이며 외계인의 전투복에 접근전용 무기만이 장착되어 있을 뿐 사격 무기가 없으며 움직임이 매우 둔한 것은 설정의 약점입니다. 극중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말살한 콜럼버스에 빗댈 정도로 인류에 비해 압도적으로 문명이 발달한 외계인이지만 의외로 너무나 허술합니다. 클라이맥스가 될 것으로 예상된 대규모 함대전은 등장하지 않아 스케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외계인의 방어막이 소멸된 이후 공중전 없이 황급히 마무리된 마지막 전투 장면 또한 미진함을 남깁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실존 전함의 함포 사격 장면은 시원시원한 만큼 봄보다는 여름이 개봉에 어울렸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올 여름에는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할 블록버스터들이 대기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하와이 연안 태평양에서의 갑작스런 외계인의 침략에 고전하는 미 해군이라는 줄거리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1945년 일본의 항복 문서를 조인하고 1992년 퇴역한 미주리호가 복귀해 제2차 대전에 참전한 퇴역 노병들의 활약으로 외계인을 물리친다는 결말은 미국인의 향수를 자극함과 동시에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한 한풀이와 같은 차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연히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영웅주의도 읽을 수 있습니다.
기본 줄거리가 진주만 공격의 은유이지만 노골적인 반일 감정 자극을 피하며 일본 시장에서의 흥행을 노리기 위해 극중에서 해상자위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그 상징인 욱일승천기가 자주 제시됩니다. (태극기와 한국전쟁 참전 용사도 등장합니다.) 해상자위대 소속 전함 미요코의 함장 나가타(아사노 타나노부 분)가 주인공 알렉스와 콤비를 이루는 버디 무비이기도 합니다. 아사노 타다노부의 비중은 알렉스의 직속상관이자 여자 친구의 아버지인 셰인 중장 역의 리암 니슨보다도 많습니다. 외계인 침략에 대한 일본 현지의 반응을 전하는 일본 뉴스가 삽입된 장면 역시 일본 시장을 의식한 듯합니다.
엔드 크레딧 이후에는 영국을 배경으로 상당히 긴 장면이 제시됩니다. 당연히 속편을 암시하는 듯한 장난스런 장면이지만 정말 속편 제작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핸콕 - 아기자기한 헐리우드 도덕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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